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대장의 죽음(2)
날이 약간 밝아 올즈음,나는 통신병에게 어제 저녁 중대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라는 지시를했다.
"장중위님이 돌아가셨답니다"
"야,그게 무슨 말이야? 매복은 우리가 나왔는데 중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장중위가 죽어?"
"아마 어제 저녁 대대본부에서 테스트파이어 할 때,유탄에
맞았다는 거 같습니다"
통신병의
목소리가 매우 낮은 반면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커갔다.
"말도 안돼....대대본부에서 27중대가 어딘데. 그리고 미리 대대에서 테스트파이어 한다는 연락도 안 왔단 말이야?"
화난 내 목소리에
통신병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야, 통신기 이리 내!"
내가 직접 중대본부의
통신병에게 물어 보아도 별로 더 상세한 얘기는 들을 수 없어 결국 중대로 귀대를 해서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기로 했다.
더우기 장중위는 내 동기생이며,귀국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중대 포소대장을 하며 관례에
따라 작전에도 나가지 않는 특전을 받고있는 중이었다.
매복이 끝나는 새벽녘에는 밤새 맞은 이슬에 옷이 눅눅해진다.
모기에 물려가며,거의 뜬 눈으로 지샌 탓에 몸도 마음도 모두
기진해 있었지만 밝아 오는
시야가 무사했음을 느끼게하고 또한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다.
오늘은 맨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분대에서 2명을 차출하여 소대가 매복하던 장소로부터 빠져 나오면서 낙오를 잠시 시켜 놓을 계략이다.
가끔씩 적들은 우리가 마음을 놓고 철수를 할 때면,우리의
후미에 따라 붙어 총질을 하는 수가 있었다.
소대가 천천히 움직여 맨 마지막 분대의 꼬리가 매복을 했던
장소로부터 150미터쯤 왔을 때, 우리 소대원이 쏜 유탄 터지는 소리와 M16을 연발로 사격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가 했더니 순간,철수하던 마지막 분대가 급히 뒤로 돌아 공격태세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남겨둔 두 대원이 우리를 뒤따르던 적을 발견하고 유탄과 소총을 먼저 쏘아댔는데도 적은 잽싸게 숲속으로 도망을 하여,그만 놓치고 말았다.
중대 정문이 가까워서는 5고지의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리고 모두가 사구로 된 모래땅이라 걷기가 약간은
힘이든다.
정문을 들어서니,먼저
피 묻은 압박붕대가 어지럽게 긴 꼬리를하고 흩어져 있는 것이 여기,저기에 보이고
약간 더 떨어져서는 흰머리가 가득한 중대 선임하사관 조상사가
혼자 우뚝 서서 우리가 들어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경례를 한 후,
"장중위님이 어제 저녁에 돌아
가셨습니다"
나는 답례를
하자마자,
"얘기들었소. 근데, 이게 뭐야? 얘들 불러 좀 치우라고 해!"
매우 신경질적인 내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대원들이 주섬 주섬
모으고 있는 피 묻은 압박붕대...
나는 잠시 장중위의 얼굴을 떠올려 본 후, 대원들을 인솔하고 중대장 벙커 앞으로 갔다.
중대장으로부터도 장중위가 죽었다는 짤막한 말만 듣고는 대원들을
모두 해산시켰다.
어제 저녁 7시20분은
대대본부에서 전 대원이 외곽 벙커로 들어 가 외부의 가상적을 향해 소화력을 쏘아대는
테스트파이어의 시각이었다.
물론 대대본부에서 27중대로 연락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대대본부에서는 약속 시간인 7시20분을 바깥이 깜깜해지자 임의대로 10분을 앞당겨 사격을 시작했던
것이 큰 문제였고...
대대본부에서 27중대를 바라보면 숲이 가려져있는데다,사구가 발달되어 만들어진 5고지로 경사마저 40도 정도가 되어있어,완전히 멀리 산 하나를 넘어야 27중대의 진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27중대 2소대에서 나무가 빽빽히 들어차지 않은
숲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선 거리로 200여미터의 거리에 대대본부의 외곽 벙커가
보이는 형편이라, 대대본부가
이렇게도 가까이 있구나 싶은 생긱이 들 정도였다.
물론 워낙 대대본부의 바운다리가 커서 그렇기도 하지만,아무튼
대대본부의 입장에서는 너무
안이하게 생각을 했고,또 시간을 마음대로 앞당겼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대 외곽으로부터 난사된 총알은 나무를 비껴 맞고,또 모래 바닥에 바로 꽂힌 총알들은 물에서 총알이 튀겨지듯이 꼭 같은 효과로 위로 튀어 올라, 샤워를 하거나 저녁을 마악 마치고 벙커 바깥에 나와있던 27중대의 대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27중대는 아무 준비도 없는 가운데 유탄의 세례를
받았던 것인데 장중위는 마침 그때 자기 벙커에 기대어 유탄이 날라오는 방향의
반대 방향을 향해 고국에서 온 편지를 읽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총소리에 주위가 소란하다는 것을 느낀 장중위는 얼른
피하지 못하고 총소리가 나는 등뒤를 힐끗쳐다 보다 그만 힘없는 유탄을
관자노리 근처에 맞고 말았다.
아뿔사... 차라리 총알이 바로 차고 나갔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을.
힘없는 유탄이 되다보니 그만 머리 속을 향해 머무르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 일을 두고 처음에는 내가 모두가 동기생인 27중대 소대장들을 모아 놓고 예정 시간을 일방적으로 10분을 앞당긴 대대본부 작전장교의 책임을 강력히 묻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폈으나, 솔직히 내가 매복을 나가기 전,우리 중대장이나 중대본부로부터 내 자신 테스트파이어가 있을 것이라는 어떤 전달도 받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고는 결국 우리 중대본부의 직무소홀과 대대작전부서의 협조부재 및 판단 미숙으로 인한 것으로 여기고,우리 소대장들은 한걸음 더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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