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10대사령관 김연상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5회)

머린코341(mc341) 2015. 1. 7. 17:11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5회)

 

“ 지난 67년 2월14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월남의 ‘짜빈동전투’의 한국군전과는 실로 대단했다.

 

베트콩을 포함한 월맹군 정규군의 전사자는 모두253명.얼핏 보아도 믿어지지 않을 대단한 전과였다.

 

아군은 15명이 전사했다.

 

원래 쌍방간에 맞붙은 전투에서 적보다 51%를 이겼으면 ‘전승’이라는 말을 하고 60%를 이겼으면 ‘대승’,그리고 70%이상의 승리를 ‘대첩’이라는 용어로전사에 기록된다.

 

그런데 짜빈동전투는 양쪽 전사자수만 비교하더라도 ‘15대 253’을 기록했으니 실로 엄청난 ‘대첩’이 아닐 수 없다.

 

월남전장에 나와 있던 각군 관계자들이 몰려오고, 외신기자 100여명이 특별전세기편으로 청룡부대를 찾아와 취재에 열을 올릴 정도였다.

 

미해병 고위관계자들조차도 혀를 내두르며 신출귀몰한 작전의 결과를 본국에 보고했다.

 

미국의 존슨대통령은 매우 이례적으로 청룡부대를 ‘특별표창’했다.

 

특히 대만 군당국에서는 청룡부대장 金然翔장군에게 초청장을 보내‘짜빈동대첩’에 관해 특별 전술교육을 해달라는 제의까지 해왔다.

 

또한 외신기자들의 집요한 요청에따라 작전개요를 브리핑했고 기자회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기자회견 때 해프닝이 벌어졌다.

 

기자회견장인 사이공 외신구락부에는 티우대통령까지 참석했다.

 

물론 한국 월남 미군측 군고위장성들이 모두 나왔다.

 

기자회견은 청룡부대 작전참모 吳允晋중령(예비역 소장,상명여대교수)이 작전성과에 대한 브리핑이 있고 나서 곧바로 이어졌다.

 

吳중령이 기자들을 상대로 직접 일문일답을 벌였다.

 

티우대통령 등 월남군관계자들은 시종일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기자들중 한사람이 백병전에서 어떻게 적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었느냐””고 질문했다.

 

吳중령은 태권도 동작을 보이며 한국군인들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이 돼 있다면서 손가락을 ‘V’자 형태로 하여 적의 눈을 가격하는 시범을 즉석에서 보여줬다.

 

그랬더니 이 동작이 너무 충격적으로 느껴졌던지 일부 기자가 “”어떻게 민주군대가 적이라고 해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다룰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다른 기자들도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듯했다.

 

당황한 주월한국군사령부에서는 기자들을 상대로 일일이 태권도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보다 앞서 짜빈동전투가 벌어지기 하루 전날

월남의 사이공에는 丁一權국무총리 金聖恩국방부장관 姜起千해병대사령관 등 고위인사 수십명이 위문차 도착해 있었다.

 

이들은 청룡부대가 짜빈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사이공의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청룡부대 주둔지인 광나이지역으로 달려와 장병들에게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丁총리 일행 등이 귀국한 직후 金장군은 朴正熙대통령의 친서를 받았다.

 

대한 남아의 용맹성을 세계 만방에 떨쳐서 무척 기쁘다는 내용과 함께 공훈을세운 소대장 申元培소위와 11중대장 정경진대위 등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겠으니 귀국시키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金장군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朴대통령이 친히 봉투까지 만들어 친서를 보낼 만큼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알고 더욱 감격했다.

 

金장군은 이러한내용을 전부대원들에게 알려 사기를 북돋았다.

 

며칠 뒤였다.金桂元육군참모총장이 청룡부대를 방문한다는 연락이 사이공에서 왔다.

 

예고도 없이 한국군 최고지휘관이 일선을 방문한다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었다.

 

金장군은 걱정이 앞섰다.

 

최고지휘관이 비공식방문으로 일선을 찾는 경우는 대개 일선 지휘관이 지휘상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최종단계,즉 문책직전에나 있는 일이었다.

 

金장군은 혹시 자신이 잘못한게 있나 싶어 내심 불안했다.

 

갑작스런 육참총장의 방문이 꺼림칙했다.

 

드디어 金총장이 청룡부대 주둔지에 도착했다.

 

金장군은 金총장을 자신의집무실로 안내했다.

 

金총장은 의자에 앉자마자 “”노고가 많소.그런데 도대체 그 비결이 뭐요?””하고 대뜸 물었다.

 

金장군은 비결이 무슨 뜻이냐고 반문했다.

 

金총장이 묻는 내용은 다름 아닌 짜빈동전투에서의 승리비결이었다.

 

그러면서 평소 부대운용을 어떻게 하느냐고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 金총장이 직접 청룡부대를 방문하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丁총리 일행이 귀국한 후 丁총리가 朴대통령한테 현지에서 직접 확인한 짜빈동전투의 결과보고를 자세히 했다.

 

그러자 朴대통령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날 저녁 각군지휘관들을 청와대로 불러 거나한 술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朴대통령은 金총장에게

“내일 당장 월남땅으로 가서 청룡부대장병들을 격려하고 승리의 원인을 잘 분석해 보라”고 즉석에서 명령했다는것이다.

 

그제서야 모든 궁금증이 풀린 金장군은 불안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金총장의 물음에 자세히 대답했다.

 

金장군은 우선 짜빈동전투의 결과를 브리핑했다.

 

그는 또 과거 자신의 전투경험을 회고하면서 우선 하사관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사관은 장교와 사병사이의 교량역할은 물론 부대 인화단결을 위해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되도록 재량권을 많이 주는 것이 유사시 전투력을배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대방문을 마친 金총장은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청룡부대의 사기와 부대운용 상황 등을 朴대통령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朴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하사관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던지 육군에도 특별히 하사관의 위상을 재고토록 지침을 하달하기도 했다.

 

金장군은 당시 짜빈동전투를 떠올리면서

“당시 작전참모 吳중령이 고비때마다 뛰어난 지략을 발휘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吳장군은 “당시 지휘관과 작전참모가 호흡이 잘 맞았다”면서

“짜빈동전투야말로 전중대원이 일개급 특진할 정도로 해병 전사에 길이 빛나는 전투”라고 강조했다.

 

吳장군은 또 당시 적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 평소 부대훈련이 잘 됐고

* 진지편성을 효과적으로 운용한데다

* 백병전에서 적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吳장군은 특히 전투가 끝난 직후 적의 시체들을 아군진지밖에 진열해 놓아 찾아가도록 유도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끝내 찾아가지 않은 시체 수십구는 할 수 없이 아군측에서 매장하고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장에서의 피의 보복은 어쩌면 당연한 일.

 

적은 ‘완전 참패’라는선물을 안겨준 청룡부대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지휘관들은 어떻게 해서든 보복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법.

 

원래 짜빈동지역은 월맹군 장성급이 지휘할 만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그러니 월맹군 장성으로서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짜빈동전투가 벌어진 지 약 두달 뒤 북위 17도선상의 공해상에 정체불명의 철선 하나가 아군측 레이더에 잡혔다.

 

이 철선은 남항하던 중 곧 각도를 꺾어 청룡부대 주둔지로 이어지는 바탄칸반도까지 접근해 들어왔다.

 

金장군은 이날따라 저녁식사를 마친 뒤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상황장교의 긴급보고를 받았다.

 

적의 철선으로 간주되는 배 한척이 바탄칸해안을 통해 광나이지역으로 연결되는 강하구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金장군은 또 그 배의 항로 경유에 대해서도 보고받았다.

 

金장군은 틀림없는적철선임을 예감했다.

 

아군측의 배라면 사전에 통보해 주는 것이 뻔한 일이었다.

 

특히 레이더 추적 결과 그 배의 항로가 월맹쪽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결정적인 단서나 마찬가지였다.

 

金장군은 해안에 주둔해 있는 해병부대원들에게 적철선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라는 일단계의 명령을 내렸다.

 

전투에서 감으로 적을 때려잡을 때처럼 기분좋은 일은 없다.

 

金장군은 왠지 기분이 썩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깜깜한 밤이라는 점이었다.

 

미군측은 밤중에는 비행기를 지원해 주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金장군은 조니워커 양주 한병을 단숨에 비웠다

(그는 술이 세다.지금도 양주 3병정도는 마셔야 약간 취기가 오른다고 한다).

 

평소 金장군은 결단을 내리면 적을 단숨에 제압해야 한다는 전투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金장군은 속으로 ‘저들이 분명 짜빈동전투의 패배를 앙갚음하려고 야음을 틈타 공격하려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또 한번 한국해병의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金장군은 옆에 주둔해 있는 미육군 사단본부에 가서 적의 동태가 수상하니 정찰용 헬기 한대만 지원해 달라고 했다.

 

미군관계자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술냄새를 풍기며 찾아온 金장군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金장군은 소리를 버럭지르며

 

“이봐 전투에 주야가 어딨어.

해병장군인 내가 직접 정찰할 것이니 무조건 내놓라”고 했다.

 

金장군의 기세에 눌렸던지 헬기한대를 순순히 내주었다.

 

金장군은 해병포병들에게 포격지점을 알려주면서 사격준비를 명령했다.

 

金장군은 수명의 무장병력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

 

그러나 야간에 정찰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시계가 어두워 저공비행을 하다가 공격을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적철선의 위치를 확인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金장군은 무전으로 예상지점에다 포사격을 명령했다.

 

포사격은 밤새 이루어졌다.

 

金장군은 초조하게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희미하게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金장군은 미리 대기시켜 놓은 수색중대를 출동시켰다.

 

작전참모 吳중령이 일개 소대병력을 이끌고 헬기로적철선 상공을 맴돌았다.

 

적철선은 광나이로 이르는 강입구까지 들어와 멈춘 상태에서 자욱한 연기속에 싸여 있었다.

 

아군측이 쏜 포탄에 맞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저공비행으로 확인해 보니 조타실이 명중됐다.

 

吳중령은 수색중대원들에게 신속히 승선해서 샅샅이 뒤지라고 명령했다.

 

수색대원들은 상륙용 고무보트를 타고 조심스럽게 배안으로 들어갔다.

 

적의 공격은 없었다.

 

죽은 시체 몇구가 널려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도망하고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수색중대원들의 보고가 놀랄 만한 것이었다.

 

배안에는 탄약이 가득 실려있고 수천정의 중국제 무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金장군은 웬떡이냐 싶어 자세히 조사시켜 보니 그 배안에는 소총 등 중국제 신식무기 3천여정과 탄약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수색대원들이 헬기지원을 받아 배안의 무기들을 아군진지로 신속히 운반하고 배는 별도로 예인했다.

 

아군측 사상자는 하나도 없이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계속)

 

출처 : 뉴스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