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후 - 11년간의 은령제패자 김하윤 선수
해병대 출신 전 국가대표 선수 김하윤(金河允)씨는 53년 3월 대관령에서 개최된 전국체전 스키대회에 해병대의 스키팀 선수들인 김종기, 서응호, 유종현, 김만성, 최훈씨 등과 함께 출전하여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전종목에 걸쳐 우승한 것을 효시로 하여 그로부터 11년 연패(連覇)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움으로써 해병대의 명예와 스키인 으로서의 성예(聲譽)를 빛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8세의 어린 시절부터 고양인 함경북도 성진 스키장에서 스키를 배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김하윤소령은(19 년생) 1.4후퇴 때 월남, 양도(洋島)부대장 시절부터 해병대의 스키팀 조직에 착수했던 최청송 선배의 권유로 53년 3월 해간14기로 임관하자마자 그 해 3월 대관령에서 개막된 전국체전 스키대회에 해병대팀 주역으로 참가하여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를 석권했고, 그로부터 장장 11년을 은령(銀嶺)의 왕사(王者)로 군림했던 것이다.
11년 간 은령의 기린아(麒麟兒)로 각광을 받아왔던 김하윤 소령 생애에 있어서 가장 가슴 부풀게 했던 일은 역시 1960년 미국 스케벨리에서 개막된 제8회 세계동계올림픽대회에 한국 대표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참가했던 일일 것이다. 그 후에도 계속 선수생활을 해 왔던 김하윤씨는 그 기간 중 해병대 스키 팀 선수들과 함께 40~50명에 달하는 후배 선수들을 배출시키는 데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뒷받침으로 해서 훗날 해병대 내에 창설된 특수전을 위한 스키부대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서도 이바지한 공로가 컸었다.
53년 11월 소위로 임관한 후 전투단에서 소대장 근무를 마친 뒤 사령부 및 서해부대(백령도)에서도 근무했던 김하윤씨는 5.16 군사정변 후 육군헌병학교를 나온 뒤로는 헌병장교로 근무하다가 65년 9월 청룡부대 헌병사령으로 임명되어 월남전에 참가했다.
69년 소령의 계급으로 예편했던 그는 10여년 간에 걸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대한스키협회의 임원생활로 전환하여 국가대표팀의 전임코치로도 활약한 바 있었고, 72년 핀란드에서 개최된 동계유니버시아드 때는 조사 연구원의 자격으로 임원단에 참가하여 구라파 일대의 스키장을 체크하고 돌아오기도 했었다.
74년 2월 고려여행사(국제 관광부)에 입사하기 전 아주관광(주)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던 김하윤 소령은 특히 스포츠 레저관광 사업의 개발을 위해 공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릴 적부터 은령에서 자라나 은령에서 화려한 청춘시절을 보낸 그는 또한, 운동신경이 뛰어나게 발달하여 골프는 헨디 13. 볼링 하이블라의 실력은 180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근황을 전할 수가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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