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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기(‘51년) - 가짜 총살형을 집행한 임동근 중대장

머린코341(mc341) 2015. 11. 3. 11:59

6·25전쟁기(‘51년) - 가짜 총살형을 집행한 임동근 중대장

 
6․25전쟁 기간 중 가짜 총살형을 집행했던 첫 번째 사례는 ‘50년 9월 12일 부산항에서 출항한 한․미 해병대의 병력(KMC 1, 2, 3대대와 USMC 5연대)이 승선한 2척의 미 해군함정(LSTQ03 과 기함 피카웨이) 이 미지의 행선지(인천)를 향해 항진을 계속하고 있을 때 한국 해병대 대원들이 타고 있던 선실에서 빈발하고 있던 오발사고의 방지를 위해 3대대 화기 중대 선임장교 서판기 소위가 계획해서 집행한 가짜 오발자에 대한 가짜 총살형이었으며, ’51년 4월 24일 화천(華川)에서 집행된 두 번째 가짜 총살형은 1개 반의 기관포(CAL. 50)를 10중대에 배속시킨 3대대 12중대장 임동근(林東根) 중위가 10중대에 배속시킨 그 기관포의 반장과 부반장 및 사수 부사수 등이 철수를 할 때 비록 불가항력적인 상황 때문에 기관포를 버리게 될 경우 기관포의 방아쇠틀 뭉치만은 적이 사용할 수 없도록 반드시 분해해서 버리거나 가지고 와야 하는데 그것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문책형 충격요법으로서의 가짜 총살형이었다.

 
한․미 해병대의 화천지구 전투는 한․미 해병대가 북한강을 건너갔던 그 날(51. 4. 22) 밤 10시를 기해서 감행한 중공군 대병단의 춘계공세로 적군의 주공(主攻)이 지향된 한국군 6사단의 주방어선(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이 돌파를 당하는 바람에 그 우측에 연계된 미 해병 1사단 7연대와 5연대가 연쇄적인 철수를 단행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러한 와중에도 미 해병 5연대의 우측에 배치되어 있던 KMC의 1, 2 대대 중 2대대는 중공군의 인해전이 감지된 초장(피리소리와 꽹과리소리가 들린)에 미처 방어진지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멸하듯 강변으로 철수를 했고, 유독 좌일선의 1대대(장, 공정식 소령)만은 인접부대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상황하에서도 기적처럼 진지에 버티고 있다가 그 이틑날 (23) 새벽 중공군인 줄 알고 내습한 미 해병대의 전폭기의 공격으로 수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오후 4시경 10중대의 엄호 하에 철수를 할 때까지 혼자서 버티고 있었던 것인데, 그러한 결과는 23일 아침 L-20기를 타고 작전지역의 상공을 정찰했던 미 해병1사단 부사단장 폴라 준장이 KMC 1연대의 CP를 방문하여 연대장 김성은 대령에게 “KMC 전방에 군단(미9군단)의 화력에 결단이 난 수천 구의 중공군 시체가 깔려 있다”고 했던 말 그대로 우군포의 막강한 화력이 지탱시켜 준 기적과도 같은 현상이었던 것이다.

 
한편 23일 오후 14시경 1대대는 3대대 10중대의 엄호 하에 무사히 철수했으나 1대대가 철수한 직후 10중대는 홀연히 나타난 중공군의 추격으로 피아군 간에 혼전이 벌어져 그 와중에 10중대장 이동성 중위가 중상을 입고 후송을 당했고 10중대가 철수한 후(땅거미가 진 후) 엔 축차적인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11중대가 끝까지 적을 물리치고 강변으로 철수했는데, 그러한 와중에 10중대에 배속이 되었던 기관포반에서 1문의 기관포를 방아쇠틀뭉치를 분리하지 못한 채 버리고 온 것이 12중대장에게 보고가 되어 가짜 총살형이 집행된 것이었다.

 
그런데 4월 24일 오전 전장동(戰場洞)에 위치하고 있던 3대대가 북한강을 건너기전 12중대 진지에서 집행한 그 가짜 총살형의 집행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집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12중대의 일부 병력을 동원하여 개울가에 6척 깊이의 호를 파게 한 다음 5명의 사격수에 공포탄 5발씩을 사전에 장진시켜 명령에 대비케 했던 임동근 중위는 처형 준비가 완료된 그 장소에 분대장 백봉기 하사 이하 전 분대원을 그 형장에 집합시켜 놓은 자리에서 화랑담배 한 개비씩 피워 물게 한 다음 엄숙한 표정으로

 
“저 호는 너희들을 처형하여 파묻을 호다.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제주도에서 너희들을 모병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나 군법이란 이런 것이다. 집에서 죽었으면 너희 부모님이 향물로 목욕시켜 줄 것이나 여기서 죽으니 개죽음과 다를 바 없다. 자기 스스로 도랑물에 몸을 청결히 하라. 총살은 분대장부터 집행한다”


라고 말했고, 그런 연후에 한 모금씩 담배연기를 뿜어낸 대원들이 도랑물에 몸을 씻고 정열을 하자 분대장과 부분대장을 호 앞에 세워 붕대로 눈을 가림으로써 그 자리에 서 있던 분대원들과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중대원들의 마음을 섬찟하게 했고, 잠시 후 집행관(임동근 중위)의 신호에 따라 정열한 5명의 사수가 사격 개시의 명령에 따라 5발씩의 총탄(공포탄)을 발사했을 땐 다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충격을 받았으나 피격을 당한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음으로써 그 총살형이 가짜로 집행된 것임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러한 총살형을 연출했던 임동근 중위는 호 앞에 정열해 있는 분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너희들을 모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는가? 이번 실수는 저 물에 씻어 보내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손잡고 전투에 임할 것을 맹세하자”는 말을 했다고 한다.

 
5․16군사 정변이 일어난 61년 7월 중령의 계급으로 예편했던 임동근씨는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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