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10대사령관 김연상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3회)-3

머린코341(mc341) 2015. 1. 6. 22:43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3회)-3


포병장교로서 첫 부임한 곳은 강원도 화천일대였다.

미해병포대와 같이 근무하게 됐다.

그러나 적 포병공격이 만만치 않아 춘천으로 곧 후퇴했다.

계속되는 金장군의 회고.

"...그때 포사격량은 엄청났다.

얼마나 쐈는지 귀가 먹을 정도였다.

가는 귀를 먹어 지금도 작은 소리는 잘 안들린다.

하루는 포사격 지휘본부에서 각도를 잘못 가르켜주는 바람에

지금의 판문점 앞 대성동마을을 포격한 일이 있었다.

그곳은 사격금지 구역이었다.

그리고 '진내포격'을 가한 적도 있었다.

진내 포격은 전쟁때 최후의 수단으로 절대절명의 순간에 하는 것이었다..."

진내포격이 이루어진 것은 휴전협정이 조인되기 직전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지금의 임진각 건너 155고지가 있었고 이곳에서 북쪽으로 86고지가 있었다.

86고지는 한국해병 1개 중대가 진지호속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86고지가 적 수중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86고지가 뚫리면 155고지는 물론이거니와 서부전선 요충지를 적에 모두 빼앗길 우려가 있었다.

적은 86고지의 아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시시각각 아군을 조여왔다.

고심하던 金장군은 중대원들에게 모두 호에 들어가라고 한 뒤 진내사격을 명령했다.

진내사격은 아군진지에다 집중포격하는 것이다.

아군의 피해를 무릅쓰고 아군진지에 들어온 적을 섬멸하려는 것이다.

얼마나 쏘아댔는지 86고지 진지주변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줄잡아 1만여발의 포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날이 새어 86고지로 가봤더니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살아남은 아군 중대장이 金장군을 보더니

얼이 빠진 상태로 "포탄이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金장군은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金장군의 회고.

"...전쟁에서 의식주 다음에는 '민생고'를 잘 해결해야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민생고는 다름아닌 '성'문제다.

가끔 병사들이 내게 찾아와 '대대장님 민생고가 도탄에 빠졌습니다' 하면

나는 하루에 몇명씩 외박을 내보내기도 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부대원들이 외박을 나갔는데

아예 서울 기생촌에 들러 여자 한명을 데려왔다.

알고보니 부대원들은 여자한테 다가가 약간의 돈을 주고

'우리 대대장을 즐겁게 해줘야겠다'고 설득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만약 미군헌병들에게 들키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빈드럼속에 여자를 감추고 군트럭을 이용해서 부대까지 데려왔다고 부연설명했다.

그런데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부대원들이 여자를 데려와 잠시 참호속에 대기시킨 사이

다급한 병사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참호속을 들락거렸던 것이다.

나중에 여자가 내게 찾아오더니 화를 버럭 내며

'도대체 이 부대에는 대대장이 몇명이에요'하는 것이었다.

할수없이 나는 돈을 조금더 쥐어준 뒤 서울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도록 시켰다..."

마침내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악몽같았던 전쟁이 끝났다.

金장군은 군복을 벗고 부모님이나 모시며 살 생각에 고향으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