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아리랑(11) - 슬픈 영웅들(上)
정녕 영웅은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 말은 후진국이나 자존감이 없는 나라에서만이 가능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선진국이나, 자존감이 강한 나라들은 그들의 조국을 위해서 싸운 영웅들에게 당연히 최고의 영예를 부여하고 있다. 하다못해 한때 우리와 싸웠던 베트남조차 비록 후진국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민족주의의 강한 자존심은 나라를 위하여 싸운 전사들을 영웅의 칭호로서 대우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우리나라의 보훈실상은 선진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나라치고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작 이 나라에 희생과 헌신을 한 자로서 당연히 국가유공자로서 되어야 할 파월용사들은 보훈의 테두리 밖에서 맴돌고 있고, 그 대신 그 자리에는 단순사고자나 질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자들이 나라에 희생과 헌신을 한 자로서의 허울 속에 국가유공자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며, 그 기상천외한 진풍경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목전의 비정상적인 현상은 그동안 역대정권들이 자기네들의 정권유지와 눈앞의 당리당략에만 집착한 나머지 우리네 보훈정책에 대해서는 얼마나 소홀했던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성의함의 소치로 인하여 보훈당국은 여전히 지난 날의 부조리와 타성에서 헤어나지 못한 체, 마냥 현실안주와 복지부동의 자세로 일관했으며, 덩달아 국민들의 관심권에서도 우리네 파월용사들의 공적은 서서히 망각되어 갔던 것이다.
국가보훈법 제1조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의 영예로운 삶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한다”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다. 취지는 좋으나 과연 정부는 그와 같은 소명의식으로 정책을 진지하게 운용하고 있는가. 공무수행 중 책상을 옮기다가 허리를 다친 자에게서 무슨 숭고한 정신이 있다고 이 나라 국민에게 선양할 것이 있으며, 평화 시의 군복무에도 적응치 못해 자살한 자를 보고 무슨 나라사랑 정신이 우러나 이 나라 국민에게 함양될 것이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이 보훈정신의 진정한 취지에는 안중에도 없이 무책임한 탁상행정과 주먹구구식의 국가유공자 선정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는 어느새 엉터리 국가유공자의 천국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국가유공자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국민들은 국가유공자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멸시하는 풍토로 나아갔고, 애국심 또한 진작하는 것이 아니라 경시하는 풍조에 이르렀다. 한편 국회는 여야 모두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다가 그나마 여론에 밀려 기껏 만들었다는 국가유공자관련법이 얼렁뚱땅 날림공사한 건물과 같으니 그 부실함에 애꿎은 파월용사들만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보훈의 의미와 국가유공자의 정의는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국가유공자의 선정 기준에도 심한 왜곡현상을 빚었다. 또한 그 우선순위에 있어서도 앞뒤가 뒤바뀌는 불합리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진정한 국가유공자는 제도권 밖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못하고, 따라서 그들의 선양하여야할 숭고한 정신은 있어도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유약무하면서 그 빛은 점점 바래어 갔다. 생각컨대, 이 나라의 보훈정책은 진정한 유공자 대신에 엉터리 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양산하였으니, 애당초 숭고한 정신은 아예 찾아볼수 없게 되었거늘, 어찌 보훈의 취지에 따른 선양을 그나마 할 수 있었으리오.
그야말로 해마다 돌아오는 보훈의 달은 단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참으로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였다. 이로 말미암아 국민들의 의식속에서 국가유공자의 의미란 것은, 정녕 이 나라에 지대한 공을 세운, 오로지 숭고한 정신을 가진 자로 여겨지기는 커녕, 오히려 그저 그런 갑남을녀가 어쩌다 입은 피해로 나라에서 배상받는 자들일 뿐, 결코 존경을 하여야할 대상이라고는 생각지 않게 되어버렸다. 실상이 그러함에 과연 이 나라 국민들이 누구를 보고 무엇을 본받아서 애국심이 진작될 것인가, 그나마 갖고있던 애국심마져 오히려 가치없는 것으로써 가볍게 여기고 버려지는 지극히 안타까운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현실에서 정작 우리네 파월용사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었다 한들, 그에 병행한 적극적인 선양이 함께 하지않는 이상, 그동안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막연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국민들은, 특히 월남전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후세대들은 상기 엉터리 국가유공자를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시각으로 우리네 파월용사들을 바라봄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참으로 거꾸로 달려가는 이 나라의 한심한 보훈정책이 유감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헌법 제39조 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 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역으로 해석하면 나라를 지킨 자에게는 그에 따르는 충분한 응분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의 보훈의 현실은 헌법정신에 역행하여 나아가고 있다. 이 나라 정권들은 우리네 파월용사들의 공적을 선양하기는 커녕, 그 선행조건인 국가유공자로 인정함에도 한껏 거드름을 피우면서 인색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의 세월, 월남 참전 반세기 속에 오늘날 파월용사들의 현실, 그 자체가 바로 지난 날 우리의 보훈정책이 얼마나 무성의 하였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법률의 불비를 내세워 외면하고, 예산의 부족을 내세워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하려고만 급급하였다. 그렇게 법률이 미비하면서 어찌하여 엉터리 유공자는 잘도 만들어지는가, 그렇게 예산타령만 하면서도 눈먼 돈처럼 뿌려지는 공적 자금은 과연 누구의 돈이던가...
'★해병일기 > 해병278기 김성동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룡 아리랑(13)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上) (0) | 2016.08.14 |
---|---|
청룡 아리랑(12) - 슬픈 영웅들(下) (0) | 2015.10.29 |
청룡 아리랑(10) - 국군 중의 꽃이로다(下) (0) | 2015.10.29 |
청룡 아리랑(9) - 국군 중의 꽃이로다(上) (0) | 2015.10.29 |
청룡 아리랑(8) - 구국의 행진(下) (0) | 2015.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