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7대사령관 강기천

나의 人生旅路 - 3.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 (10) 귀순 장교

머린코341(mc341) 2015. 2. 8. 20:23

나의 人生旅路 - 3.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

 

(10)귀순 장교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나는 유격부대의 공작(工作)으로 한번은 아군 유격대에 귀순한 상좌上佐)부부를 대면한 적이 있었고, 또 한번은 단신으로 귀순한 소좌(少佐)한 사람을 대면한 적이 있었다.

 

유격대의 지원을 받아 탈출하는 데 성공했던 그 두 사람의 군 간부 중 상좌의 계급장을 달고 있던 그 귀순 장교는 그를 백령도로 호송한 공작책임자에게 백령도에 있는 해군부대장을 만나보고 싶다는 청을 하여 그의 부인과 함께 나의 숙소로 초대되어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카키색 하정복을 착용하고 있던 그는 이목이 수려하고 용모가 단정한 사람이었는데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 자신의 귀순동기라고 말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KBS라디오 방송을 몰래 청취하며 자유가 있는 남한 사회를 동경해 왔다는 말을 했고, 또한 수수한 양복차림을 하고 있던 그의 부인은 비록 말은 적었지만 시종 편안하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소좌의 계급장을 달고 있던 그 귀순 장교는 북한군 총사령부에 소속된 통신장교로서 황해도 일대의 통신시설 검열기간 중 우리측 유격대의 포섭공작으로 귀순을 한 장교였다. 특히 그는 진남포항(鎭南浦港)의 기뢰 부설현황 등이 담긴 항만 방어시설 도면을 소지하고 귀순함으로써 아군측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지옥 같은 북한 땅을 탈출했다는 사실이 마치 꿈만 같이 여겨진다고 했다.

 

한편 동키부대 산하 유격대의 이와 같은 특수공작은 해당 지역내에 주둔하고 이는 적 후방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면(知面)이나 면식이 있는 자를 포섭공작 대상자로 선정하여 추진되기 마련이었는데, 그와 같은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유격대원들은 해당 지역 내의 적 후방부대나 내무서에 보초를 세워 둘 정도로 행동이 대담하고 치밀하여 매일매일 변경되는 적군의 군호(암호)를 캐치하는 일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기에 그들은 1951년 말경 미 8군에서 포로획득을 명령했을 때 이동 중인 북한군의 후향부대를 습격하여 상당수의 포로를 획득한 바 있었다.

 

미 8군의 포로 획득 명령이 하달된 시기는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시기였었는데, 그 이듬해 1월 하순 내가 백령도를 떠날 때까지 그 섬에는 연일 전방 연안도서로부터 압송이 되고 있던 포로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어떤 날에는 2개 소대쯤 되는 포로가 한꺼번에 도착하는 등 마치 백령도가 포로수용소가 있는 섬으로 착각되기까지 했다.

 

백령도로 압송이 된 그 포로들은 미군 항공기 편으로 미 8군으로 후송되어 그 곳에서 심문을 받은 다음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이 되었는데, 내가 백령도에서 목격했던 그 많은 포로들 가운데 지금도 나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옥 같은 북한 땅을 탈출한 사실이 마치 꿈만 같이 여겨진다고 했던 그 상좌부부와 소좌의 모습이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