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록 600자-8
동화교육!
동화교육이 아니라 훈단에서 * 뺑이 깟다고 잠시 쉬는 휴식기간.
그리고 * 나게 기압 빠지게 하는게 동화교육이다.
서서히 실무병과 피교육생 간의 이념의 차이(?) 가 있게 한다.
선배 해병님들.그리고 후배 해병님들의 군대 생활에 대해 모른다.
다만 내가 겪은건 병과 하사관.하사관과 장교사이에 뭔가 알수 없는 계급간에 갈등을 느낀다.
현역 병들이 하사관이나 장교한테 게기는것이다.
하사관은 장교 한테 게기고 ..
이거 뭐 당나라 군대인가 ...
본부소대 있으면서 병장 선임 이 고참 하사관 한테 무슨일인지 몰라도
속칭 말하는 따바리 가 붙었다.
분에 못 이기는 김영훈 하사...
이분이 누군고 하니 해병 사재 엘범에 보면 국군의날 해병이 있다
그 사진속을 보면 좌측 하사관열에서 두번째로 분열중인 분이다
중사 바로뒤에 있으며 코가 약간 돼지코다 찿기 쉽다/시간 나면 한번 보시길..
갑자기 2층 침상에 주전자를 집어 던진다.
우리 노란 뼝아리들은 * 나게 쫄았다.
그러자 그 병장선임 반 존대말로
"이거 왜 이럽니까! ,A-C-8 * 같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하여튼 한참 옥신각신 하더니만 화해를 하는지라
신병 훈련소 수료한게 얼마나 된다고 서서히 헷갈리기 시작한다.
저녁 식사후 대기중인 우리 노란 뼝아리한테 대위 계급장을 단
뚱뚱하고 새까만 장교분이 들어 온다 ..
꼭 삼장법사를 따라 다니는 저** 스타일...
이분이 바로 나의 쫄따구 시절 중대장이신 해병대위 김삼영..
성질은 불같다.
이분이 나의 중대장이 될줄 누가 알았으랴!
훗날 내가 일병 정기휴가 복귀 후 1소대 공실에서 개같이 두들겨 맟았다
억퍼컫에 발길로 들고 차이고 의자 날아 다니고 그날 저녁 완전무장 구보에 6중대 연병장을
밤새 뺑뺑이 돌았다..나중에 설명///
보병중대 중대장은 사단장 끝발보다 더 좋다.
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싶다.
드디어 동화교육도 끝이 나고 연대.대대신고를 마친뒤 중대 배치가 실시 된다.
6중대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살려 그런데로 운동좀 잘하고 악기 있는 네놈만 남기고
나머지 다른 중대로 보낸다..
나는 6중대 1소대
산적같이 생기고 새까만 놈은 2소대로
훈단 수료식후 마지막날 빽바가지 교관이 탕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돼지 같은 놈 윤대근은 3소대 로-요놈은 바로,IBS 병으로 가 열심히 k-1고무보트 빵꾸 떼우고
모터 테스트 하고 보트뻠삥 등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온몸이 근육질인 이병수는 화기소대로 배치를 받는다.
첫 중대 과업 정렬...
드디어 중대장님 신고후 병기 수여를 받은다음 온 중대원의 환영 식이 거행된다.
//오늘같이 좋은날...오늘같이 기쁜날 ..우리 전우 진심으로 전입을 축하 합니다.
쫄따구 선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어느 정도 고참병들은
야지를 넣는다.."목소리 봐라! 목소리 썩었다!
//중대가 하나 둘 서이 너이.......
-검푸른(차자자) 바다위에(차자자)보트를타고(아! 에헤이)
소대배치 첫날..
나의 선도병 아바이 는 서울 뺀질이 598기 남용길 해병님이다.
소대엔 전역을 바로 앞둔 고참 해병님 두분이 계셨는데 말 한마디 못하고 전역 하셨고
그 다음이 591기 조건현 해병님!
그 다음이 598기.
600자는 602기부터쭉 달아 붙어 618기 까지 있었다.
그담은 622기 두분.629기.630기 다음에 * 나게 기압빠진 나...
나의 작업복을 전부 빼앗아 일월회관에 가서 오바르크를 치러 보낸다
당시 일월 회관엔 민간인 아줌마와 아가씨가 오바르크를 쳐 먹고 살았는데.
그 중 아가씨는 내가 전역후 회사 다닐때 회사 형의 형수 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계사항이 내려온다.
622기 최종철 해병님이 중대 기수를 적어 몰래준다.
"신병"
"예! 이병 김보철"
"내일 아침까지 다 외워 못 외우면 개 ** . 너 내 제대할때 까지 *나게 꼬이며 뒤질줄 알아"
아이고 100 명이나 되는 중대 기수를 다 외워야 되니...ㅊㅊ
그것도 하사관이나 당직사관 몰래..
난 화장실로 쫓아간다
응아 를 하기위해서라곤 하지만 중대기수를 다 외워야 하니.
밤새 화장실을 들낙날락 하면서 300원 짜리 라이타 불에 의지 하면서 결국 90% 는 외웠다.
그 이튿날 점심식사후 결전의날 테스트..
622기 최종철 해병님은 밖으로 날 부른다.
"다 외웠어"
몇명 헷갈리지만 그래도 기압든 해병 용사라 대답은 잘한다
"예"
"해봐!"
워카 터는척 하면서 주위에 하사관이나 장교가 오나 안오나 망보면서
줄줄줄 외우다 딱 막힌다.
"어쭈 벌써부터 빨아라 하네"
그러면서 워카 와이어 부러시로 나의 고귀한 대갈빡에 빡 소리를 낸다.
어찌어찌 하다 몇대 맟고 외웠다.
"너 들어 가서 629기 강재웅이 하고 630기 오동황이 데려와 그리고 너는 622기 소대 내 동기 하현면이 한테 가봐!"
629.630기 중간 테스트와 인계사항을 하달 하기 위해..
622기 하현면 해병님 한테 가보니
이제는 사재군가 테스트..
중대가 부터 한구절씩 불러준다
내가 천재가 아닌데 어찌 다 외우리...
모나미 볼펜 아니면 라이타를 가지고 손가락에 끼워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 순간...
622기 두분이 온다.
2소대 이강섭 해병님과 화기 소대 변기식 해병님!
중대 622기 해병님은 총 4 분이 계셨다.
이 두 해병님 한테는 전역 하는 그날 까지 단 한차례도 안 맟았다.
내가 원채 기압이 들어 그런가 아니면 *나게 빠져 그런가..ㅎㅎ
변기식 해병님은 집이 경기도 의정부 쪽으로 기억 되며
신병 훈련소 622기 식사 오장을 했었다 한다.
나와 같은 식사 당번 출신이라 ....많이 봐 줬나..
참 많이 맟았겠다 훈련소 때 빽바가지 교관 한테..
속으로 그리 생각이 되었다.
각종 인계 사항이 내려온다.
하사관 이나 신임 소위 하고 이빨 까지 마라
묻는 말에나 대답하고 이빨까면 죽는다.
쪼개지 마라.
소대 기름통에 기름 은 긴빠이 해 항상 만땅 채워 놔라-주로 도깨비 7중대는 6중대의 타켓대상
하여튼 수십가지의 인계사항이 내려오며 어길경우 조용히 불러내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뤄야 했다.
저녁 석별과업후 TV, 시청시간..
때마침 TV 엔 우정의 무대 2훈단 편 (632기-634기)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고참들은 2층 침상에 누워 시청하고 중간 고참들은 의자에 앉아 시청
나와 쫄따구 3명(629.630.631기) 은 소대 입구 1층 침상에 부동 자세로 앉아 시청 한다.
그 TV 시청이 끝나고 바로 땡초 영화 시리즈가 방영된다.
TV 내용 스토리가 *나게 우습다 .우습지만 쪼개지도 못하는 불쌍한 신삥이...
갑자기 591기 조건현 해병님이 날 부른다
"신삥 이"
"예! 이병 김보철"
"이 선임이 너에게 별명 을 하사 한다"
"예 감사 합니다."
"넌 지금 부터 저 TV 속에 나오는 땡초다 . 이 선임이 땡초 하면 달려 온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땡..............초.......오"
"예 이병 땡.......초......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 웬쑤 같은 땡초 영화 땜에 쫄따구 시절 신병 이라는 소리 보다
6 중대에선 땡초로 통하게 됐으며 전역 하는 그날까지 중대 선후임 들은 나보고
내 이름은 안부르고 땡초다.
본인 나이가 올해 34 살인데 아직 까지 땡초다..
하여튼 591기 조건현 해병님 별명 하나는 죽이게 지어 놨다.
나뿐만 아니다.
622기 하현면 해병님 별명은 베트......맹...
짮게 줄여 맹........
신삥인 629.630.631기 세명은 항시 붙어 다녔으며 쫄병 생활도 같이 했기에
고참이 돼서도 기수를 떠나 서로서로 친구 비스무리 하게 지내는 우정의 사나이가 돼었다
당연히 윗 기수와 어느정도 차이가 있고 나의 바로 밑 기수가
해병대 보병부대 중 거의 있을수 없는 23 기나 차이가 나니...
내 바로 밑 기수가 654기다
기수복 하나 만큼은 끝내준다.우리 중대에 500자후반기수나 600자 아주 초반 기수보다 기수복이
너무 더 좋다 그 개 **들 나 전역후 연락 한번 없는 아주 싸가지 노란 놈들이다.
한대 더 때리고 나올걸 ..
기수 차이가 너무 나 때리자니 쪽 팔리고 ...
620자에서 640자 까지 중대에 겨우 10여명 정도니 기수복이 얼마나 좋은지 가름하길..
신삥들은 이리저리 불려 다닌다
난 특히 옆 소대 598기 김상준 해병님 한테 끌려 다닌다.
나의 아부지인 598기 남용길 해병님의 동기라 .....
상병의 계급이지만 여 또한 기수복이 좋아 고참이다.
김상준 해병님 하고 같이 다니면 중대 해병님들이 건들질 않는다.
거의 나의 방패막이다.
감히 중대 고참이 끄짙고 다니는데 집합 시키자니 김상준 해병님 한테 말도 못 부치고...
머리가 잘 돌아 가는 분은 금방 이해 할 것이며 좀 둔한 분들은 무슨 말인고 헷갈릴것이다.
이분의 별명은 개장사 이다
그 많고 많은 별명중에 개 장 사
이유는 이러하다.
김상준 해병님이 신병전입 왔을때 중대장님이 너 제대해서 뭐 할래
물었는데
그 대답이 "개 장사 할렵니다"
그 말한마디에 별명이 그 이후로 개장사다.
중대원들은 김상준이라는 이름보다 개장사라는 별명이 귀에 익었다
그러던 어느날..
90년도 1월 경 위로휴가가 얼마 안남았는데.
우리 중대연병장에 데모진압 훈련으로 난리다
철모 앞에 방석모(전경들이 착용하는 쇠망)를 쓰고 진압봉과 포승줄로 결박술 훈련
우쌰우쌰 이리저리 뛰다니고...
이유는 이러하다
울산 현대 노사분규가 평소 어느 해보다 심했다.
데모진압을 간 일부 전경들이 깨졌었다.
후속 진압부대로 먼저 전경 100개 중대 10.000명의 병력이 1진으로 출발
데모 진압을 막다 실패 했을경우 우리 해병대가 후속타로 진입해 데모 진압 작전을 펼치기로 되어 있었다.
당시 중대장님이신 김삼영 중대장은 목에 핏빨을 세우며 진압훈련을 독려 한다.
"야 이 개** 들아 ! 너건 울산에 장난 하러 가는거 아니다.
실전이다. 건재유지 잘하고 언제 화염병과 쇠 피이프가 날라 올줄 모르는데
어설푸게 훈련 하지말고 확실히 해라"
결국 울산 데모 진압 하러 가는날 아침...
극적으로 노사분규가 타결되 출전이 취소 됐다.
지금 생각 하면 어찌 되었을지..
민간인 진압에 군 부대 그것도 해병대가 출전해 데모 진압을 했다고
메스컴에서 한창 안 떠들었을까 생각한다.
해병대는 김포나 서해 5도 쪽 보단 포항이 훈련이 많다.
그리고 보병이 많으며 보병 중에서도 IBS 대대가 훈련이 많았었다.
알만한 해병은 다 안다.
드디어 1990.2.5-9 까지의 위로 휴가가 결정이 돼었다.
그 얼마나 기다리던 첫 휴가던가..
그린사지 다리고 정모에 원형각 잡고 ..
쎄무워카 손질하고..
난 손 하나 안 돼었다.
소대 선임들이 이때 만큼은 손수 머리에서 발끝까지 챙겨 주신다.
위로 휴가가 이제 3일 남았다,,
기다려지네........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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