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10대사령관 김연상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3회)-2

머린코341(mc341) 2015. 1. 6. 22:42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3회)-2


金장군은 이때 부하를 쏴 죽일 뻔한 적이 있었다.

미10군단과 연락한 뒤 金장군은 본격적으로 철수하기 위해

그동안 노획한 인민군 무기들을 모두 분해해서 땅에 파묻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철수직전 명령이행 여부를 확인했으나 지켜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金장군은 전장에서의 명령불복종은 총살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金장군은 즉결처분하기 위해 권총을 빼들고 부하의 이마를 겨누었다.

부하는 제주도 해병사령부에서 金장군한테 교육받은 해병상사였다.

상사는 金장군의 총구를 잡으며 "교관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하는 것이었다.

할수없이 金장군은 총을 거두고 없었던 것으로 덮어두었다.

철수작전은 계속됐지만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눈은 깊이 쌓이고 추위와 배고픔까지 엄습해 왔다.

내복을 두벌이나 입었지만 혹한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목욕을 몇달동안 못해 이가 득실거렸다.

그런데도 가려움을 몰랐으며 전신이 마비된 것 같았다.

특히 부상자를 후송하는 차량들이 적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날이 새고 계곡에서 마전리쪽으로 내려오자 아군탱크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갑자기 두다리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金장군은 잠시 쉴 것을 명령했다.

이때 金장군의 계급은 소령, 연대작전장교였다.

金장군 역시 잠시 휴식을 취할 생각으로 어느 농가에 들어갔다.

집주인은 없었다.

배가 고파 부엌으로 들어갔더니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궁이에 불을 땐 흔적이 있어 발을 집어넣어 몸을 녹였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쳐들어온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아군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특히 金장군 등과 함께 선단을 이루다 함흥상륙작전을 감행했던

미해병 제1사단이 장진호 일대에서 적들에게 포위되어 피해가 막대했다는 보고내용은 일대 충격이었다.

이른바 1.4후퇴. 金장군 등 한국 해병은 원산에 있는 함남도청에 집결했다.
그런데 사방에서 몰려온 피난민들때문에 도청앞은 인산인해였다.

이대로 두었다간 군인들도 피난선에 옮겨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온 묘책은 "이곳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예정이니 모두 떠나라"는 것이었다.

피난민들이 흩어지는 틈을 타서 아군들은 원산 부두가로 치달아 준비된 상륙주정에 올랐다.

그러나 피난민들의 아우성은 계속됐고 부두가로 물밑듯이 밀려왔다.

그냥 놔두었다간 수백명이 바닷물에 떨어져 죽을 판이었다.

부득이 金장군은 1개 중대를 부두가에 배치해 공중으로 총을 쏘도록 했다.
겁에 질린 부녀자들이 밑에 깔리는등 아수라장이었다.

결국 이들중 일부는 상륙주정에 옮겨탔고

나머지는 도보로 해안을따라 강원도 고성 속초 등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金장군 등 한국 해병들도 상륙주정에 승선, 부산항으로 후퇴하게 됐다. 金장군의 회고.

"...그때 부산항에 도착한 우리 해병은 그야말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나는 다음 전투에 참가하기전, 부대원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약간의 돈을 주고 48시간 외박을 허용했다.

그러나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다.

이들은 전쟁때문에 굶주린 이리떼나 마찬가지였다.

사고를 안낸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해병헌병대장실에 있으면서 사고처리에 대비했다.

그런데 부대원들은 용케도 아무런 큰 사고도 없이 약속된 시간내에 모두 귀대했다..."

며칠뒤 金장군 일행은 다음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경남 진해로 부대이동을 했다.

이번에는 인민군과의 싸움이 아니라 중공군과 겨뤄야 한다는 정신무장으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중동부전선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시 상륙주정에 승선, 출항채비를 갖췄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金장군한테 빨리 내리라고 손짓을 했다.

무슨 사고가 난 줄 알았다.

부대장도 별일 아닐 것이라며 내리지 말라고 했다.

할 수 없이 金장군은 짐보따리를 가지고 하선했다.

이유인즉 金장군은 새로 편성된 포병장교로 보직이 옮겨졌다는 것이었다.

金장군은 얼마간 포병교육을 받고 이번에는 포병대대장으로 임명됐다.

육군포병학교와 미해병 포병부대에서 교육을 받았다.

해병사상 처음으로 포병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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