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3.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
(12)용호도
용호도(龍湖島)는 옹진반도 남단에 있는 사즘(沙串) 남쪽 1킬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누에 모양으로 길다랗게 생긴 이 섬의 남서쪽에는 순위도와 어화도(漁火島)가 있고 그 서북방으로는 창린도, 기린도, 마합도 등 많은 섬이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이들 연안도서들은 1·4후퇴 때 육로로의 퇴로가 차단당한 황해지구 무장치안대와 피난민들이 철수를 했던 곳이며, 특히 용호도는 그 당시 구월산 공비와 재령방면으로부터 닥쳐오는 북한군과 혈전을 벌이며 옹진으로 내려왔던 신천 무장치안대의 주력이 철수했던 섬이다.
그런데 1952년 1월 초하룻날이었다.
순위도와 창린도 등과 함께 동키13연대(신천부대)의 유격기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이 용호도의 유격기지는 약 1개 연대 규모의 적이 기습상륙을 감행하여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이게 됨으로써 이 섬이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바로 그 날 현지 유격대의 여자 무전통신사(양재숙)가 나에게 발신했던 그 마지막 상황보고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놈들의 수류탄이 바로 앞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일부 대원은 배를 타고 순위도로 철수 중에 있습니다. 저도 곧 선착장으로 달려가려고 합니다. 이상 보고를 마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침착하고 또렷했다. 저토록 위급한 상황속에서 어쩌면 저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 양재숙이란 여자는 내가 백령도에 부임했을 당시 백령도 직할연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20대 초반의 처녀였었는데, 그 후에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반공정신이 투철했던 그 양재숙 양은 그 날 소수의 적이 무전실로 접근해 오자 카빈소총으로 맞서 그 적들을 격퇴시킨 후에 아슬아슬하게 선착장으로 달려갔다고 하니 참으로 용감한 처녀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양재숙 씨는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태풍이 불거나 심한 풍랑이 일 때 선박들의 묘박지로 이용되고 있는 이 용호도는 내가 소해정 302호 정장으로 있을 때 서해연안도서 경비 중 여러 차례 들른 적이 있었는데 세관과 어업조합을 비롯해서 해사국 사무소와 해산물 검사소, 수산학교, 경찰지서, 옹진군 동남면 출장소 등‥‥ 11개의 공공기관이 있던 그 용호도의 냉면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용호도 냉면 맛은 평양식으로 만든 냉면 그 자체의 맛부터가 물론 각별한 것이었지만 그 냉면 맛을 산뜻하게 돋우어 준 흰 백김치와 무우 맛, 즉 언 김칫독에서 갓 끄집어 낸 그 백김치와 무우의 감칠맛이 그야말로 천하 일품이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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