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17) 非常治安會議
1968년 1월 6일 정부에서는 원주(原州)에 있는 1군사령부에서 이례적인 비상치안회의를 수집하여 대간첩작전의 일원화 등 실효성있는 대간첩작전과 관련된 중요한 현안문제를 논의한 바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주재하에 개최된 이례적인 비상치안회의에는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과 중앙정보부장, 합참의장, 각 군 총장 및 해병대 사령관, 군단장급 이상의 각 군 일선지휘관과 전국 각 도지사 및 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160명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을 했었는데, 그 회의 석상에서 박 대통령은 1968년도에는 전년도 보다 10배에 달하는 무장간첩이 남파될 것이라고 경고를 함으로써 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참고로 1967년도에 발생했던 사건을 살펴보면 1967년 1월에 발생했던 해군56함 피격사건을 비롯해서 중부전선 203초소 습격사건(1967.2.3), 북괴군의 판문점 후방 미군막사 습격사건(1967.8.28), 경원선 폭파사건(1967.9.5), 경의선 폭파사건(1967.9.13), 임진강 미 경비정 피습사건(1967.10.6), 동해휴전선 남방에서 어로중인 어선 228척 피습사건(1967.11.3) 및 신광호, 대광호 등 어선 7척 납북사건(1967.12.6) 등 10건이었다.
그 날 비상치안회의에서는 먼저 국방부의 당무자와 치안당국의 당무자가 보고한 전년도 대간첩작전의 실적보고와 박 대통령의 작전지침 강조가 있은 다음 의제로 채택된 대간첩작전의 지휘계통 단위화 문제와 육상과 해상으로 침투하는 무장공비들의 침투로를 봉쇄하기 위한 각 군의 협조 및 민간방위체제 강화문제 그리고 주요산업 및 병참시설 보호방안 등을 진지하게 논의했는데, 박 대통령이 1968년에는 1967년 보다 10배나 더 많은 무장간첩들이 남파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까닭은 1968년을 기해서 북괴가 종전의 고정적인 간첩활동에서 작전을 변경하여 남한에서의 조직강화와 요인 암살, 경계 및 반공단체의 교란, 월남 파병의 저지 등을 목표로 전술을 바꾸었고, 또 무장공비의 대량남파에 의한 대방파괴공작을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상치안회의의 의제 가운데 첫번째 의제인 '대간첩작전의 지휘체계 단일화' 문제는 그때까지는 중앙정보부에서 관장을 해 왔던 작전상의 지휘권을 작전의 보다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국방부에서 관장을 하고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지휘체계를 확립하기로 결정을 보게 된 것이었는데, 1군사령부에서 비상치안회의가 개최되기 이틀 전 청와대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즉, 1968년도의 새해를 진해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맞이했던 박 대통령은 귀경을 위해 4일 오후 1시경 진해에서 회동한 나와 2명의 경호원들과 함께 전용기동차 편으로 진해역을 출발했는데, 상경하는 도중 경부고속도로의 예정노선을 공중 정찰하려고 했던 박 대통령은 일단 대구에 기착하여 그곳에서 2대의 헬기를 동원하여 일단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계속 북상을 하며 공중정찰을 했다.
그러던 중 박 대통령과 내가 탑승한 1번 헬기가 추풍령을 지나 영동(永東)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엔진에 이상이 생겨 부득불 야산기습에 비상착륙을 하자 잠시 후 뒤를 따르고 있던 2번 헬기도 그 근처에 착륙을 했는데, 바로 그때 대전 방면으로부터 남으로 비행중에 있던 2개의 미군 헬기가 야산기슭에 착륙해 있는 3대의 헬기를 발견하곤 혹시 조난을 당한 헬기가 아닌가 해서 그 산기슭에 착륙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군 조종사들에게 박 대통령께서 합승한 헬기라고 말하고 서울로 가는 도중 엔진에 고장이 나서 불시착을 한 것이라고 했더니 그들은 친절하게 박 대통령과 나를 그들의 헬기에 태워서 대전비행장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전에 도착한 박 대통령과 나는 경호원들이 취한 연락을 받고 비행장에 마중 나와 있는 충남도지사의 승용차를 타고 구 국도를 따라 북상을 했는데, 가는 도중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경계지대에 이르니 박태원 경기도지사가 그 길목에 대기하고 있다가 박 대통령과 나를 그의 승용차에 태워 수원으로 가서 시장끼가 든 박 대통령과 나를 시내 일각에 있는 움막으로 지어진 서민적인 갈비집으로 안내하여 요기를 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고 밤 11시경 청와대에 도착하게 된 박 대통령과 나는 청와대 본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그의 입에서 1월 6일 원주에서 개최될 예정인 비상치안회의를 중앙정보부에서 주관하도록 해 달라는 말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화를 버럭 내며 "대간첩작전은 국방부에서 하는 거야. CIA는 정보만 제공하면 되는데 왜 나서려고 하는 거야. 뒤에 물러나 있어!" 하고 일갈을 함으로써 이미 결심을 굳히고 있든 국방부 중심 지휘체계를 그대로 밀고 나가도록 했다.
따라서 그런 일로 나의 면전에서 그런 수모를 당하게 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나 사이에는 눈에 띠지 않는 갈등이 빛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박 대통령과 내가 다녀갔던 그 움막갈비집은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전해져 서울로부터도 많은 고객들이 몰려가는 등 유명세가 붙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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