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10대사령관 김연상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2회)-1

머린코341(mc341) 2015. 1. 6. 22:39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2회)-1


기획시리즈 장군의 비망록 - 김연상 장군편(2회)

金然翔장군의 생활철학은 '항상 젊게 살자'이다.
그는 고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매일 아침 두시간씩 동네 헬스센터에 나가 운동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일년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얼핏보아도 그의 건강은 확연히 드러난다.

젊은이들조차 들어올리기 힘든 130kg의 바벨을 어깨에 거뜬히 메고 몇차례씩 일어섰다 앉았다 반복한다.

몸소 시범을 보이던 金장군은

"내가 자랑할 것이라곤 아직도 귀신잡는 무적의 해병소위처럼 겁없이 젊게 산다는 것뿐이여.

옛날에 뭐 잘했다 못했다. 이러쿵 저러쿵 쓰지 말고 그런거나 제대로 부각시키라고.

내가 비록 해병중장으로 제대했지만 말야, 마음은 지금도 임관때의 소위기분으로 살아가고있지.

자 보라고 내 팔뚝, 어때"

라고 하면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결국 임관형식은 '해병사관 1기'였다.

당시金장군이 해병소위로 임관한 것은 6.25가 발발하던 해인 50년 1월이었다.
임관식은 태릉 육사교정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해군의 교육여건이 완전치 않아 육사 9기생들과 함께 육사교정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처음에는 해군장교로 자원했지만 교육과정에서 해병대가 창설되자

해병신병 교육장교요원으로 선발돼 해병소위 계급장을 달게 됐다.


金장군처럼 육사에서 의탁교육을 받고 임관한 동기생은 모두 33명. 군번은 성적순으로 부여됐다.

金장군의 군번은 80582. 동기생중 가장 성적이 좋아 군번이 선두였다.

'8'자는 해군을 뜻하는 것이고 '582'는 장교배출 순서를 말한다.

그러나 해군 전체로서는 582번째였지만 해병사관 1기생으로서는 첫번째 군번이었다.

임관식이 끝나자 金장군은 동기생 33명과 함께 제주도 해병대사령부에 도착했다.

당시 해병대사령부는 제주도에 있었다. 사령부에는 장교및 사병 등을 포함, 모두 300여명이 주둔해 있었다.

그러나 해병대 창설 초기단계여서 그런지 훈련체계나 조직 등 모든게 엉성했다.

金장군일행에게 주어진 첫번째 임무는 신병교육이었다.

무적해병을 만들어내는게 주요임무였다.

이들은 최초의 해병사관출신 장교라는 자부심을 갖고 교육에 전념했다.

특히 金장군은 일본군에서 태평양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어 그때 배운 훈련방법을 응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체제를 막 정비할 무렵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남하하는 적을 막기위해 해병은 군산과 장항 및 통영 등지로 출동,

끝까지 방어선을 지키며 몸으로 막기도 했다.

한국 해병이 용감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金장군 등 교관요원 일부는 남아서 제주도내의 젊은 사나이들을 급히 모집(신병 3기,4기),

총쏘는 법 등 간단한 훈련을 시켰다.

전세는 풍전등화였다.

계속 밀리던 아군은 낙동강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서둘러 부산항에 도착한 金장군 등은 중대편제를 마치고 목숨건 출전채비를 갖췄다.

이때가 9월초. 며칠뒤 드디어 출전명령을 받았다.

金장군은 중대장 직책으로 중대원을 이끌고 배정된 상륙함에 승선했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 정확한 행선지는 알 수 없었다.

남해안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망망대해의 파도는 거칠었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전장에 나가는 중대원들은 가끔 노래도 부르며 흥겨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불안한 심정과 공포를 달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속으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얼마쯤 항해했을까. 또 다른 무리의 군함들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함정 수십척도 시야에 들어왔다.

金장군 등은 그 함대선단과 합류하여 계속 항진했다.

최종 목적지가 인천이라는 것을 안 것은 9월25일 새벽이었다.

조용히 항해하던 선단은 25일 새벽을 기해 일제히 멈추더니 집중적인 함포사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전폭기 수십 편대가 하늘을 날으며 맹폭을 가했다.

육지는 완전히 불바다로 변해 버렸다.

이곳이 인천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고 있었다.

해병의 '몫'이 눈앞에 던져졌다.

유사시 효과적인 상륙전을 감행, 적의 요새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것이 해병대가 할 일이었다.

함포사격 및 전폭기 폭격은 계속됐다.

金장군 등 해병 정예부대원들에게 '특공명령'이 하달됐다.

"인천을 완전히 장악하라"
상륙주정에 옮겨 탄 해병요원들은 인천 앞바다의 새벽 파도를 가르며 목표지점을 향했다.

컴컴한 새벽이었지만 함포사격에 의해 내뿜는 불빛으로 가는길은 어둡지 않았다.

상륙주정의 항진대열은 적의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원을 그렸다가 일렬 종대형태로 앞으로 진격했다.

첫상륙지점인 월미도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월미도 주변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해병대원들은 횡대형으로 순식간에 인천쪽으로 치달았다.
때마침 상륙지점에 수십발의 연막탄이 터졌다.

포탄불빛으로 적에게 시계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해병요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원 인천땅에 상륙했다.

이어 숨돌릴 틈도없이 인천시가지쪽으로 돌진했다.

이때였다. 적탄환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러나 적의 주력부대는 이미 퇴각한뒤여서 별다른 화력은 없었다.

해병대의 반격이 즉각 개시되자 적은 혼비백산 도망치는 것이었다.

金장군이 이끄는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했다.

전의를 상실한 적들은 해병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적을 쫓다보니 어느새 인천공원까지 당도했다.

金장군은 부하들에게 속임수가있다고 일러준 뒤 첨병을 내보내 적의 은거지를 수색토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수십명의 인민군들이 호속에서 아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 사전에 적 참호의 위치를 포착한 金장군은 공격신호를 알렸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류탄을 던지며 일제히 집중사격을 가했다.

해병용사들의 기세에 눌린 인민군들은 '살려달라'며 손을 들고 나오는가하면 삼십육계 도망치기도 했다.

인민군의 요새가 완전히 무력화됐다.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된 후 첫번째 개가를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목표는 수도서울이었다.

인민군에게 유린당한 서울을 하루라도 빨리 탈환하는 것이었다.

인천공원을 내려온 해병대 용사들은 부평입구 고개를 막 넘으면서 적 전차 4대와 맞닥뜨렸다.

아군을 발견한 적전차는 금방이라고 박살낼 기세로 돌진해왔다.

위기일발이었다.

金장군은 중대원들에게 "흩어져라"고 명령하면서 도로옆 콩밭으로 몸을 날렸다.

이를 본 적전차에서 기관총 공격을 가해 왔다.

어느 새 전차는 불과 수십미터 앞까지 다가왔다.

중대원 몇명이 오더니 "중대장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저희가 막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총알받이를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적전차를 향해 "야 죽어라"하면서 집중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소총공격으로 적전차를 물리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깨기나 마찬가지였다.

이때였다.

행운의 여신은 구국의 일념으로 무장한 해병대용사들을 그냥 당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뒤따르던 아군 1개 중대병력이 고갯마루까지 올라왔다.

그 중대에는 전차를 궤멸시킬 수 있는 로켓포가 있었다.

때마침 공중에는 아군관측기가 선회하고 있었다.

"아 하늘이 돕는구나" 金장군은 무전병을 급히 불렀다.

약속된 주파수를 돌려 관측기와 교신을 했다.

관측기는 삽시간에 저공비행을 하더니 뒤따르던 아군중대에게

로켓포로 명중시킬 수 있도록 적전차의 위치를 알렸다.

관측기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면

웬만한 포공격은 백발백중 성공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金장군은 잘 알고 있었다.

불과 몇초가 지나지 않아 로켓포에서 불을 뿜었다.

'꽝'하는 폭음과 함께 선두의 1번 전차가 풀썩 주저앉았다.

로켓포에서 다시 불을 뿜었다.

이번에는 맨뒤 4번 전차를 명중시켰다.

맨앞과 맨뒤 전차를 무력화시키면 2,3번 전차는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할수밖에.

정말 통쾌한 순간이었다.

당황한 2,3번 전차도 보기좋게 나가 떨어졌다.

이를 본 중대원들은 박수를 쳤다.

金장군의 회고.
"...당시 인천상륙에 참가한 해병용사들은 대부분 제주출신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제주도내에 있는 청년들을 급히 불러들여

속성교육을 시킨 뒤 나와함께 상륙작전에 참가했던 것이다.

그들의 용맹성은 대단했다.

서로가 총알받이를 하겠다고 나섰을 정도로 충성심도 뛰어났다.

훈련때에도 느꼈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순박하고 깨끗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훈련때 신병들에게 뭐라고 물으면 그들은 "모르쿠다"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모르쿠다'는 '모르겠습니다'의 제주도 사투리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중대원들에게 '모르쿠다 부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전에 '모르쿠다'가 아니었다.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상관에 대한 충성심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다음편 2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