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부 7연대 2대대]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하사관이 된다.
제8부 7연대 2대대
새로운 부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령부 해체 이후 모든 부대 명칭이 해군0000부대로 호칭하다 다시 해군해병으로 바뀌어 그나마 해병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되었다.
해병 고유의 독립된 명칭이 사라지고 항상 해군해병이라는 단어에 적응하기는 매우 부적절하고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고 당시 모든 해병대원의 공통된 감정이었다.
7연대 2대대에서의 생활은 교육훈련의 연속과 당시 저하된 사기앙양을 위하여 여러가지 민주적인 제도의 시행과 내무생활의 정착이었다. 이 기간 중 기억이 나는 것은 장기하사들의 전역이 대거 실시되어 많은 고참하사들이 옷을 벗었다.
그중 중대 최고참이던 단기7차 태춘식 하사, 41기 81mm 이모반장이 전역을 하게되었는 데 "시원 섭섭하다"고 하침에서 전역의 인사말을 남기고, 10 년간 몸 담았던 애증의 해병대를 떠나면서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던 태춘식 하사가 생각나며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보고싶다.
7연대 신 병사에서의 73년 그 해 겨울은 무척이나 분주하게 보냈다.
가끔 밤이 되면 인근 수색중대에 있는 하교 동기인 민완규 하사를 만나 같이 도구의 주막에서 막걸리 대포 잔을 기울이고 귀대하였다.
이때는 나도 제대 말년에 접어들어 전역 후의 사회생활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국내 경제는 72년부터 시작된 새마을 운동으로 소득증대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아 제대 후 의 일이 걱정되었다.
집안의 사정은 아버지의 금광사업이 여전히 답보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해 대학복학은 어려운 형편이었고 사회에서의 생활이 걱정되었다.
이때 나는 해병학교 지원을 생각하였다.
집안사정과 앞날을 생각하니 달리 좋은 방도가 그 길이라고 생각되어 고향 선배인 K대령의 추천서를 받아내고 한편으론 아버지에게 전후 사정을 편지로 설명하고 호적등본 등 관련서류를 보내 달라고 하여 신청서 작성을 끝내고 접수하는 전날 밤 그날도 도구주막에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때의 심정은 3년 가까이 해병대생활을 하고 또다시 긴 군 생활을 한다는 온갖 생각에 분한 마음도 들고 꼭 해병학교를 선택해야되는지 깊은 번뇌에 잠겨 연신 술잔을 비웠다.
막걸리에 취하여 이런저런 생각에 그날 밤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나는 해병학교 지원서를 주저 없이 불 태워 버렸다.
해병학교에서의 훈련과 기나긴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전역 후 해병정신으로 험난한 사회생활을 개척할 각오를 하였다.
그 당시 나의 인생 갈림길이기도 하였던 해병학교 지원은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어려운 나의 환경과 여건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해병학교 입대를 취소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어려운 갈림길에서 나의 진로를 새롭게 결정한 그 후부터 남은 군 생활을 차분히 지내기로 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다시 가까이 하였다.
좋아하던 술, 외출도 자제하고 오직 전역후의 생활을 설계하였다.
74년 2월에는 중대장에게 전역 후 학교복학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위하여 특별휴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나의 예상대로 서울에 와 어머니를 만나 상의한 결과 복학은 도저히 가정형편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귀대하는 전날 밤 쓸쓸히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야간열차를 기다리다 서점에서 공무원 임용시험 서적을 구입하였다
귀대 후 시간이 나면 시험관련 서적을 열심히 탐독하여 새로운 희망과 도전을 준비하였다.
74년 4월 초 7연대 2대대는 다시 해안방어에 투입되었지만 나는 전역명령이 4월30일로 내려와 부대에 잔류하였다. 이때 나는 정든 7연대2대대 통신반원들과 이별을 하였다.
매달 말 전역하는 해병들을 위한 전역파티를 통신 기재실에서 마련하여 그들의 전역을 축하하고 앞날의 행운을 빌어주던 내가 이제는 전역하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한 말은 부족한 내가 내무반장을 수행하면서 내게 가진 감정과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면 사과하며 여러분들도 남은 해병생활을 무사히 끝내고 사회에서의 성공을 기원하였다.
7연대 2대대 통신반 출신들과는 전역 후 70년대 후반까지 서울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소식이 두절되었다.
한편 하침에서의 전역 분위기는 어색하고 색다른 기분이었다.
그것은 장기복무중인 선임하사들이 즐비하고 나처럼 단기하사의 전역이 그들에게는 저항감이 생기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나의 전역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냉소적이었다.
그런 선임들에게 언젠가는 선임들도 전역하여 사회생활을 할 것이 아니냐고 그때까지 해병대 복무를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고 인사를 드리니 나의 전역을 축하해 주고 사회에서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하교 62기로 작전하사이던 최걸 하사가 바로 그런 선임이었다.
강직한 성격에 인정이 숨어있는 그는 전역 후 70년대 후반 금성사 종로1가 대리점에 근무하였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반가운 재회를 하였으며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만나고 싶다
대대 병력이 해안방어에 투입되고 텅 빈 부대에서 나는 전역하는 날까지 남은 시간을 보냈다.
이때 잔류 병력으로 기재반장을 수행하던 하교 92기 이강현 하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삼척 출신의 이강현 하사는 나보다 두 달 늦게 제대하였는 데 사회생활에 대한 계획과 포부를 솔직히 이야기하고 서로를 격려하였다.
<제9부 전역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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