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4. 해병제1전투단
(3)김창균 중위의 선물
중공군의 2차 추기공세가 있은 직후 5대대는 이미 내려져 있던 부대교대의 명령에 따라 3대대 11중대가 점령하고 있던 전초진지들을 인수함과 동시에 적의 포격으로 인해 파과된 진지 보수작업을 위해 전력을 경주했다.
그리고 예비중대로 하여금 소규모의 정찰전과 야간 기습작전을 실시케 하는 가운데 전초진지와 주저항선 방어에 전념했는데, 이상하게 여겨졌던 일은 그 2차 추기공세 때 막심한 피해를 입었던 그 중공군이 그 후 내가 서부전선을 떠날 때(53년 8월)까지 두번 다시 그러한 공세를 취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남겨 줄 한 토막 진중 일화가 있다. 그 해 12월 하순경의 일이었다. 그 해 7월 중순경 내가 5대대장으로 취임한 후 52중대 선임장교 또는 51중대장으로서 많은 전공을 세웠던 김창균(金昌均) 중위가 육군 초등군사반 입교를 명령을 받고 전투단을 떠나려 할 때, 나는 그에게 그의 후임 중대장(신숙 중위)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인계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하고 5대대와 서부전선을 떠나는 기념으로 포로 획득을 위한 마지막 기습작전을 수행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12월 31일의 전반야(前半夜)에 계획이 된 그 마지막 기습작전을 지휘했던 김창균 중위는 내가 은근히 바라고 있던 포로 획득에는 실패하고 그 대신 남이 상상도 못할 선물을 장만해 옴으로써 나로 하여금 일찌기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야릇한 충격적인 기분을 맛보게 했다.
김창균 중위가 작전을 마치고 나의 지하 벙커의 문을 노크한 시각은 53년 1월 1일 0시 정각이었다. 누구냐고 했더니 "김창균 중위입니다."라고 했다. 철모를 쓰고 권총 벨트도 찬 그런 차림으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는 "어서 들어오시오. 정말 수고가 많았소." 하며 그를 반가이 맞이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대원을 시켜 들고 온 길다란 포탄상자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기에 그것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나에게 줄 특별한 선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밤중에 선물이라니 그게 도대체 뭔지 뚜껑이나 한번 열어 보라고 했더니 뜻밖에도 그 상자 속에는 사천강변의 갈대밭에서 주워 왔다는 포탄에 맞아 떨어져 나간 팅팅 부은 중공군의 피묻은 다리 하나가 들어 있었고, 그 중공군의 발에 신겨 있던 중공제 농구화 한 짝은 쓸모가 없어 벗겨서 내동댕이 쳐버렸다고 했다.
그것을 본 나는 허구한 낮과 밤을 생과 사의 기로에서 싸워 왔던 저 피비린 사천강 전초지대를 떠나면서 나에게 그러한 선물을 안겨주려 했던 그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김 중위, 수고했소. 초하룻날 꼭두새벽에 선물치곤 너무 멋진 선물을 가져왔군 그래."하며 그를 위로한 다음, 비록 죽은 사람의 다리일망정 이것도 시신의 일부이니 죽은 사람을 위해 정중히 땅에 묻어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나의 그러한 말에 공감이 갔던지 그는 나와 작별을 고하고 돌아갈 때 대대본부 바로 뒷산 기슭에 그 다리를 묻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곳에 막대기로 만든 조그마한 십자가 하나를 꽂아 두고 간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김창균 중위는 그 당시 5대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중대장들 가운데 가장 용감하고 성실한 중대장이었는데, 그가 나에게 선사했던 팅팅 부은 그 중공군의 다리는 비록 긴 세월이 흘러갔지만 여전히 지워질 수 없는 추억의 영상이 되어 나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52년 9월 11일부터 10월 6일까지 내가 김포(金浦)·강화(江華)지구에서 겪었던 말할 수 없이 쓰라린 추억담이다. 9월 11일은 내가 5대대를 이끌고 김포지구로 부터 장단지구로 이동을 했던 날이고, 10월 6일은 중공군의 1차 추기공세로 피해가 많았던 1대대와 5대대가 부대 교대를 한 날이었다.
당시 김포·강화지구의 상황은 내가 해병 제1전투단 작전참모로 부임한 후에 이미 파악을 하고 있었지만 그 작전지역은 한강과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으로는 적지인 개풍군, 남으로는 파주군 및 고양군에 접하고 있었는데, 그 작전지역에서 나는 특히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었다.
즉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지점을 순시했을 때는 그 대안(對岸)쪽에 있는 관산이란 곳에서 방송되고 있는 적군의 대남방송을 직접 귀담을 수 잇었는데, 그들의 그 방송이 얼마나 악날하고 전투적이었던지 나는 지금도 강바람에 실려 왔던 그 거센 마이크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강심 쪽으로 뾰족하게 튀어 나와 있는 그 관산이란 곳에서 만조시(滿潮時)를 기해 간첩선(間諜船)을 띄워 보내게 되면 그 배가 저절로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지점으로 흘러내려 김포반도 우단의 시암리란 곳에 닿게 된다는 말을 처음으로 전해 듣게 되었던 나는 신경이 얼마나 쓰였던지 이러다간 불면증 환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내가 지프차를 타고 강화도로 건너가는 도선장으로 가고 있을 때는 이런 일을 겪었다. 즉 선착장 가까이 질주해 가고 있던 나는 차가 북방 대안(對岸) 쪽의 적진에 노출되기가 무섭게 직사포탄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노출된 위험지대는 도처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편 강화도로 건너가는 도선장에는 옛부터 운항하고 있던 나룻배와 미 해병대에서 운항하고 있는 LCM이 있었는데 나는 그 LCM에 차를 싣고 도강을 했다. 김포에 주둔하고 있던 미 해병 임시연대에서는 강화도를 내왕하는 한국군의 차량과 병력도 그 LCM으로 수송해 주고 있었다.
강화도로 건너가기 전 나는 그 대안 쪽에 구축되어 있는 옛 포대(砲臺)들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그 포대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병인·신미양요와 운양호 사건 등 그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던 강화도가 오늘날엔 공산침략에 직면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승공통일과 자주국방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굳게 가다듬었다.
그런데 지역이 워낙 넓고, 또 도처에 간첩들의 침투 루트가 있는 듯하여 밤낮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바람에 김포지구로 이동한 바로 그 날부터 입맛은 뚝 떨어지고 잠은 잠대로 오지 않아 체중이 확 줄어드는 그러한 나날 속에 나는, 그 때 세 살 난 나의 첫딸 연배(蓮培)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그러니까 부대이동을 마친 지 약 1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해병대사령부로부터 이런 전문을 받았다. 즉 그 세 살 난 첫딸 연배가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해병대사령부에서 그러한 일을 알게 된 것은 진해에 있는 나의 아내가 해병대사령부로 전화를 걸어 나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소식을 전해 듣고 내심 큰 걱정을 하고 있던 나는 그로부터 수일 후 딸아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재차 받음과 동시에 해병대사령관의 휴가명령을 받게 되었으나 잠시도 부대를 비울 수가 없어 때마침 진해 해군병원에 출장가게 된 대대 군의관에게 딸아이의 병세를 알아보게 했더니 가엽게도 폐렴 증세로 앓고 있던 그 어린것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수일 후 진해로 내려갔던 그 군의관이 돌아온 직후 운명을 하고 말았으니 나로서는 애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 후 나의 아내는 하나밖에 없었던 그 첫 아이를 잃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채 나를 찾아와 부대 인근의 민가에서 며칠 간을 묵고 갔었는데, 그 때 나는 자식은 또 가지면 되지 않겠느냐며 위로를 했더니 고맙게도 나의 아내는 최전방 전선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나의 처지와 그 어린것을 잃게 된 나의 착찹한 심중을 비록 말은 없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5대대장 근무기간은 약 9개월간이었다. 그리고 휴전이 성립될 당시 해병대사령부 인사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문득 나 자신의 5대대장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임진강을 배수진으로 한 그 사천강 전초지대와 김포·강화지구에서 우리 해병대가 수도 서울의 관문을 자랑스럽게 지켜 낸 그 한없는 긍지를 가슴 뿌듯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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