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0) - 영월 ·정선·평창 지구 전투
유재흥 육군3군단장이 찾아 달라는 고지는 영월읍에 있는 봉래산이었다. 우리 대대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작전에 들어갔다.
1951년 1월 19일 저녁 무렵 작전 개시에 앞서 우리 1대대 장병들은 본때를 한번 보여주자고 결의했다. 육군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리고 신생 해병 1연대의 용맹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우리 대대는 어둠 속에서 영월 북쪽 3킬로미터 거리인 거운리로 진출했다. 동강을 끼고 있는 거운리는 정선·평창지역과 맞닿은 작전상의 요지였다.
다음 날 아침 거운리 동북쪽 737고지를 공격했다. 우리 부대원들은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나는 일선 지휘관들을 격려하기 위해 일선 중대와 소대 전방까지 헤집고 다녔다.
육상 전투 경험이 없는 대대장이라고 불안해하던 참모들이 말렸지만, 나는 “아니야, 내가 가봐야 해” 하고 최일선까지 가서 소총 소대원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겁 없이 이 중대 저 중대 다니며 지휘하는 대대장을 보고, 아랫사람들이 따라나섰다. 대대장이 솔선수범을 하는데 중대장이 몸을 웅크릴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소대장도 모범을 보이게 되고, 소대원들도 따라 준 것이다.
737고지 공격…지휘관으로 첫 승리
치열한 공방전 끝에 목표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적은 안심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우수한 장비로 무장한 해병대인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 전투는 나의 해병대 지휘관 첫 승리를 장식했다. 가슴이 벅찼다. 대원들 모두가 고마웠다. 여세를 몰아 이웃 신병산과 능암덕산까지 점령했다. 영월 마차리 북방에서 고전하던 육군7사단에 비로소 활로가 트였다. 영월지구 방어가 쉽게 된 것이다.
해병대원들은 처음에는 해군에서 온 신출내기 대대장을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믿음을 갖는 것 같았다. 나는 모든 것을 대원들과 똑같이 했다. 같은 주먹밥을 먹었다.
그것도 없으면 같이 굶었다. 눈 덮인 산속의 야전 텐트에서 같이 잠을 잤다. 배낭도 직접 메고, 이동할 때도 같이 걷고 뛰었다.
미군 고문관과 연락장교들을 잘 통역하는 것도 부대원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때 해병대 대대장에게는 미군 고문과 연락장교단이 배속돼 늘 곁에 있었다. 작전 협조를 위해 긴밀한 연락을 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부대원들 눈에는 174센티미터인 내 키가 작지 않아 보였던 모양이다. 또 그들과 의사소통이 될 만큼 영어도 하고, 철모 쓴 내 모습이 ‘코쟁이’ 같다고들 했다.
'고비덕산 탈환전' 가장 기억에 남아
영월·정선·평창지구 전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는 3월 8일 정선군 북면 여량리 고비덕산 탈환전이었다.
그날 오후에 시작된 1020고지 공격은 날이 저물어 6부 능선에서 중단됐다. 눈 속의 야전 텐트에서 잠을 자고, 9일 미명에 다시 공격을 시작해 고지 꼭대기와 능선에서 적병 6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거뒀다.
미 해병대의 막강한 화력지원과 신무기에 눌린 적은 능선을 타고 도망쳤지만 헛수고였다. 미리 쳐 놓은 그물망에 걸려 300여 명이 죽고, 60여 명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사로잡혔다.
포로들을 심문해 보았더니 인민군 23유격여단 잔존병력이었다. 설한지에서 뜻밖의 전과를 얻고 보니 비로소 김성은 연대장에게 보은을 한 기분이었다.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인접 2대대 정보장교 진두태 소위의 전사 소식에 나는 가슴이 메어질 것 같았다. 고비덕산 능선에 연한 박지산 1391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그는 분대 병력을 이끌고 정찰을 나갔다가 적 매복병의 총에 맞았다.
그가 전사한 3월 7일은 그의 생일이어서 내 마음은 더욱 쓰라렸다. 해군사관학교 훈육관 시절 내 조교였던 그는 한라산 공비토벌작전 때 전설적인 일화를 남긴 호국의 영웅이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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