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하교90기 김종훈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하사관이 된다. - 제9부 전역

머린코341(mc341) 2015. 5. 9. 18:17

[제9부 전역]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 하사관이 된다.

제9부 전 역

74년 4월 30일 드디어 전역의 날이 밝았다.


71년 4월 28일 진해 신병훈련소 입소로부터 만 3년 2일째의 날이었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밥이 목을 넘어가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대충 끝내고 하교 92기 이강현 하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전역식이 거행되는 도솔관으로 향하였다.

도솔관 ! 주말 외출이 없는 날이나, 영화 상영이 있는 날에는 즐겨 찾던 곳이며, 년 말이면 연예인 위문공연장이며, 집합 교육장이던 도솔관이 마지막으로 포항에서의 공식행사장이었다.

 

당시 하교90기, 신병239기가 전역 병력이었는데 내가 전역신고를 하였다.

"임석 상관에 대하여 경례 !"
"신고합니다. 해병하사 김종훈외 000명은 1974년 4월 30일부로 전역의 명을 받아 신고합니다.!"


이것이 해병하사로 마지막 제병 지휘였다.

전역식을 끝낸 병력은 포항 역전으로 이동하여 개인별로 전역증을 수령하고 각자 고향 앞으로 향했다.

 

당시 전역하는 대부분의 해병들은 포항쪽을 향해 오줌도 싸지 않고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들 중얼거리었다.


나도 그러한 무리들 중 하나였는 데 그로부터 두 번 다시 포항을 찾아가는 데는 딱 9년이 걸렸다. 즉, 83년7월 아이들을 장모님께 맡기고 여름휴가를 집사람과 같이 구룡포에서 보낼 때였다.

한일고속 버스에 승차한 백준기와 나는 자리를 나란히 하며 포항을 출발하였다.


효자검문소에 잠시 정차한 버스에 해병 헌병이 올라와 검문을 하면서 우리를 보더니 경례를 하며 안녕히 가시라고 전역을 축하하는 데 기분이 묘했다. 수많은 특박, 휴가 때마다 모든 해병들이 귀찮아하던 효자검문소가 아니었던가?

포항에서 서울로 오는 차안에서의 5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중 차창 너머로 지난 3년간의 해병대 생활이 생생히 떠올랐다.

 

71년 4월 27일 진해훈련소 입소 시는 비 내리는 소란한 경부선 야간열차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진해를 찾아 갈 때와 힘들고 괴로웠던 눈물의 시간, 기쁨과 환희의 시간, 미움과 사랑이 교차하던 애증의 시간, 이 모든 해병하사의 지나온 길은 이제 지나간 추억의 길로 흘러갔다.

전역이라는 날아갈 듯한 기쁨도 잠깐이고 이제부터 길고도 험한 나의 인생길이 과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고속버스처럼 고속주행을 할 수가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만 아프고 괴로운 심정이었다. 그날은 부처님 오신 날로 고속도로변의 사찰입구에는 불자신도들이 절을 찾아가는 모습들이 차창너머로 전개되었다

서울 동대문 터미널에 도착하여 신림동에 있는 백준기의 형님 집에 들려 전역인사를 하고 동생들과 어머니가 계신 인근 신림동 집에 도착하여 전역인사를 드렸다.


이 때부터 그해 겨울인 74년 12월초 첫 직장 입사할 때까지
사연 많은 젊은 백수의 기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