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5)/ 백 해삼과 독나방 얘기

머린코341(mc341) 2015. 10. 16. 18:25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5)/ 백 해삼과 독나방 얘기


인사장교 시절 부대 본부 BOQ 앞에서

  

(6) 백 해삼과 독나방 얘기


드디어 백령 중대는 6.25 때 선배들이 악전고투의 흔적으로 남긴 난민수용소 타입의 막사를 버리고 관창 고개를 훨씬 넘어 공군부대 본부 가까운 곳으로 이동을 했다.


그 곳은 지나가는 차나 민간인도 바로 보이지 않는 외딴 산 중턱이었지만 시야가 멀리까지 트인 곳이라 매우 기분이 좋았다.


화창한 어느 초여름이었다.


장교 숙소의 바깥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는 어떤 여자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왼 민간인이 부대 내에까지 들어 와 저러나 싶어 바로 뛰어나가 보니 민간인 출입 엄금이라는 팻말만 세워 놓고 철조망이 아직 없는 부대 서쪽으로 해삼을 팔러 올라 왔던 어떤 아주머니의 분노한 목소리였다.


내용인즉슨 산삼이나 진배없는 백 해삼을 사라고 했더니 어떤 하사관이 냉큼 그것을 삼켜 놓고는 겨우 보통 해삼의 가격을 쳐서 받아가라고 때를 쓴다고 했다.


나는 정작 때 쓰는 사람이 해삼 장수인지 아니면 우리 하사관인지 도무지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아주머니는 산에는 산삼이고 바다에는 해삼인데 더구나 백 해삼은 몇 백년 묵은 산삼이나 다름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그런 생떼였고 이미 백 해삼을 집어 삼킨 우리 하사관의 주장은 해삼이 돌연변이를 했던 것인데 보통 해삼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 아주머니가 말하는 하사관의 생떼였다.


나는 실로 난처했다.


백 해삼 편을 들자니 사기 당하는 기분이고 먹은 사람 편을 들자니 그래도 너무한 것 같고, 그래서 나는 우선 아주머니를 냉정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평소 소리가 큰 내 목청을 더욱 높여 부대를 무단 침입했다는 것을 구실로 아주머니를 호되게 몰아붙이자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고는 잠시 잠잠해졌을 때의 틈을 노려 내 나름대로의 재판을 큰 목소리로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 아이들이라고 모두가 같은 것이 아니고 어쩌다 이상한 아이가 태어나는 수가 더러 있잖소? 백 해삼도 그런 것이오. 그라고 더 큰 문제는 백 해삼의 문제가 아니라 아줌마가 우리 부대를 허가 없이 침입을 한 것이오! 그렇지 않아도 간첩 때문에 우리가 비상이 걸린 상탠데 아무래도 아줌마는 방첩대(지금의 기무사)로 넘겨야 할 것 같소.”


단호한 내 말에 아주머니는 당장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줌마,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이미 먹은 백 해삼은 하사관이 조금 더 얹어 주는 대로 값을 받고 대신 아주머니가 가지고 온 해삼 전부를 우리 장교들이 돈을 모아 팔아주면 되지 않겠소.?”


아주머니는 금방 변색을 하더니

“네,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요”


결국 우리 장교들이 사주게 된 해삼은 큰 바케츠에 가득 찰 정도였고 그 날 그것을 특히 많이 먹은 나는 내 평생 그렇게 심한 설사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머구리배들이 남쪽으로부터 올라 와 백령도에서 몇 달간씩 상주를 하며 해삼을 채취하는 수가 많았다.


해녀들과 보통 2개월간의 계약을 하여 해삼을 잡고 있었는데도 거의 대부분을 육지로 싣고 나갔기 때문에 사실은 백령도에서도 해삼이 그렇게 흔했던 해산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부대를 이동 한 후 첫 여름은 우리로 하여금 너무 끔찍한 경험을 하게 했다.


백령도에서 이런 일이 있기 몇 해 전 서울에서도 가로수에 독나방이 퍼져 야단법석을 떨었던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우리부대의 보초병들이 밤새 불을 보고 날아 온 독나방들에 의해 맨 먼저 그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나방의 아주 미세하고 칼날 같은 털이 얼굴에 묻게 되면 가려움증은 물론 당장 피부가 부풀러 올라 사람을 식별하지 못 할 정도로 얼굴을 일그러지게 했다.


결국은 전 중대원이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바람에 떠다니는 독나방의 가루에 피해를 입었고 내 경우는 목과 허리 그리고 옆구리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긁으면 긁을수록 심했으나 피가 나도 계속 긁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괜스레 서 있다가도 목이 따끔 하는가 싶으면 가루가 바람을 타고 이미 피부에 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시 물로 닦아 낸다고 해도 이미 칼날 같은 가루가 피부에 꽂힌 뒤라 당장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 하는데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한 대원이 묘수를 찾아 중대 전체에 전달을 했는데 그것은 수건에 물을 적신 후 굵은 소금을 찍어서 바로 피가 나도록 환부에 문지르는 방법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피딱지가 앉지만 결국 그 것이 떨어지고 나면 일단은 나은 것이 되었다.


소대장들은 옷을 벗고 전령들로 하여금 물로 축인 수건에 소금을 묻히게 하여 상처마다 마찰을 시켰는데 그 시원한 기분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고 우리끼리의 비밀로는 너무 시원한 나머지 사정까지 하는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