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하교90기 김종훈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하사관이 된다. - 제10부 아! 해병대

머린코341(mc341) 2015. 5. 9. 18:22

[제10부 아! 해병대] 나는 자랑스러운 해병하사관이 된다.

제10부 아! 해병대

포항사단에서 전역하는 해병대원들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는 말이 포항을 향해 오줌도 싸지 않고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사단생활이었는 지 모두 다 공감하고 있는 말이다.


나 자신도 제대 후 포항을 찾아가는 데는 9년이 지난 83년 7월 여름휴가를 구룡포 해안에서 보낼 때였다.

사실 포항을 찾아가는 데는 김포여단으로 82년 3월초 1주간의 동원훈련을 소집 받고 그 곳에서 하교90기 동기인 이경표, 하교 72기 김대식 하사, 하교 71기 길성재 하사들을 재회하면서 해병전우로서의 전우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인식하면서 포항을 찾아보았다

동기인 이경표 하사는 당시 대우에 근무하였는 데 동원소집 훈련기간 중 밤이면 인근주막에서 하교훈련을 회상하며 한잔 술로 서로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달랬었다.


한편 7연대 2대대 본부중대의 하침에서 동고동락하던 하교 선배인 김대식 선임과도 재회하였는 데 그는 당시 서울에서 버스 기사로 험한 사회를 헤쳐 나가고 있었으며, 길성재 선임은 포항에서 김포로 전출되어 당시 PX 선임하사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를 만나 뜨거운 전우애를 나누었다.

그 중 길성재 선임과는 포항근무 시 수 많은 추억들이 있었는데, 그와 나는 워낙 술을 좋아하여 순검이 끝나면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금복주 대병 소주를 연신 비우고 그것도 부족하여 근무자를 불러 인근 PS판 담장 밖의 가게에서 소주를 사다 마신 기억이 생각난다.

 

이런저런 사연이 많은 그와 나는 10여 년만에 재회하여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는 데 아직도 술을 많이 하느냐고 물으니 이제는 술을 끊고 열심히 군 생활을 한다던 하교 71기 길성재 선임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예비군 동원훈련은 82년도 그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 그 후로는 한동안 동기들과 전우들을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던 80년대 중반 중소기업 대학원을 다니면서 해병 선후배들을 학교에서 만나 진한 전우애를 나누기 시작하며 나의 직업상 전국의 중소기업 출장 시 수많은 선후배 특히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라도 더 주고 베풀었던 것은 해병이었기 때문이었다.

89년 언젠가 경주로 출장 시 235기로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다 중공업관련 제품 제조를 위하여 창업한 전우를 만나 창업지원 업무를 자세히 설명하고 교육하니 열심히 사업을 하여 보답하겠다던 패기 있던 전우의 모습이 생각난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직장생활과 아이들의 학교 뒷바라지에 집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더욱 해병전우와 동기들과의 관계가 소원하였다.

 

그러나 어쩌다 해병들을 조우하면 반가운 마음과 전우애로 뜨거운 마음을 주고 받았는 데 주로 업무 관련으로 만나 한잔 술을 나눌 정도로 가까워 서로의 신상 주변얘기를 나누다 해병임을 알게될 때의 감회는 뜨거웠던 것이 나 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그후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을 계기로 인터넷 사이트의 활성화로 우리 해병전우들, 특히 젊은 30대와 40대 초반의 해병들이 주축이 된 해병 사이트가 개설되며 자연히 이들과도 재회하여 사회 각층에서 맡은 자기의 직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선량한 시민의 의무를 다하는 그 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전우애를 나누기 충분하다.

지난 여름인 8월1일 그날도 창원공단의 중소기업 출장업무를 수행하고 해병대 골프동호인회의 임원진들이 포항 도구해안에 모여 휴가를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업무를 서둘러 끝내고 포항으로 이동하여 도구해안에서 그 들과 첫 대면을 하였다.


하교 83기 강영근 선배, 병269기 장한우 후배들이 반겨 맞아주었다. 만나자 바로 우리는 오래된 친구같이 격의 없이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주고받는 전우애를 나누었다

나로서는 포항사단의 여름 전투 수영장인 도구해안을 꼭 30년만에 찾아보아 감회가 새로웠다.


여름이면 전투수영, 수색훈련을 받던 도구해안의 밤은 옛날과 같이 별빛을 토해내고 있었고 밤새 기울이는 소주잔과 해병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으며, 다음날 아침 지금도 변함없는 전투 수영과 함성소리는 30년 전의 나의 훈련과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포항은 업무관련으로 이제 자주 찾아가며 그때마다 비행기 착륙 시 차창 아래로 보이는 사단의 전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전개되고 무장구보 코스, 공수훈련장, 활주로 행사장, 도솔관, 3연대, 7연대 지점들을 확인하는 또 다른 감회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니 이 또한 포항에서 근무한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각 지역에서 말없이 지역사회를 위하여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자원봉사를 수행하는 단체가 어느 단체인가? 아직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부문과 긴급 재해발생 시 제일먼저 앞장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각 지역 해병전우회와 해병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의 희생은 더욱 컷을 것이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시 제일먼저 산소용접기를 메고 현장에 달려와 2차 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지에서 철근을 절단하고 무너진 건물 속에서 신음중인 시민들의 긴급인명 구조를 펼친 서초 해병전우회.

97년,98년 파주 수해 시 제일 먼저 수재민 구출작전을 수행한 파주 해병전우회와 김포2사단 수색대원, 이밖에도 지리산 수해 시 인명구조, 2001년 4월15일 김해상공에서 발생한 중국 여객기 추락사건 시 제일먼저 현장에 달려간 김해 해병전우회 등 사건 사고가 있는 곳에는 항상 해병과 해병전우회가 참여하여 헌신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해병대임을 보여주는 것은 정의와 자유를 신조로 하는 해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음지에서 양지를 추구한다는 곳이 있다지만 정녕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국민의 안전과 질서유지에 아무런 대가없이 기꺼이 자기 몸을 던지는 해병들이야말로 정의의 화신이 아닌가? 이런 해병전우들을 동지로 가진 우리해병들은 자긍심과 앞으로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합시다.

하교 90기로 부천에 거주하는 오홍열 동기는 가뭄과 수해발생 시 전국을 안방처럼 다니며 무료지원 봉사활동을 도맡아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다.


이미 지역언론과 중앙지에서 오홍열에 대한 보도기사가 수 차례 게재되어 그 의 선행과 인간성에대한 칭송이 자자하니 전 해병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올해에도 8월의 태풍피해가 극심한 강릉을 누구보다 먼저 달려간 사람이 오홍렬이었으며, 그 뒤를 따라 복구 자원봉사를 펼친 후배해병들의 나라사랑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렇게 해병들은 현역 때보다 전역 후 자원봉사 활동과 헌신적인 희생정신으로 각 지역과 사회 각층에서 두터운 전우애를 나누고 해병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데 이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 해병이 아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사실 나 자신도 선후배, 하교 90기 동기를 만나고 있지만 딱 부러지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저 오직 하는 말은 해병출신이니까! 이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제, 오늘 또 내일도 우리 해병전우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선량한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어렵고 힘든 일을 자청하여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드리고 같은 해병전우로서 자긍심이 가슴깊이 각인 된다.

2000년 12월 김포 청룡회관에서 인터넷 전우회 모임을 계기로 하교90기 동기 모임, 선후배 해병들과의 모임을 정례화 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전우들을 서로 격려하고 끈끈한 전우애를 다지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13일 잠실종합운동장 일원에서 단축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선후배들과 10km를 완주하며 강인한 해병정신을 오랜만에 체험하였고 가족들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이제는 나도 반백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지나온 세월의 아쉬움과 못 다한 일들을 더욱 열심히 해야되고 해병으로서의 자긍심과 전우애를 나누고 싶다. 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마장 테니스장에도 해병 3명이 끈끈한 전우애를 나누고 있다.


하교90기인 나. 병388기 김정열, 411기 김영철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는 매 주말과 주중 2차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테니스를 즐기고 부인들을 동반한 교류를 빈번히 하여 타 회원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있다.


지난 마라톤대회도 참가하여 완주하는 저력을 보였다.

우리는 나아가 해병 테니스회를 조직하여 테니스를 즐기는 해병들과 교류하여 건강유지와 전우애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합니다.

앞으로 우리 해병들은 깊은 전우애를 나누고 모군의 발전 즉, 해병대 지위의 원상회복과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고 국민을 위한 해병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해병으로서 해야할 사명이며, 그저 맹목적으로 해병임을 내세우는 어리석음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 해병대원으로서 해병사랑과 국민의 해병대로 정의와 자유를 표상으로 하는 해병의 영원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제11부 글을 마치면서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