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3.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
(13)김장성 씨와 그의 자녀들
당시 동키부대의 백령도 직할연대장으로서 나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김장성(金長成·1913년생) 씨는 황해도 신천 경찰서장을 지낸 적이 있는 이름난 반공투사였다.
내가 알고 있는 그 김장성씨는 예절도 바른 사람이었지만 특히 왕성한 책임감으로 백령도의 도서방어를 위해 직할연대장으로서의 소임을 훌륭하게 완수했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동키5연대장을 지낸 같은 고향 출신인 박승덕(朴承德) 씨의 증언에 따르면 돌볼 겨를이 없어 자신의 자녀 4명을 고향에 둔 채 백령도로 탈출했던 그 김장성 씨는 백령도에서 10여 명의 신천군 처녀들을 발견하게 되자 그들을 한집에서 기거하게 한 다음 울이 없는 그 집 바깥에 철조망을 가설하여 각별히 보호하는 가운데 한 사람한 사람 짝을 지어 주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일화를 남겼던 그 김장성 씨는 다음과 같은 일로해서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불행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즉, 중공군의 개입으로 백령도로 탈출할 때 4명의 자녀를 고향에 남겨 둔 채 떠나오고 말았던 그는, 그 후 부하대원들을 시켜 그 4명의 자녀를 데려오게 하여 한집에서 살고 있었으나 내가 백령도를 떠난 직후 장연 출신의 한 여자를 후처로 맞아들이는 바람에 전처의 자녀들이 한집에서 살기를 원치 않아 부득불 그 자녀들을 내가 거처하고 있던 그 집(숙소)으로 옮겨 살게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어느 날 밤 바로 그 집이 북한군의 야크기에 의해 폭격을 당하는 바람에 진촌국민학교 여교사로 취직해 있던 그 맏딸을 비롯한 4명의 자녀들이 몰살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당시 내가 숙소로 정해 있던 그 집은 안채와 바깥채로 된 두 채의 초가집 가운데 두 개의 방과 부엌 마루 등이 있는 바깥채였고, 안채에는 집 주인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숙소(바깥채) 바로 옆에 딸려 있던 간이 건물에는 심성이 착한 경비분대장 내외가 나의 아침저녁 식사와 숙소 경비분대 대원들(직할연대 유격대 소속)의 숙식을 돌봐 주고 있었는데, 내가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그 날 밤 끔찍한 변을 당했던 사람들은 오직 김장성 씨의 자녀들 뿐이었다고 한다.
한데 이러한 소식을 진해에서 전해 듣게 되었던 나는 비록 밤중이었다고는 하나 그 적기가 혹 나를 노려 그 집을 폭격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그 비극의 주인공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한편 그러한 슬픔을 겪었던 그 김장성 씨는 휴전으로 동키부대가 해체될 때 육군에 편입되어 한번은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또 한번은 소령의 계급장을 단 복장으로 나의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으나 그 후 누군가로부터 병사(病死)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로는 영영 소식이 단절되고 말았다.
그가 타계한 지 올해로 꼭 29년째가 된다고 하는 박승덕(朴承德)씨의 말에 따르면 신의 자비를 뜻함인지 그 장연 출신 후처와의 사이에는 남자 쌍둥이가 태어났다고 하며, 그 쌍둥이 중의 한 사람이 현재 K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고 하니 나로서는 언젠가 한번 그 자제분들을 만나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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