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록 600자-28
삐이삐이..........
호각소리에 발을 맟춰 출발한다.
역시 좌우에 도열한 2연대 병력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낸다.
7벌째열 중간에 일병 계급장을 달고 * 빠지도록 달린다.
어떤 *이 이 무장구보를 만들었는지....
내 손에 잡히면 죽음 아니면 사망이다.
21대대 4거리 에서 훈단쪽으로 좌회전 한다
바로 눈앞에 훈단교회가 보인다.
훈단시절 군목 대위의 설교를 듣고 도너스빵 한개 더 먹으려하다 일명 짬뽕(한번 먹고 다시 줄서 배급 받는것)
하다가 걸렸지만 당시 실무 선임 해병 (아마 570자 초반 기수)이 웃으면서 한개 더 얻어 먹었던 기억을 상기 하면서 다시 좌회전 해 사단본부 앞을 지난다.
사단본부 앞에 포항특정경비 지역 사령부라는 팻말이 보인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인 12키로 완전무장 쪼쪼바리
사단 화학 지원대를거쳐 좌측에 위치한 소방서를 쳐다보고 뛴다.
이지점이 3키로 지점이다.
다시 해지단 군용모포 세탁소 옆을 지나(현재의 상륙 지원단)
을 좌회전 해 가니 용감한 대한의 해군 용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내리막길을 쫙 내려가니 멧돼지동산 우측으론 포항 병원및 7연대 가는길
부대 담벼락 을 좌측에 두고 뛴다.
서서히 입가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 한다
북문을 얼마 안 놔두고 우리 앞에 먼저 출발 했던 부대 병력들이 맞은편에서 뛰어 오고 있다.
서로 힘 내라고 격려를 보낸다.
비록 시합 이지만 같은 해병으로서 격려를 보낸다.
북문을 유턴해 BOQ 앞을 지나니 미리 대기중이던 22대대 7중대 해병들이 얼음을 준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에 얼음을 문 지르면서 입에 얼음을 넣고 뛴다.
중간 중간 AN-PRC77 무전기를 메고 타 부대의 기록을 점검중이던 해병들이 소리 친다.
6개팀중 현재 1위 ..
우리 보다 10분 늧게 출발한 3연대 중간 기록도 우리 연대보다 늦다고 한다.
포병연대앞을 지나칠때 였다.
7중대 선임해병 한분이 몸에 쥐가 나는 모양이다,
근육 경련 이었다.
33명 동시에 같이 들어 와야 하는 무장구보.........
갑자기 그 선임은 철모에 꼽고 있던 도루코 칼날로 자신의 좌측 팔뚝을 칼로 그린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 뛰고 있다.
그걸보고 어찌 감히 낙오하랴
사실 낙오란 생각 할수도 없었다,
당시 33명 해병 전원은 철모 옆에 도루코 칼을 청테이프로 손잡이를 감고 그 칼을 철모에 꼽고 뛰었다.
기억 하실분은 기억 할것이다
낙오 하면 그 해병은 타 부대로 전출을 보낸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고,
좌측에 사단 연병장이 보인다
마지막 500미터 정도를 남기고 33명의 2연대 해병들은 전력 질주를 한다.
좌우측에 위치한 해병들이 수통에 연결된 줄을 풀어 헤치면서 갈메기 모양 을 하고 전력 질주
드디어 1명의 낙오 도 없이 좋은 기록으로 들어 왔다.
현재는 1위다.
전부 땅바닥에 주저 앉아 깊은숨을 몰아 쉬면서 퍼져 버렸다.
다만 우리보다 10분 늧게 출발한 32대대7중대 해병들이 문제 였다.
우리 2연대 보다 기록이 늦다는 걸 알자 죽자살자 뛰었는 모양이다.
막판 질주가 무서웠다,
결국 3연대 기록이 우리 보다 약 30여초가량 빨랐다..
진짜 울고 싶었다.
2등은 필요 없었다.
이 짮은 시간을 위해 그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는데.........
진짜 최선을 다 했다.
전부 낙담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7중대장님과 대대장님 연대장님..
"괞찮아,,정말 잘했어,,,,"
하면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신다.
속에선 아쉬움으로 인해 눈물을 흘린다.
비록 1990년도 1사단 체육대회 무장구보 종목 준우승을 했지만
총력전(줄달리기).마라톤.축구.이어달리기(릴레이).씨름.족구.무장구보
전 종목에 걸쳐 거의 1위를 차지해 종합우승 3연패를 달성 했다.(당시 사진을 보고..)
연대내 각 중대 현관마다 경축 사단체육대회 종합우승 3연패 라는 프랭카드가 붙어 있었다(나중 특휴 복귀후 보니)
무장을 다시 울러 메고 7중대로 복귀해 7중대장님께 6중대 복귀 신고를 한다.
601기 김창호 해병님
"필승 신고 합니다, 병장 김창호 외 5명은 서기 1990년 9월 28일부로 7중대 무장구보 합숙을 마치고 중대 복귀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 합니다.......필승!.."
7중대 중대장님
"그래 수고 많았어 ..자네 들은 전부 전역 하고 김보철(631) 과 김인복 해병(632)은
내년에 다시 합숙 들어 오도록 ......"
결국 그 말 한마디에 1991년도 추계 사단 체육 대회때 병장을 달고 김인복 해병과 같이 2연대 대표로 한번 더 뛰었다.
1990년도에 뛴 선임 해병 거의 전원이 전역을 해 버렸기 땜에..
중대로 복귀하니 소대 선임들 그린사지 동정복을 나에게 입힌다.
연대에서 연락이 왔는 모양이다.
연대장님 기분이 좋으셨나.
우승한 종목 선수들은 15박 16일 특별 포상휴가,,(체육대회 땜에 휴가 미룬 해병들은 30박31일)
준우승한 종목 선수들은 10박11일
3위한 종목과 응원팀 해병,,그외 공로가 인정 되는 해병은 7박 8일의 휴가가 실시 됐다..
드디어 군대와 첨으로 포상 휴가를 받았다..
그 휴가증이 바로 내 추억록의 일부분을 장식 한다.
위로휴가증
계급 일병
이름 김보철
군번 950533*
출발일 1990년 9월 28일
복귀일 1990년 10월 8일
해군해병 2867 부대장인 (꽝)
그리고 그 옆엔 당시 내 좌측 어깨에 차고 뛰었던 2R 라는 연대표시 흰 마크..땀으로 얼룩진 표시가
그대로 되 있어 가끔 추억록 속에 사진을 보며 그 날 1990년 9월 28일을 상기 한다.
부대 주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직속상관 께 휴가 신고를 하기 위해 중대 현관 앞으로 모인다.
무장구보팀은 표시난다.
전부 몰골이 개 삑다구며 다리를 절고 있다.
하지만 1기 후임인 김인복이와 난 아무리 아파도 절룩 거리질 않았다.
기압 빠진 행동 이기 때문이다.
무릎엔 압박붕대를 차고 있고 허리에 대형 파스를 붙이고 있다...........
두달의 걸친 지옥 같은 훈련후 나에게 남는건 휴가증 한장과
관절염.허리부상 밖에 안 남았다.
그러나 얻은점이 더 많았다.
정신력을 배운것이다.
그 정신력을 상기 하면서 오늘 하루도 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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