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6)/ 공돌과 야구시합 그리고 관창소주

머린코341(mc341) 2015. 10. 16. 18:31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6)/ 공돌과 야구시합 그리고 관창소주


이사 후의 백령중대 (좌로부터: 부산 항만청장을 한  김광수 소위. 제주도가 고향인 중대장. 본인. 해간34기 김영환 소위)

                
(7) 공돌과 야구 시합 그리고 관창소주


요즈음 백령도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콩 돌로 되어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연하리의 콩 돌이 아니라 공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없어졌는지 몰라도 공 돌은 마치 누가 기계로 만들어 놓은 듯 그야말로 공처럼 거의 완벽하게 둥근 모양을 한 차돌이었는데 그 크기가 야구공 보다는 약간 크고 소프트볼의 크기 보다는 약간 작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진해의 충무공 동상 아래 장식으로 깔아 놓았던 돌이 우리가 이름 지어 붙였던 바로 그 공 돌이었는데 사람들이 가끔씩 슬쩍 슬쩍 주워 가는 통에 그것을 보충하려면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대원들이 다시 작업을 해 수송선편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막상 해변으로부터 모아 놓고 보면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던지 가마니에 삼분의 일 정도만 담아 옮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선은 가마니 아래 부분이 터져나가 매우 작업이 난처했다.


한 때는 부대본부 연병장에서 야구 시합이 축구시합보다는 더 많이 열린 적이 있었다.


특히 미군들과의 시합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우리 팀에는 한 때 전국을 휩쓴 동대문 상고의 쌍둥이 피처 중 한명이 와 있어 매우 든든했고 나도 삼루수나 유격수를 보면서 시합에 일조를 했다.


미군 선수들 중 매우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일루수를 보는 덩치 큰 흑인이었는데 어디서 그렇게 큰 한국 제 흰 고무신을 구했는지 시합 때면 항상 그 흰 고무신을 신고 나타났고 하도 힘이 좋아 공이 슬쩍 방망이에 맞았는가 싶으면 흔히 홈런이거나 삼루타였다.


그리고 미군들이 던지는 공의 속도는 우리가 던지는 속도와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는데 말하자면 슬쩍 던지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과장 된 표현으로 총알처럼 그 속도가 빨랐다.


하기 사 요즈음 우리 선수들이 미국에 야구 선수로 팔려 가면 맨 먼저 공의 속도가 몸에 익지 않아 공 받는 연습부터 한다고 하여 나는 실감이 나는 얘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튼 미군들은 우리가 이기면 먹다 남은 맥주나 도구들을 냉큼 챙겨 달아나고 만약 자기들이 이기면 남은 맥주를 몽땅 주고 가는 버릇이 있어 야속한 녀석들이라고 우리가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또 다른 얘기로는 “소위 때 백령도에서 먹은 술값을 함장이 되어서 갚는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예전에는 특히 해군 장교들을 믿고 인심도 후했다는 말이 전해 내려  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드는 관창 소주는 우선 달달해 매우 삼키기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육지의 소주 마시듯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보는 수가 많았다.


원래 관창 고개 부근에서 만드는 소주는 뱃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소주로 알고 있었는데 나는 그 소주보다는 그 양조장이 궁금했다.


내가 백령도에 있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건물 두 개 중 하나가 바로 관창 고개를 넘기 전 멀리 바라보이던 바로 그 양조장이었다.


물론 다른 하나의 건물은 진촌에서 부두로 막 나가는 길 왼편 안쪽에 있었던 콘셋트 건물이었으나 결국 그것은 대북 작전을 하는 기밀 부대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왜 관창 소주를 만든다는 그 건물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형태의 독특한 초가로 되어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그 양조장에 갈 기회라도 있었더라면 내용을 알 수가 있었겠지만 자주 멀리서만 바라보고 다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말하자면 보통의 초가라면 벽이 보여야 할 텐데도 여러 채로 모여 있는 그 양조장의 형태는 모두가 아예 지붕 끝에서부터 땅 끝까지 짚으로 씌워 놓은 데다 다른 집들도 없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 먼 외딴 곳에 있어 그 위치마저도 어떤 신기함을 자아내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눈이 많이 오던 날, 내무반에서 하사관들과 관창 소주를 마시다 소변이 마려워 바깥으로 나와 소변을 보다 그만 도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모양이었다.


같이 소주를 마시던 하사관들은 내가 숙소로 갔거니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그만 눈 속에 파묻힌 채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눈이 쌓이고 또 쌓여 불룩한 흙더미처럼 되었을 때 순찰을 돌던 하사관들이 이상히 여기고 발길로 차 보다 그 속에 파묻혀 자고 있던 나를 발견 했던 일이 있었다.


물론 그 후로 나는 관창 소주라면 항상 노 쌩큐로 일관했지만 내가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밤이면 순찰 돌기가 힘들어져 보통은 땅바닥까지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는 것인데도 이날은 어떻게 된 일인지 순찰 하사관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니 이때 벌써 내 목숨도 쉽게 죽을 목숨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던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