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10대사령관 김연상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6회)

머린코341(mc341) 2015. 1. 7. 17:16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6회)

 

“ 金然翔장군은 과거에 대한 회상을 꺼린다.

 

평생 군에 몸을 담았고 전쟁을치른 기간만 해도 7년이기 때문에 숱한 사람이 죽어간 과거사를 되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덧없는 일이라고 金장군은 말한다.

 

전쟁 얘기를 하다보면 객관성을 잃고 마치 자신이 모든 전공을 세운 것처럼 미화될 수 있다는 점을 金장군 스스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월남전때의 무용담 등을 회고하게 되면 승리의 기쁜 순간도 있었지만 반면에 부하잃은 가슴아픈 추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회상하지 않으려 한다.

 

金장군은 2년동안 월남전장의 청룡부대장으로 재임하면서 수많은 전투를치렀다.

 

특히 북위 17도선 최전방에 주둔했던 까닭에 승리도 많이 했지만 부하잃은 슬픔도 많이 겪었다.

 

金장군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부하 한사람이 있다.

 

지덕칠하사.


67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이날도 지하사는 여느 때처럼 출동채비를 갖추고있었다.

 

지하사는 위생특과 하사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완전무장을 하고 막 내무반을 나서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자신의군화 한쪽이 눈에 보이질 않았다.

 

내무반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지하사는 예감이 이상해서 막사밖을 나와 이리저리 살폈다.

 

순간 군화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장옆에 자신의 군화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지하사는 ‘누가 이걸 버렸지’하면서 군화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군화에는 이빨자국이선명했다.

 

지하사는 개이빨자국임을 알 수 있었다.

 

원래 개를 좋아하는 지하사는 전장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강아지 한마리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었다.

 

그 강아지가 자신의 군화 한쪽을 물어다 버렸던것이다.

 

지하사는 ‘저놈이 이젠 나를 골탕까지 먹이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군화를 신고 부대원들과 함께 출동했다.

 

1개 대대가 적진지를 공격하는것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피아간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될 즈음 지하사가 소속된 중대병력이 기습을 받고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중대원들은 퇴로를 찾아 부득이 작전상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상병들이 많아 후퇴가 순조롭지 못했다.

 

지하사는 옆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부상병들을 우선 업고 안전한 곳으로옮겼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지하사의 헌식적인 노력덕택에 부상당한 중대원들 대부분은 목숨을 건질수 있었다.

 

그런데 지하사가 또 다른 부상병이 없나 하고 다시 포탄이 쏟아지는 포위망안에 들어갔다가 그만 적 총탄에 맞고 말았다.

 

중대원 수십명을 구하고 자신은 장렬하게 산화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청룡부대원들은 지하사의 투철한 해병혼을 가슴깊이 새기며 모두들 슬퍼했다.

 

또한 지하사가 애지중지 키웠던 강아지는 주인이 전사했음을 아는지 지하사의 군화 한쪽을 버렸던 곳에서 한참동안 떠나질 않았다.

 

마치 주인의 군화 한쪽을 더 멀리 꼭꼭 숨겨두었더라면 주인이 죽지 않았을텐데 하고 후회하라도 하는듯.

이로부터 며칠뒤 본국에서 평소 金장군이 잘 알고 있는 군장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참전중 전사자의 동상을 만들 수 있는 탄피를 좀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金장군은 때마침 잘됐다 싶어 지덕칠하사의 동상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하면서 포탄탄피 5t을 해군함정편으로 보냈다.

 

그런데 며칠뒤 국내언론에 ‘청룡부대장이 탄피를 밀수하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지하사의 장렬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동상제작용으로 탄피를 보낸 것이 졸지에 밀수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깜짝 놀란 金장군은 본국에 전화를 걸어 강력히 항의했다.

 

당시 월남전에서 사용됐던 탄피는 해군함정을 통해 적잖게 한국으로 밀수되고 있었다.

 

따라서 주한미군에서는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은밀히 조사를 하고 있었다.

 

며칠후 다행스럽게도 金장군은 밀수혐의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金장군한테 전화를 걸어 언론이 잘못 보도했으며 아무런 혐의가 없으니 걱정말라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같은 오해가 생긴 배경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월남전에서 많은 공훈을 세운 金장군은 朴正熙대통령의 총애를 받았고 특히朴대통령은 金장군이 귀국하는 대로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시킬 것이라는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시기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위기의식을 느낀 모장성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金장군을 눌러보려고 했던 것이다.

 

몇가지 해프닝은 있었지만 결국 金장군이 보낸 탄피는 지덕칠하사의 동상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현재도 이 동상은 진해 해군기지 입구에 서 있다).

 

金장군은 월남전에서 하사관들의 활약은 대단했다””면서

“”특히 분대장들의용맹성은 적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당시 하사관들의 활약상을 높이 평가했다.

 

67년 3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다.

 

청룡부대 주둔지 광나이는 적의 무기공급로로 연결되는 바탄칸지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날도 金학영하사가 이끄는 13명의 1개분대 매복조가 바탄칸지역의 무기공급로에 매복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金하사는 분대원들에게 오늘 적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니 바짝 긴장하고 있으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건 1개 중대병력은족히 넘는 것이 아닌가.

 

1개 분대로 맞선다는 것은 그 결과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적이 너무 가까이 왔기 때문에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무리였다.

 

金하사는 속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되뇌면서 분대원들에게 “내가사격명령을 내릴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일렀다.

 

이윽고 적 1개 중대병력이 金하사의 매복조가 있는 곳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적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적의 중대행렬이 반쯤 통과될무렵 金하사는 사격신호를 보냈다.

 

수류탄이 터지고 M16 소총에서 일제히 불을 뿜었다.

 

기습을 받은 적들은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백병전도 함께 벌어졌다.

 

그러나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적들은 대부분 혼이 나간 채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을 쳤다.

 

잠시후 주위는 다시 조용했다.

 

불과 10여분간 벌어진 전투에서 金하사의 매복조는 적 40여명을 사살하고 30여정의 무기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金장군은 도대체 어떤 작전을 폈기에 그같은 전과를 올렸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金장군은 또 적 1개 중대를 상대하면서 한명의 아군희생자도 없이 적을 40여명씩이나 때려잡은 金하사를 직접 보고 싶어 현장으로 달려갔다.

 

스물한살의 金하사는 여자얼굴처럼 예쁘장하게 생겼다.

 

金장군은 金하사를보자 몇번이고 전과를 치하하면서 어떻게 해서 그런 대승리를 얻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金하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적의 선두부분을 향해 사격했다면 불과 몇명밖에 죽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많이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결국 승리의 관건은

* 분대장으로서의 대담성과 * 분대장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분대원들의 높은 정신력이라고 金장군은 분석했다.

 

金장군은 분대원들의 일개급 특진과 함께 金하사 훈장 수여를 건의했다.

 

때마침 사이공에 왔던 丁一權국무총리는 청룡부대를 방문해 金하사에게 을지무공훈장을 달아줬다.

 

金장군은 또 잊지 못할 미해병장교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캡트 프레스대위. 주월 미해병 비행사단소속으로 金장군의 전용헬기 조종사. 그런데 프레스대위는 말이 워낙 빨라 잘 알아들을 수 없는데다 성격이 거친 편이었다.

 

그래서 金장군은 프레스대위를 부를 때 ‘미스터 머신건’(기관총)이라고 했다.

 

金장군과 프레스대위와의 인연은 별로 안좋게 시작됐다.

 

성격이 어찌나 전투적인지 헬기로 전방시찰 도중 적의 동태로 보이면 아무런 사전보고도 없이순식간에 저공비행상태에서 기관총사격을 가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알 수없는 말로 자기 혼자만 뭐라고 지껄여대는 일이 예사였다.

 

그러지 말라고 몇차례 경고를 보냈지만 프레스대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金장군은 프레스대위에게 ‘너희 부대로 돌아가라’며 조종사를 교체해 버렸다.

 

졸지에 보직을 잃은 프레스대위는 본대로 복귀했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심심찮게 놀림을 받았다.

 

왜 쫓겨났느냐,말을 잘 안들었느냐는 식으로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레스대위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던 중 한 동료에게

“”金장군한테 쫓겨난 이유가 태권도를 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말을 듣게 됐다.

 

화가 난 프레스대위는 “”무슨 소리야.나 태권도 잘해””하고 응수했다.

 

그러자동료들은 시범을 보이라며 막대기 하나를 가져왔다.

 

태권도 하는 한국사람들은 이 정도 막대기쯤은 식은 죽먹기로 부러뜨린다는데 한번 시범을 보이라고놀려댔다.

 

그러자 술기운이 잔뜩 오른 프레스대위는 막대기를 자신의 이마에 힘차게후려쳤다.

 

태권도로 단련되지 않은 프레스대위의 이마가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피가 이마에서 콧등을 타고 땅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金장군은 프레스대위의 생각이 가상하다고 판단, 그를 다시 자신의 헬기 조종사로 불러들였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金장군의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68년 가을이었다.

 

여느 때처럼 金장군은 프레스대위와 함께 전방시찰을 나갔다.

 

전방시찰때에는 대개 공격용 헬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창 전방을 시찰하던 중 바탄칸해안에 미해병 수송기 한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생겼다.

 

이를 본 프레스대위는 金장군을 전방에 그대로 내려놓고는 추락지점으로 향했다

(장성급이 전방시찰을 나갈 때에는 만약을 대비해서구출용 헬기 한대가 반드시 뒤따르도록 돼 있다.

당시 프레스대위는 다른 헬기가 있었기 때문에 金장군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수송기 추락지점에는 벌써 적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프레스대위는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한 뒤 주위의 적들을 공격하며 쏜살같이 부상자들을 구출해냈다.

그리고는 다시 공격하고....

병아리를 낚아채는 독수리와 영락없었다.

 

결국 프레스대위의 민첩한 행동과 대담성으로 수십명의 미해병대원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68년말 귀국한 金장군은 미국 샌 안토니오에 갈 기회가 있었다.

 

상륙전에관련된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미국중앙정보국(CIA) 요원인듯한 사람이 찾아왔다.

 

누군가가 워싱턴에 초대하고 싶어하니 시간이 괜찮으면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튿날 金장군은 미해병사령관 전용비행기를 통해 워싱턴에 도착했다.

 

미해병 소장이 영접했다.

 

그는 金장군을 백악관의 존슨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런데 백악관의 넓은 홀에서는 무슨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각군 참모총장과 상원의원 등이 모여 있었다.

 

알고보니 월남전에서 金장군의 헬기조종사로 있던 프레스대위가 영웅메달을 받는 날이었다.

 

The Medal of Honor.

이 메달은 살아 있는 사람이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 만큼 미국에서 최고로 영예스러운 메달이었다.

 

프레스대위는 벌써 일계급 특진,소령이 돼 있었다.

 

월남전에서 수송기 추락때 해병들을 구출한 공로로 존슨대통령이 직접 메달을 수여한 것이었다.

 

여기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존슨대통령이 프레스소령에게 메달을 수여하는순간, 프레스소령이 혀로 입술주위를 날름거리며 훔쳤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웨스트모어랜드 육군참모총장이 金장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金장군,당신이 월남에서 프레스소령을 데리고 있을 때 매운 김치를 많이 먹였기 때문에 저런 습관이 있는 거 아니요?”하고 말했다.

 

이를 듣고 있던 옆자리의 사람들이 한바탕 크게 웃었고 존슨대통령도 궁금했던지 그 사연을 묻고는 한참동안 웃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