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독립/ 원상회복 추진 역사와 관련하여(9)
해병대독립(1973년으로 원상회복) 추진사의 대략
■ 권력자의 결단 한마디로
○ 손원일 제독지시로 1949, 4, 15 해병대창설
해병대는 1945년 4월 15일 진해덕산비행장에서 380여명의 소수 인원으로 창설되었지만, 6,25전쟁을 치루면서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등을 통해 풍전등화에 놓였던 대한민국을 북한공산당의 손아귀에서 국가위기를 완전히 반전시키는 쾌거를 달성하였고 제대로 모습을 갖춘 군대로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자랑스러운 이름도 얻었고, 또 1968년에는 월남전에 선발대로 참전하여 “신화를 창조한 해병대”라는 이름을 추가하였다. 이와 같이 해병대는 싸우면 이기는 군대, 작지만 강한 무적 해병대, 「한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로서 단결력 면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펄쩍뛰며 동의하지 않으려할 것이고, 병들 간에서 1개 기수차라도 엄정한 군기유지를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삼으며 안보의 최선봉군임을 자랑해온 참으로 자긍심 강한 군대였었다.
○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1973, 10, 10. 해병대사령부 해체: 38년의 긴 시련이 시작되었다.
해병대는 1960년 박정희장군이 이끄는 5,16혁명에 가담하여 혁명은 성공시켰으나, 통치자가 된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어 해병대는 5,16군사혁명을 함께한 동반자로 여겨지기보다는 그 반대로 정권유지에 위협적인 조직으로 느껴짐에 따라서 경제군 육성이라는 미명아래 국방부특별검열을 실시 한 후,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고 해군에 통합시켰다.
이후 해병대는 38년이라는 세월동안 참으로 해병대답지 못한 군대로 유지되며 시련을 겪는 고초의 세월을 살아오게 된 것이다. 1973년 10월 23일 제1대 해군제2참모차장(제10대 해병대사령관에 해당)으로 부임한 김연상 장군을 시작으로 모든 권한이 제거된 해병대의 최고 선임자로써 수족이 없는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에 놓임에 따라서 찬란했던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지휘관의 역할을 다 못하였다. 그 후 38년이라는 일제 침략기보다 길고긴 시련의 출발점에서 지휘권 없는 힘없는 불운한 해병대 수장의 역할이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 전두환 대통령지시로 1987, 11, 1 수족도 없는 해병대사령부 재창설되었다.
성병문장군은 제7대 해군제2참모차장으로서 비록 빛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해병대사령부의 회복을 구두약속을 받아내는 상황까지 이끌어 낸 후에 해병대를 떠났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대통령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해병대의 단결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었기에 어떤 법적인 절차 없이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로 해병대사령부를 재창설하게 되었다. 마치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해병대사령부를 통폐합시킬 때와 같이 통수권자의 권력에 의한 직접지시에 의해서 제8대 해군제2참모차장 및 제10대사령관이 된 박구일 장군 시절인 1987년 11월 1부가 재창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령부가 재창설은 되었으나 법적인 어떤 후속조치도 없었기에 사령부 통폐합의 분위기나 범주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즉 해군참모총장이 해병대 사단을 포함 예하부대를 직접 지휘 감독하는 상황이 지속됨으로서 해병대사령부는 별도의 존재로 유지되었다. 즉 해병대 사단, 여단, 훈련단 등 예하부대를 전혀 지휘할 수 없는 허수아비 지휘관으로 존재하는 참으로 불상한 해병대 총수의 모습이 존재하는 해병대 말이다. 그러나 큰 성과로 여기는 것은 무허가 집이라도 장만하였으니 이제 허가를 받는 절차는 수월하리라는 희망을 안겨준 성과라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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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독립/원상회복을 원하지 않은 사례(구체적인 내용들은 활동편에서 제시예정)
제9대 이병문사령관 (해병대전우회중앙회총재 시절)
○ 1989-90 간에 818계획(합참조직개편)으로 해병대문제가 검토될 때도 아시아시멘트 사장으 로 재직하면서 도움을 받기위해서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거절해 예비역들에게 원성을 샀다.
○ 1996년 8월부터 시작한 제1차 해병대원상회복운동 추진시 당시 해병대전우회중앙회 총재직 을 수행하던 이병문 장군(통폐합 당시 제9대 사령관)은 해병대가 없어지는 세계추세(48개 국에서 15개국으로 감소)인데 이 정세를 모르는 일부 몰지각한 이상한 전우들이 주장한다 는데 걱정이다. 리더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함.
제24대 김명환사령관(해병대전우회중앙회총재 시절)
○ 2007, 3-2008,5 중에 정도영 예비역준장이 이끄는 제2차원상회복운동추진시 국회입법발의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대국민 2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중앙회에서 전략적으로 은 밀히 진행할 할 테니 예하 전우회는 지시 없이는 동참하지 말라고 하였다.
○ 2007, 4, 21 : 김명환총재와 정도영 추진위원장 회동에서
○ 2007, 6, 8 : 광주에서 연합회장단과 대담시
○ 2007, 7, 12 : 중앙회에서 회의 시에도
○ 2007, 8, 4 : 여의도에서 총재와 위원장 회동 시에도
○ 2007, 8, 7 : 중앙회에서 덕산포럼을 개최할 시에도
○ 2007, 11 : 해병대원상회복 청원서 자료수집중앙회 장군단 활동전개
○ 2007, 11, 30 : 중앙회 총회 시 등등
15 회원분들 일부
해병대 예비역 준장 정 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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