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사17기 오창근

사관학교의 추억(8) 졸업반 시절(원양 항해-계속)

머린코341(mc341) 2015. 1. 13. 21:56

사관학교의 추억(8)

 

졸업반 시절(원양 항해-계속)

 

-첫 기항지였던 월남은 그때 까지는 베트콩의 침투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고 고 딘 디엠 정권의 말기로 아직은 싸이공 시내가 평온하여 우리는 외출을 할수 있었으며 동양의 미항이라고 불리던 싸이공 시내 곳곳을 사관생도의 멋진 제복을 입고 누비고 다녔습니다.

저희 군함에는 싸이공에 거주하고 있던 많은 교민들이 견학을 오고 우리는 이들 가정에 초대받아 가서 식사도 대접 받는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7년후인 1969년 청룡부대에 파견된 군인으로서 다시 싸이공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평온하고 아름답던 시내는 이미 여러곳이 파괴되어 있었고 전쟁에 찌든 그래서 사기가 떨어진 국민들의 패기 없는 모습을 보면서 6 25전쟁이 우리에게 남기고간 전흔을 마음속에 떠올려 보았습니다.

다음 기항지는 씽가포르였습니다.

저희가 기항한 곳은 시내에서 약 한시간 거리에 있던 영국 군항지였는데 이곳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시내는 매우 청결했으며 한참 발전하고, 건설하고 있는 시내 곳곳에서 활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내의 유명한 식물원에 가서 여러 가지 열대성 식물들을 구경하고 또 동물원에도 가 보았읍니다.

동기생 한사람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계 선생님을 한분 소개받아 시내에 있던 그분 댁에서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마침 그날이 토요일이였던 관계로 시내 교통이 매우 붐비고 복잡했습니다.

우리는 배가 오후 5시에 출항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시간은 다가오고 있고 우리는 혼잡한 시내교통에 막혀 옴싹 달싹을 못하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이 선생님께서 자기차로선 도저히 그 시간에 그곳까지 댈수 없으니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권유하여, 우리는 그분 차에서 내려 허겁지겁 겨우 택시를 한 대 잡아타고 이길 저길로 곡예 운전을 한 끝에 겨우 시내를 빠져나와 배 출항 5분전에야 간신히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배는 곧 출항을 해야 되는데 우리 두사람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모두들 얼마나 맘들을 졸이고 기다리고들 있었겠습니까.

이바람에 우리 둘이서는 훈육관에게 기압을 받고 다음 기항지인 필리핀에서는 1일 외출 금지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배이건 간에 적도를 지날때는 간단한 예식을 지낸다고 합니다.

해신과 천신께 앞으로 무사 안일한 항해를 기원한다는 뜻으로 승무원들이 지내는 일종의 통과 의식이라고 하지요.

저희들은 적도 근처 어느 섬에 거주할 것 같은 원주민들의 치장이라고 벌거 벗은 몸에 각종 색칠을 하고 창과 칼을 들고 이상한 소리들을 지르며 갑판위에 나와서 춤들을 추며 노래하며 적도제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그후 며칠간은 바다가 잠잠하여 우리 모두는 밥들도 잘먹고 마닐라까지 가는데 비교적 고생들도 하지 않고 갈수가 있었습니다.

배에 취하면 참으로 힘도 들고 고생도 많이 하게 됩니다.

배멀미라는 것이 몸에 느껴오는 순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이 핑 돌며 정신이 몽롱해 집니다. 그리고는 차츰 차츰 기운이 빠지면서 맥이 주욱 풀립니다.

이때부터 속이 울렁 거리면서 토하기 시작하는데 위속에 있는 모든 것, 밥알 한톨까지 쏟아내고 나면 나중에는 멀건 위액까지 나오고, 빈속이 뒤집혀 나올게 없으면 헛구역질만 하고, 그때부터는 날 죽여 주시오하고는 인사 불성이 됩니다.


눈은 풀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온몸의 기는 빠져 반 송장으로 누워 있게 됩니다.

 

-마닐라 항에 기항한 우리 생도 전원은 여러대의 군 트럭에 나누어 타고 마닐라 북쪽 약 250키로미터 지점에 있는 바퀴오시로 향했습니다.

바퀴오는 해발 1500미터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한때는 여름에 임시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 적도 있다는 설도 있는데 일기가 년중 18도 정도로 아주 지내기 좋은 휴양도시로서 필리핀 군 종합사관 학교가 이곳에 있어 우리는 이곳에 2일간 있으면서 이들 사관생도들과 친교를 나눌 예정이였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도로는 유명한 케논 공로인데 고산지대로 올라오는 도로가 구비구비 산모퉁이를 돌아서 올라 오는 것이 우리나라의 대관령 고개길은 가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데 그위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 보면 그 꼬불꼬불한 길들이 장관을 이루는 경치는 참 볼만합니다.

-원양항해의 마지막 기항지인 대만의 관문 기륭항에 입항하여 대만 해군과 교민들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기륭시장은 전 사관생도와 인솔 장교단 일행을 시내 대반점(큰 식당)에 초대하여 성대한 만찬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흔히 먹던 탕수육, 잡채, 짜장면같은 음식은 보이지도 않고 여러 가지 전혀 본적이 없던 전통 중국 음식이 나오는데 처음부터 나오는 음식을 깨끗이 다 먹어 치우다 보니 스물 한가지 코스의 마지막 판에 나오는 음식들은 거의 못 먹을 정도로 포식들을 하게 되었는데, 원래 중국 음식이라는게 나중에 나올수록 고급 음식이고 맛이 있는 것이라는데, 젊은 사관생도들은 초장부터 주는 것을 모조리 싹쓸이 하다보니 후반에 나오는 좋은 음식들을 남기며 아쉬워 했습니다.

시내에 외출중이던 어떤 생도들은 그동안 항해중 기른 머리를 자르려고 이발소에 들어 갔다가 그당시 한참 대만에서 성행하던 특별 써비스에 놀라 뛰어나온 생도가 있는가 하면, 다방이란 간판을 보고 우리나라식 다방만 생각하고 커피 한잔 하려고 들어 갔다가 이곳이 바로 공식적으로 홍등가 사업을 하는 집인줄 알고 기겁을 하고 나온 생도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이렇게 그동안 배우고 닦아온 모든 교육을 현장의 실습을 통해 총 정리하고 45일간의 원양항해를 마치고 전원 무사히 귀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