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1년) - 중대장의 위기를 구한 고두규 해병
화천(華川)지구 전투 때(51년 4월 하순) 1대대의 철수를 엄호했던 3대대는 10중대를 최전방 능선지대에 배치하고 11중대는 그 후방, 9중대는 11중대의 좌측방 후면에 배치하여 오후 4시경부터 엄호임무를 수행했는데, 1대대가 진지를 빠져나간 직후 10중대의 2개 소대는 진지공사를 하는 도중에 1대대의 철수를 눈치 채고 접근한 소규모의 적과 교전상태에 들어가 혼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데 그러한 와중에 일선 소대의 전열 정비를 위해 전방 소대로 향하고 잇던 10중대장 이동성(李東成) 중위는 복부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게 됨으로써 2명의 중공군에게 생포를 당하는 절대절명의 상황에 처해지고 말았으나 다음과 같은 극적인 상황이 벌어져 구사일생 그 위기를 모면했다.
즉 쓰러져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던 이동성 중위는 “중대장님-, 후퇴를 하셔야 되겠습니다-. 후퇴를-”하고 소리치며 다가오는 듯한 전령 고두규(高斗奎) 해병의 다급한 외침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듯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바로 그 순간 깜짝 놀라며 기관단총을 들이대는 중공군과 장총을 들이대는 중공군이 양쪽 옆에 서 있는 것을 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다음 순간 가까운 거리에서 들린 “쾅!”하는 총성과 함께 장총을 들고 있던 중공군이 “억!”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곤 필시 하늘이 돕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체없이 왼쪽 손으로 왼쪽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들기가 무섭게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기관단총의 머리를 쏘아 즉사케 했는데, 얼마나 공포에 질려 있었던지 그는 탄창 속에 들어 있는 총탄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방아쇠를 당겼고,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한 그는 MI소총으로 장총을 든 자를 쓰러뜨린 전령과 그 전령이 소리쳐서 달려오게 한 위생병의 부축을 받아 10중대의 집결지까지 후송된 후 그 곳에서 비래한 미 해병대의 구급헬기에 실려 미 해병대의 야전병원으로 후송됨으로써 구사일생 목숨을 구했다.
한편 그러한 와중에 10중대는 11중대의 엄호 하에 철수를 했는데, 다음 얘기는 생명의 은인인 고두규 해병에 대한 10중대장 이동성 중위의 보은의 정과 관련된 후일담이다.
복부에 중상을 입고 미 해병대의 야전병원을 거쳐 진해 해군병원에 입원했던 이동성 중위는 3대대 본부와 연대본부의 각별한 협조로 간병요원으로 병원에 파견된 고두규 해병으로부터 극진한 도움을 받았는데, 상당기간 해군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동성 중위는 고두규 해병에게 제대를 한 후 공부를 하기를 원하면 진학을 시켜 줄 것이고 장사를 하기를 원한다면 장사를 하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며 의향을 물어보자 고두규 해병은 제대 후의 일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고 오로지 고향인 제주도에서 복무를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기에 그 소원이 성취되도록 도와줌으로써 54년부터 56년(7.23) 하사의 계급으로 제대할 때까지(총 복무기간 5년 11개월) 제주막사 경비소대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해지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 당시 제주도 출신 해병대 병사로서 유일한 제주도 주둔부대인 인원이 극히 제한된 제주 해병막사로 발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듯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끝으로 이러한 전설적인 일화의 주인공인 고두규 하사는 2002년 4월 73세의 나이로 작고했으나 사진에 보듯 자손이 모두 해병의 혈통을 이은 3대(代) 해병가족이며, 고두규씨의 남인 고재남씨(해병341기)는 현재 북제주군 애월유 신암리 리장으로 있고, 손자인 고경찬 해병(912기)은 현재 제1사단에서 근무 중에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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