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75) - 역사의 심판은 반드시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해병대 해체의 진실
"해병대의 존폐(存廢)는 정권 유지 차원을 떠나 오직 국가 이익과 안보의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안보를 중시하고 강군을 육성한 나라는 크게 번영을 구가하고 국가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그 한 예로 제2차 세계 대전 시 일본을 패망시킨 미 해병대를 들 수 있다.
안보와 국방을 소홀히 한 나라는 국민들에게 많은 시련과 고통을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 국가 자체가 소멸되기도 했다. 임진왜란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아 수난을 당했으며 당시 조선은 군비태세를 소홀히 하여 치욕과 망국의 설움까지 겪게 했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해병대의 해체는 충무공의 백의 종군에 비견된다. 1998년 1월에 발간된 『장군의 비망록』(김문 저, 별방출판사)에 수록되어 있는 초대군 특별검열단(특검단) 김희덕 단장(육사 2기, 예비역 중장) 증언에 따르면 해병대 해체는 1969년 5월 3일 처음 논의되었다.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초대 특검단장으로 기용된 김 중장의 보임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군의 조직개편을 위해 특검단을 설치했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해병대가 많이 비대해진 것 같으니 축소시키는 문제를 극비리에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3년 5개월 후인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가 해체되고 진해 교육기지사령부와 보급정비단, 포항기지사령부 등 지원부대와 예비사단 역할을 한 제2훈련단이 없어졌다.
머리(사령부)와 손발이 떨어져 나간 몸통만 해군에 통합되었다. 해병대사령관 대신 해군 본부 제2참모차장이란 지휘권 없는 참모를 해군참모총장 밑에 앉혀 둔 것은 박 대통령의 의지와 지침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방조직을 통합군 체제로 개편하기 위한 특검단의 군 개편안 골자는 원래 육·해·공군 본부를 없애고 국방부장관 밑에 국군참모총장을 두어 총괄 지히하는 안이었다. 해병대는 공수부대와 함께 전략군사령부로 개편하도록 되어 있었다. 당시 이병문 해병대사령관은 초대 군 특검단(단장 김희덕 장군)의 군 개편안에 대하여 강력히 반대하며 항의하였다.
미 해병대 강력 반발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미 해병대는 유신(維新)정권에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어떠한 형태라도 해병대가 존속되지 않을 경우, 미 해병대가 지원한 해병대 군원장비 일체를 환수할 뿐 아니라 차후에 이루어질 한국군 군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에 당황한 유신정권 당사자들은 부득이 해병대 병력을 해군에 통합시켜 명맥을 유지케 하였다. 만약 이때 해병대가 최초의 개편안처럼 전략군 등에 편입되었다면 해병대는 영원히 없어졌을 뿐 아니라 1987년도 재창설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희덕 장군은 1971년 가을 합참에서 열린 각 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사령관 연석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이 방안을 언급하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정규환 소장(육사 6기)이 후임 특검단장으로 부임하면서 해병대의 해체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검단 검열팀이 해병대에 투입된 것은 1973년 7월경이었다. 검열팀 투입때 특검단장 정규환 소장 외 합참의장 한신 대장과 3군 사령관 이세호 대장도 해병 제1상륙사단 김연상 소장과 함께 해병여단본부를 방문하여 눈길을 끌었다.
해병여단 방문을 마치고 해병 제1상륙사단을 검열한 특검단은 소부대 지휘관들의 자질이 낮고 사격 성적이 좋지 않다는 등 3가지 사항을 지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병대는 1개 연대 전투 능력밖에 없다."는 혹평도 있었다.
해병대 해체 시행일,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 해체 근거인 국군조직법 개정안은 9월 14일 극비리에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날짜는 9월 28일, 공포(시행)된 날짜는 10월 10일이었다.
해병대 사령부 해체식. 서울 용산(현재 방위사업청)
그 당시 합참의장 한신 대장, 합참본부장은 이병형 중장, 합참 전략기획국장은 최석신 소장, 해군참모총장은 김규섭 대장, 특검단장은 정규환 소장이었다.
박 대통령은 왜 해병대를 축소시키려 하지 않고 송두리째 잘라 없애 버린 것일까? 사실 그 당시 악의에 찬 정보계통과 불순한 군 일부의 아첨세력이 해병대를 모함하는 루머를 퍼뜨려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는 설도 있었다. 이른바 '정권안보설'이다.
1972년 유신체제 구축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의 한국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쿠데타 이후 계속 불안을 느껴 왔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정권안보에 대한 피해망상적인 위협에 본능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정권안보설의 논점이었다.
유신정권이 해병대를 제거 대상으로 삼은 이유에 대하여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5·16 때 자신들을 도와 쿠데타를 성공시킨 주역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유신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미 해병대와 강력한 유대를 맺고 있는 한국 해병대를 이용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 곧 그들의 생각이었다는 말이다.
1975년 6월 9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의 핵 개발 능력 보유를 발표하고 단독적인 안보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언명했던 일과, 1977년 1월 20일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 지상군을 4~5년에 걸쳐 철수시키겠다고 언명한 일을 상기하면 터무니없는 억측이 아닐지도 모른다.
흔히 신하에는 충신과 간신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영신(佞臣)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첨할 영(佞)' 자를 쓰는 이 신하는 두고두고 경계해야 할 신하다.
박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다 10·26사태 시 순직한 안재송 경호관의 해병학교 34기 중대장 시절 모습.
당시 해병대 사격선수이기도 한 그를 내가 사령관 시절에 천거하여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얼마 뒤 그곳에서 소령으로 전역했다.
정권안보를 위하여 이유야 무엇이든지 간에 유신정권은 해병대를 해체하였다. 그러나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세력은 해병대가 아닌 다른 곳, 내부 측근세력에 의하여 일어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0·29시해사건 때 박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며 그를 위해 순직한 사람은 정인영 해병 대위(해간 14기)와 안재송 해병 소령(해간 38기)이었다.
'역사의 심판은 반드시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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