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10대사령관 김연상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2회)-2

머린코341(mc341) 2015. 1. 6. 22:40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2회)-2


내가 전쟁을 세번 치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당시 그들처럼 용맹스러운 군인은 별로 접해보지 못했다...

" 金장군은 가끔 '모르쿠다' 용사들이 생각나면 국립묘지로 무작정 발길을옮긴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 석자만 씌어진 채 말없이 누워 있는 '용사'들을 불러본다고 한다.

계속되는 金장군의 회고.
"...내가 국립묘지에 왜 가느냐고?

전쟁 안해 본 사람은 몰라. 때로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할 때도 있어.

전쟁때 그들이 안죽었으면 내가 죽었을 거야.

국립묘지에서 누워 있는 수많은 용사들을 생각해봐.

그들은 결코 가지 않았어.

난 그들과 가끔 대화를 나누기도 해.

'이봐 金병장, 적이 와. 어서 일어나 싸워야지'하고 말야..."

金장군은 그렇게 국립묘지를 다녀오면 적어도 한달동안은 마음이 무거워 두문불출,

방안에서 멀그머니 천장만 바라본다.

그리고 빛바랜 전투복차림의 사진들을 담은 앨범곁에는 아예 얼씬도 안한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당시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탓이다.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金장군은

"이봐, 기자양반. 전쟁이 지겨워. 내주위에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해봐"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일제때의 태평양전쟁,

6.25,

그리고 월남전....

도합 7년동안 전쟁을 치른 金장군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으리라.

중견 소설가 千勝世씨의 단편 '포대령'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어느 날 육군대령으로 예편한 '包대령'한테 옛 부하가 찾아왔다.

뜨겁게 포옹한 이들은 거나한 술판을 벌였다...

술에 취한 包대령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야 임마 적이 쳐들어와. 돌격!"하고 외쳤다.

술상을 밀치고 둘은 벌판으로 나갔다.

둘은 낮은 포복으로 적진지를 향해 기어올라갔다.

적의 기관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중대장님'하는 비명소리가 包대령의 귀에는 가득했다.

包대령은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따르라"면서 성큼성큼 적진지로 걸어가더니 일격에 쳐부숴 버리는 것이었다....)

비록 회화적인 표현이지만 전쟁터에서 맺어진 전우애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시 인천상륙 당시의 상황.

적전차 4대가 궤멸되자 해병용사들은 다시 '돌격 앞으로'를 감행했다.

파죽지세였다.

드디어 9월26일 '무적해병'이 서울에 도착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서울이 탈환됐고 이틀뒤에는 서울을 완전수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울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金장군은 "당시 서울역 앞에 도착했더니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우리를 열렬히 환영했다.

전투중 그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은 접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을 수복한 뒤 쉴 겨를도 없이 의정부까지 순식간에 진격한 金장군의 해병은 1차 작전을 완료하고

제2의 원산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전열을 재정비했다. (계속)


다음편 3회-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