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의 추억(2)
1학년(4급생) 시절
1학년때는 정말로 눈코 뜰새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절입니다.
우리는 1학년을 제일 밑이라 하여 보텀(BOTTOM=밑바닥)이라고 부릅니다.
아침에 기상을 하면 재빨리 침구와 방을 정리 정돈하고 세수한 얼굴에 물이 마르기도 전에 지정된 선배 방이나 통로등 배당된 곳을 청소하고 식당으로 달려가 식사준비하고 밥을 먹는지 쑤셔 넣는지 한그릇을 뚝닥 비우고 나서 학과 준비를 한후 정열을 하여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받게 됩니다.
식사는 직각 식사, 밥을 수저로 퍼서 번쩍들어 직각으로 입에넣고, 뺄때도 같은 역 동작으로 하며 밥을 먹습니다.
물론 학교내 보행시도 씩씩하게 걸으며 직각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정면 10도위를 바라보고 걸어야 됩니다.
이러한 절도있는 행동을 위반한 때에는 상급생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벌점을 받는 "과실 보고"를 하게 됩니다.
과실 보고라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생도가 정해진 규율을 어겼을 때 받게되는 상급생들의 지적이며 벌점입니다.
이 과실보고가 여러건 누적되면 주말에 별도 훈련이나 교육을 받게되어 아까운 외출 시간을 단축받게 되며 상급생들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게 되며 사관학교 생활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생도는 과실 보고를 당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게 됩니다.
-저는 몸이 날렵해서 그랬던지 축구부에 발탁되어 힘든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3군 사관학교 대항 시합이 있을때는 미리 운동 선수들만이 단체로 서울에 올라와 회현동에 있던 해군 헌병대 뒤쪽 가건물에서 합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가 없어지고 남산 제3 터널로 올라 가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이때 합숙소 담 너머에 여러채의 민가가 있었는데 어느집 2층에 가끔씩 처녀의 모습이 보이곤 해서, 저는 "창문을 열어다오 내 그리운 마리아"하고 저녁에 그쪽을 보며 명창?을 가끔씩 뽑아뎄는데 이것이 꽤나 인상적이 였던지 그 때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이 이 얘기를 지금도 가끔식 합니다.
-매 주말이 되면 내무실 청소를 하고 정리 정돈을 마치고 나서 깨끗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통로에 주욱 나와서서 주말 점검을 받게 됩니다.
어느 주말에 점검을 받으려고 주욱들 나와서 정열해 섰는데 검열관의 일원인 갑판사관 선배 한분이 넥타이가 약간 비뚤러진 상태로 왔다 갔다 하시길래 저는 그분이 제 앞에 오셨을 때, 선배님 넥타이가 비뚤어 졌습니다 하고 나즈막히 알려 드렸습니다.
그 선배님은 거울을 보시더니 응 그렇군 하고 교정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 가셨는데 이때 앞에 서서 이 얘기를 들은 3학년(2급생)선배께서 너 검열후 내 방에 출두해 하시는 겁니다.
물론 검열후 출두해 기압을 되게 받았습니다. 어떻게 후배가 감히 선배의 실수를 지적 하느냐고 말입니다.
-여름이 되어 방학을 떠나기 전이 되면 수영훈련을 하게 되는데 이 기간 중에는 전교생이 수영복만 입고 생활하게 되니 누가 누군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날 세탁소 앞에 줄을서서 옷을 찾으려고 대기하고 섰는데 수영복 차림의 한 생도가 줄도 서지 않고 그냥 앞으로 가서 옷을 찾아갖고 나오는 겁니다. 사관 학교가 어떤 곳 입니까. 누구나 다 규율, 규범과 질서를 잘 지켜야 되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저는 얼떨결에 혼자소리 비슷하게, 줄도 서지 않고 옷을 찾아 가는 사람도 있네하고 중얼 거렸는데 이 생도가 지나가며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생도 돌아 서더니, 너 생도사 0호실로 출두해! 하고 가는 겁니다.
아, 찾아가 보니 4학년(1급생) 호랑이 선배님 방이였습니다.
원 투 스트레이트와 엎드려 뻗쳐등 된통 기압을 받고 나왔습니다.
4학년 대선배님들은 일상 생활에서 약간의 치외 법권적인 특권이 인정되고 있는걸 입교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보텀이 알리 있었겠습니까.
졸업하고 30여년 만에 그분을 우연히 만나서 그때의 얘기를 하니 난 그런적 없다고 하더군요. 기압을 받은 저는 아직도 그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사관학교 입교 당시에 몸이 꽤나 날씬했읍니다.(제 어릴적 별명은 빼빼 였습니다.)
체중 54kg에 허리 27인치, 그러니 탄띠가 아무리 줄여도 길수 밖엔 없었습니다.
M1 소총을 들고 물이 가득들은 수통과 대검이 달린 탄띠를 허리에 두르고 구보(뛸 때)할때는 정말로 죽을 맛이였습니다
한참을 뛰다 보면 물들은 수통이 앞에서 덜렁 덜렁, 그래서 옆으로 보내면 이번엔 긴 대검이 앞에서 걸치럭, 걸치럭. 탄띠가 엉덩이에 걸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니 얼마나 성가시던지요.
그러나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뛰는데는 항상 자신이 있었습니다.
선착순을 돌릴때는 언제나 1, 2번을 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구보한 얘기하면 늘 잘뛴 내가 꼭 등장합니다.
사관학교 뒷산, 망해봉(해발 100미터정도)을 올라 갔다 내려오기 선착순을 할 때도 늘 선두였습니다.
저하고 친하던 어느 대대장 선배는 선착순 훈련을 시켜놓고 지나 가다가 앞선 저를 보고는 늘, 작은 목소리로 너 이번에도 또 선두야! 하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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