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631기 김보철

나의 실록 600자-29

머린코341(mc341) 2017. 5. 22. 02:54

나의 실록 600자-29


12키로 무장구보를 마친 그날 포상휴가를 떠난다.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대신 나에게 주어진 것은 포상휴가증 한장........
2연대장님께 휴가 신고를 한뒤 해병뻐스에 올라 탄다.
드디어 2연대 연본 앞에서 북문으로 향하기 위해 차량이 출발한다.
부.............웅


좌측엔 도솔관과 서문이 보이며 우측엔 동양최대라 일컫는 해병 1사단
연병장이 보이며 아직 마치지 않은 종목이 있는지라 응원의 함성이 내 귓전에 스쳐온다.
1사단 사단 연병장........
예전 군장 검열은 사단 과 2훈단 사이에 있는 큰 공터 에서 실시 되거나 사단 본부 잔듸 연병장
혹은 해군 헬기장 에서 실시 됐으나
90년도 부터 모든 사단 군장 검열이라든지 행사가 이곳 에서 실시 됐다.
이 사단 연병장을 건설 하기 위해 피땀 어린 작업의 연속 이었다.
해병대 500자 후반 기수에서  640-650자 기수 포항 1 사단에 근무 했던 해병들이 만들어 완성 시킨
연병장이다.
야외 훈련시 상급부대 지시로 해송이라는 소나무 를 켄 기억이 있다.
야외 훈련 나가면 훈련이 아니라 해송 케는 일이 대부분인것으로 기억된다.
사단 연병장 주위에 심기 위해서다.
그 기억중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포항에 보면 인덕산 이란 곳이 있다.
지금은 산이 많이 절개되 고도가 낮아 있다.
메스컴에서 한창 떠들었던 산이다.
포항공항에 착륙 하는 비행기의 안전사고에 큰 걸림돌인 산이었다.
우리 6중대는 인덕산 꼭대기에 가서 아름들이 소나무를 옮겨 사단 연병장에 심는 임무가 주어졌다.
저번주는 5중대 다음주는 7중대 이런식으로 로테이션 방식으로 돌아 가며 소나무를 옮겼는데
작업을 마치고 우리 중대는 어느때 처럼 사재군가를 부르며 트럭을 타고 인덕산을 내려 가고 있었다.
그때가 오후 4시쯤 됐다.
 

그때 였다.
산 중턱쯤 내려 오고 있을때 후방 100미터 쯤에 해병트럭 한대가 언덕에서 그대로 굴렀다.
완전 차가 180도 전복돼 있었다.
운전병은 차에서 그대로 뛰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같이 작업을 나갔던 포항 해병 1사단 포병 연대 차량 이었다.
포 몇 대대 인지는 까먹었다.
다만 좌측 가슴에 직 사각형의 빨간 비표가 달려 있어 포병 이라는 것을 알았다,
차량 위에는 20여명의 포병들이 타고 있었으며 아름들이 소나무 두개를 실고 있었다.
우리 6중대 중대장님이신 저팔개 김삼영 중대장님
빨리 가서 포병 애들 구하라는 명령과 함께
우리 중대원들은 쏜쌀같이 산 위로 뛰어갔다.
아마 칼 루이스 보다 더 빨랐다.
총알 이었다.
난 선임 몇분과 먼저 도착했다.
그 광경..............
운전병은 어찌 할줄 몰라 얼굴이 사색이 되 있었고
트럭 과 나무 밑에 깔린 포병 연대 해병들.........
난 당시 전부 죽었다 생각 했다.
 

트럭이 180도 뒤집혀 있고 뒤집힌 트럭 밑에 아름들이 소나무와 20여명의 해병들이 깔려

신음 하고 있었으며 흙과 피가 뒤섞여 있었다.
우선 의식이 있는 해병들을 흔들어 깨우고 워카와 작업복 상의를 벋기고
숨쉴수 있도록 기도를 확보 하고
가지고 온 수통으로 얼굴에 물을 뿌리며 몇명을 우선 구했다.
다만 차량 밑에 깔린 해병들은 어떻게 할수 없었다.
뒤에 도착한 중대원들과 같이 차량을 들어 올렸다.


"하나.둘 셋"


힘을 모아 트럭을 밀어 올리니 그 트럭 밑에 있던 해병들은 거의 기절 한 상태였다.
소나무 밑에 깔려 흙 범벅이 돼 신음 하고 있는 한 해병에게 괞찮냐고 하면서 끌어 내려고 하니


"난 괞찮으니 다른 사람 부터 구해 주십시요"


하더라 . 참 감동적인 장면 이었다.
그 해병은 결국 맨 나중에 소나무를 걷어 올려 맨 마지막에 구조 됐다.
그 다음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난  제일 의식이 없는 해병을 질질 끌고 나왔다.
우선 워카를 벗기고 작업복 상의를 푸는데 계급이 소령 이었다.
가슴에 계급장이 없어 이상 하다 싶었다.
코에는 피가 흐르고 있어 내 런링으로 피를 딱아 주고 수통의 물로 얼굴을 적셔 주니 깨어 나는지라........
사태를 어느정도 수습 하자 그때서야 연락을 받은 산 정상의 포병들이
달려 내려 오고 있었다.
정말 아찔한 순간 이었다.
당시 몇명만 다치고 나머지 해병들은 다 살아 남았다.
기적과 같은 일을 난 내 눈으로 목격 했다,
당시 우리 중대가 없었더라면 아니 조금만 늦게 도착 했더라면 큰 불상사가 일어 날뻔 했다
그냥 기적 이었다,


그 만치 고생 하면서 만든 연병장이 현재의 해병 1사단 연병장이다.
당시 소나무는 오늘도 바람에 휘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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