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아리랑(10) - 국군 중의 꽃이로다(下)
미국대통령은 우리네 파월한국군의 눈부신 전공에 대하여, 17년 전 한국전쟁 시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6.25 전쟁 시 우리나라가 진 정신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빚을 갚았다는 뜻인 것이다.
본의 아니게 진 세계적인 빚... 한번 지면 되갚기 어려운 그 빚을 위정자도 아닌, 재벌도 아닌 바로 대한의 아들, 우리네 자랑스런 파월용사들이 자신들의 젊음을 고스란히 전쟁터에 바침으로서 일거에 갚아버린 것이다.
빚진 나라의 운명은 어떤 것인가. 형식상은 독립국일 것이나, 실질상은 선진국의 속국으로서의 멍에를 짊어진 채 초라한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당당히 세계에 대하여 제 목소리를 높이며, 미국에 대하여도 촛불집회로서 불만을 표시할 수 있음도 알고 보면 지난날 우리네 파월용사들의 고귀한 자기희생으로 말미암은 덕분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파월용사들은 당신들의 신명을 다 바쳐 이 나라를 전쟁의 위험에서 건져내었다. 그리고 가난의 늪에서 건져내었다. 그들은 정녕 시대를 초월하여 국군 중의 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연히 국가유공자인 것이다. 진정 대한민국이 자존심을 가진 국가라면, 정부는 파월용사들을 당연히 국가유공자로 예우해야 할 것이며, 국민들 또한 파월용사들을 국가유공자로서 칭송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보훈실상은 어떠한가. 과연 파월용사들은 국가로부터 국가유공자로서의 진정한 예우와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인가. 과연 파월용사들은 국민으로부터 그들이 세운 공헌에 비례하는 응분의 대우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현실은 파월용사들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실망의 극치를 달려가고 있었다.
동양의 유교문화로 말미암아 언제나 사양지심을 미덕으로 생각했던 우리네 파월용사들은 가난한 이 나라에 대하여 애당초 아무런 보상도 대우도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국가를 위해 충성을 하였다는 자부심 속에 당신들 스스로 세운 공에 당신들 스스로 만족해함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무정한 세월 속에 구세대는 사라져 갔고 신세대가 올라오면서 파월용사들의 공적은 점점 잊혀져 갔다. 우파정권은 그들의 정권유지에만 파월용사들을 이용하려 들었고, 좌파정권은 파월용사들을 보수세력으로 몰아부쳐 홀대하였다. 그 어느 정부도 파월용사들의 공적에 대하여는 못본 체 외면하였다.
그 결과 그들의 공적은 국민들의 관심권 밖에서 맴돌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무성의와 국민의 무관심을 기화로 하여 어느 날 갑자기 용병설과 학살설이 쏟아져 나왔다. 파월용사들의 충성심은 어느 사이 용병으로 비하되었고, 그 용감함은 잔인성으로 매도되었다.
파월용사들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무정한 이 나라 정부와 국민들... 그러기에 아무도 몰라주던 파월용사들의 명예, 그나마 당신들 스스로만이라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던 명예, 그 명예가 철부지 식자들의 말장난에 의하여 순식간에 오명과 누명으로 얼룩져 버렸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는가. 인내에도 한계가 있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법이다.
지난 날 홍안의 그 파월용사들은, 이제는 인고의 세월속에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그 노병들은 가슴깊이 사무치는 배신감에, 한순간 분노어린 목소리로 이 나라 이 국민을 향하여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에 대하여 일부 후세대들은 한낱 노인네들의 망령으로 치부하면서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부쳤다. 언론 역시 피상적인 현상에만 치중할 뿐 파월용사들의 억울함을 심도 있게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파월용사들에 대한 능욕과 우롱이었다.
짐승도 은혜를 안다했거늘, 모진 세월, 기다림의 댓가가 이렇게 배은망덕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아, 어찌하여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전사자는 이역만리 구천에서 떠돌고, 그나마 산 자도 고엽제로 인하여 하나둘 신음 속에 죽어가는 이 마당에, 이제 마지막 남은 명예마저 짓밟혀버렸으니, 아 통재라, 이 나라 호국의 별들이 빛을 잃었도다, 아 통재라, 이 나라 산천초목이 소리없이 흐느껴 우는도다. 차라리 악몽이라면 깨어나기라도 할 것을, 정녕 하늘도 눈이 먼 잔인한 시절이었다. 과연 이 나라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굴곡진 세태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날 파월용사들은 전장에 투입되기 전에 손발톱을 잘랐다. 그리고는 한통의 유서를 썼으니... 그 내용은,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로 태어나 국가에 충성함에 기꺼이 이 목숨을 바치나니, 죽어서나마 넋이 되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절절이 비장감서린 글귀였다. 자신을 버려서 국가를 살리려는 정신, 그 숭고한 애국심... 어찌 이들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랴. 과연 이 나라의 영웅들은 고향에서 대접을 못 받는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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