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戰爭期 - 묵호의 사자(獅子)로 불리운 정기조 씨
6.25전쟁 때 해군에서 해병대로 전입한 수많은 사병들 중에서 ‘묵호의 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정기조(전입 당시 중사)씨 만큼 전설적인이도 드물 것이다.
1947년 1월 15일 해군5기 신병으로 입대했던 정기조씨(개성 출신으로 해방 후 서울지구에서 깡패생활을 하다가 해안 경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음)는 신병훈련소를 수료한 후 1등수병의 계급일 때 마포항에 출입하는 선객들을 검문하기 위해 설치한 양화교 헌병파견대(김포헌병대 관할)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 그 파견대의 반장인 김 모 하사가 미 군정청에서 지급해 준 총신이 긴 모젤권총을 뽑아 들고 “정 수병 말을 듣지 않으면 이 권총으로 한 방 쏴 버리겠어”하고 농담처럼 말을 하자 그를 얕잡아 보고 있던 정 수병이 설마 하는 생각에서 “아 쏠 테면 쏴 보시오”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아차 하는 찰나에 방아쇠가 당겨져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고 상당기간 김포에 있는 미 공군기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과 함께 묵호경비부로 전속 발령이 났다고 한다.
한편 묵호로 가게 된 정 수병이 그 곳에서 ‘묵호의 사자’라는 악명 같은 별명을 얻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별난 짓을 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첫 번째 화제는 묵호 공설운동장에서 육군 축구팀과 해군 축구팀 간의 친선경기가 열렸을 때 세력이 큰 육군팀을 심리적으로 위협을 하기 위한 대책 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경기를 하기 전 경기장에 경기관총을 4분지 3판 차에 싣고 옴으로써 결과적으로 시합이 무승부로 끝났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기관총과 관련된 또 다른 한 토막의 일화가 있는데 그 내용인 즉은 다음과 같다. 즉 6.25전쟁 전 강릉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게 되자 그 때에도 기관총을 운반해 옴으로서 상대편 세력을 혼비백산케 했다고 하는데, 이 일화는 과거 묵호경비대(해병막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강복구 전 해병전우회 중앙회 총재가 6.25전쟁 전 그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해군군인으로부터 그런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말한 모 지인(知人)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하며 일본군 출신인 그 지인은 그 당시 강릉에 있는 모 은행의 간부 직원이었다고 한다.
통제부 동문위병오장 시절
묵호에서 그런 화제를 남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정기조씨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가 없지만 정부가 수립된 후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또는 그 이전까지 통제부 동문위병오장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동기생 J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동문 위병오장 시절의 정기조씨(하사의 계급으로 추정)는 오른쪽 허리에는 모젤권총, 왼쪽 허리에는 술이 담긴 호리병(고려자기류)을 매달고 있었다고 하며 특히 간호장교들이 드나들 때는 온갖 히야가시(성희롱과 관련된 말)를 해대는 바람에 간호장교들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했다고 한다.
진남포로 출동한 백 부대
6.25전쟁 전 묵호경비에서 근무할 때나 진해 통제부 위병오장으로 있을 때 전설적인 화제를 남겼던 정기조씨는 전쟁이 일어난 50년 9월 하순경 백기조(소령) 부대(1개중대)가 편성될 때 박병화 서수복 김승렬 하사관 등 다른 3명의 동기생들과 해병대로 전입, 소대장 요원으로 편입되어 10월 중순경 진남포로 출동했다가 아군의 흥남철수작전 때 묵호로 철수하여 묵호경비부의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52년 11월 묵호경비부에 해병막사(경비대)가 창설된 후 장단지구에서 작전 중인 5대대(제1전투단)로 전속되었다가 55년 다시 묵호막사로 전속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55년 김병호 막사장과 강용 막사장 재임시에 묵호막사에서 근무했던 오 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묵호막사의 선임하사관(당시계급 중사)으로 발령이 난 정기조 하사관은 막사장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1주일에 한 두 차례 부대에 얼굴을 내 밀고 평상시는 술집이나 다방에서 지내다가 때로는 밤중에 단독무장으로 포복훈련을 시키면서 오징어 건조장에 말려 놓은 오징어를 걷어오게 한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엔 그런 말썽 때문인지 또 다른 사건 때문인지 56년 1등병으로 강등이 되어 백령도로 전속 발령이 났으나 백령도로 가지 않고 서울로 가서 전전하다가 연말경 인천에서 횡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순재씨가 남긴 증언
금년 3월 작고한 동기생 박순재씨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즉 서울지구 헌병대의 순찰계장으로 있던 56년 여름철 어느 날 스카라극장 근처에 있는 모 중국음식점의 신고를 받고 백차를 타고 현장으로 출동했더니 그 음식점에서 3~4명의 후배들과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시켜 먹은 다음 음식 값이 없어 후배들을 먼저 한 사람씩 밖으로 나가게 한 연후에 남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가 슬며시 일어나 2층 창문 밖으로 벽을 타고 빠져 나가던 중 주인에게 발각이 되어 헌병대에 신고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순찰계장 박 상사가 백차를 타고 현장에 당도했더니 가판대 위에 떨어져 발을 삔 동기생 정기조가 면목이 없다는 듯 씨익 웃기에 어쩔 수 없이 중국집 주인에게 음식값을 보상해 주고 약간의 피해를 입은 가판대 주인에게도 사과를 한 다음 일단 정기조씨를 헌병대로 연행했다가 돌려보냈으나 그 해 연말경 인천헌병대로부터 정기조씨가 누군가에 의해 피살을 당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증언에 따르면 정기조씨가 인천에서 비명횡사한 후 강원도에서 깡패생활을 하고 있던 그의 동생도 누군가로부터 보복을 당해 살해되고 말았다고 한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3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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