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최강해병대(3-4. 용기)
제 3장
基本土臺
제 4절-----용 기
두려움을 모르는 자보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임무를 완수하는 자가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이다.
- 웰 링 턴 -
용기는 잘못 이해 되기가 쉽다.
용기는 다리가 저려오는 것을 참아내고, 공포심을 이겨내고, 도망가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용기란 무엇을 두려워하고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벙커를 지키는 보병은 전투진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적의 총탄을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제대로 전투를 수행하지 못하거나 또는 항공기 조종사가 비행중 기체의 유압이 떨어져 항공기가 추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이미 그러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원은 전장에서 전투를 회피함으로써 해병대원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
해병대원은 생명을 잃는 것 보다 명예를 잃는 것을 두려워 한다.
해병대원은 생명은 보존하지 못할지라도 명예는 항상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해병대원이 갖는 힘은 대부분 이와같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죽음이 아닌 불명예를 두려워하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임무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임무를 회피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용기인 것이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들은 쉴새없이 솟구치는 걱정과 무관하게 항상 평온함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원은 신체적 부상과 죽음에 대한 인간본능적 공포를 극복하고 다음 세가지 이유로 전투에 임한다.
첫째 ; 우리는 최고 수준으로 훈련되어 있으며 최고의 지휘자(관)를 두고 있다.
둘째 ; 우리는 최후의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셋째 ; 우리는 서로를 위해 싸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必生卽死, 必死卽生 (살려고 하는 자 반드시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자는 반드시 살 것이다)" 이라는 말로써 참다운 용기의 발현방법을 간파했던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군인의 용기는 가장 숭고한 용기이며, 이것이 바로 해병대 구성원이 가져야 할 정신적 요소인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도솔산지구 전투에서 선배 해병대원들이 보여준 용기와 용맹성은 '무적 해병대'라는 찬란한 해병대 전통수립과 함께 해병대원 모두의 가슴속 깊은 곳에 각인 되어 왔다.
도솔산지구 전투는 최초 미 해병대 1사단의 5연대가 담당하였으나 몇번에 걸친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51년 6월 4일 이른 아침 우리 해병대와 임무를 교대 하였다.
도솔산 지역은 일찍이 유엔군과 우리 국군(육군)이 한 번도 진격하지 못한 곳이었고, 적 또한 난공불락임을 호언하던 중동부의 천연적인 요새로서 양양과 철원을 3각의 지변으로 하고 원산을 정점으로 하는 철의 3각지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총공격에 앞서 1연대장 김대식 대령은 "어떠한 난관이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자만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훈시를 하였다.
6월 4일 오전 8시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Kansas Line 내의 1번 목표에서 16번 목표까지를 점령한 후 6월 13일부터 Banger Line 의 17번 목표에서 24번 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제2단계 작전을 개시하여 6월 20일 도솔산 일대의 24번 목표중에서 최종적으로 미해병대 제7연대로 부터 24번 목표를 인수 확보함으로써 도솔산지구 전투는 我 해병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전투에서 제1단계 Kansas Line 확보작전시 제1대대 2중대 3소대장 이었던 이근식 소위가 보여준 최일선 소대장의 용기는 해병대 전통수립의 유산중의 하나이다.
3소대장 이소위에게 탈취토록 명령한 4번목표 지역은 마치 낙타등을 연상케하는 능선지형으로, 상하 굴곡이 심하고 45도 이상의 급경사 및 절벽으로 형성되어 겨우 1개분대 밖에 산개할 수 없는, 공자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이었다.
수차에 걸쳐 목표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중대장의 공격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3소대장 이소위는 소대원을 집합시켜 놓고 재차 목표공격을 시도하였으나 반응이 없었다.
이소위는 자신이 직접 목표공격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인접소대장인 1소대장에게 지원사격을 부탁한후, 안전핀을 뺀 수류탄 2발을 양손에 들고 나머지 수류탄 2발은 탄띠에 걸고서 목표를 향해 포복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전방에서 갑자기 적 1명이 불쑥 일어나더니 이 소위를 향해 집중사격을 하려고 할 때, 소대장의 목표 접근을 숨을 죽이고 주시하고 있던 소대원들이 즉각적으로 사격하여 사살하자 화를 면할수 있었다.
이에 이소위는 용기 백배하여 목표 정상 접근에 성공하였다.
일어서서 수류탄 투척을 할까말까 망설이는데 뒤에서 소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과감하게 수류탄을 투척할 수 있었다.
수류탄 4발을 투척한후 소대원들이 있는 곳까지 돌아오는데 얼마나 빨리 내려왔는지 불과 몇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소대장님 만세! 3소대 만세!"를 외치던 소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소대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3소대는 중대본부가 있는 곳으로 집결하였다.
소대원들은 계속되는 전투로 인해 머리깎을 시간조차 없어 머리는 마치 여자의 단발머리 만큼이나 길었다.
세끼를 굶은후 인지라 밥은 개인별로 철모에 가득하였고 부식으로는 쇠고기 덩어리 1개와 소금이 고작이었다.
오랜만에 배를 채운 소대원들은 무척이나 즐거워하였다.
중대장으로부터 다시 공격명령이 하달되었다. 소대원을 집합시켜보니 겨우 22명 뿐이었다.
소대원들의 표정은 무표정한 처참한 몰골이었다.
이소위는 이제 죽는 시간이 가까워 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면서 살고싶다는 생각도, 그렇다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는 그야말로 순수함 그 자체였다.
소대원들 앞에선 이 소위는 "우리의 동료가 절반이 없어졌다. 이제 우리가 물러설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저 목표를 점령해서 사라져간 소대원들의 원수를 갚는것"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당부하고 서로 악수를 나눈뒤 소총과 1인당 수류탄 4발씩을 휴대하고 소대장은 추가로 EE-8 전화기를 목에 걸고, 야전선 드럼을 등에 메고, 휴대용 무전기를 손에 들고서 공격대기 지점으로 향했다.
목표 정상의 돌격선까지 진출한 3소대장은 당시 해병학교에서 배운대로 돌격전에 '돌격 앞으로!'라는 구령과 함께 소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목표로 돌진 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소대! 돌격앞으로'라고 외쳤다. 그
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소대장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냉정함을 잃지 않은 3소대장은 선두에서 소대를 지휘하여 적에 대한 적에 대한 증오심으로 대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내리치면서 피와 적 시체로 뒤덮인 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나가자 해병대' 군가소리와 함께 만세 소리가 들려왔다.
6월 24일 오후 2시에 미해병대 통신병 다이아부가 도솔산고지를 점령한 한국 해병대에 감격하여 한국해병대 작전 연락장교 박원석 중위를 찾아와 한국해병대를 동경하며 한국 해병대 전속을 호소해온 적도 있다.
도솔산을 점령한 해병대원들의 투혼은 한국전쟁 당시 국민들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무수한 시를 남긴 것만 보아도 해병대는 신화를 남긴 미증유의 용맹성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던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미해병대 1사단장 Gerald C.Thomas 소장은 한국 해병대 제1연대장 김대식 대령에게 어려운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한국 해병대의 용기를 찬양하고자 다음과 같은 축하 전문을 보냈다.
"강하게 저항하는 적군을 무찔러 Kansas선 안에 있는 목표 지점을 여러분들이 탈취한 것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용기와 인내의 발로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들의 용감한 공격적인 행동은 우리들이 대한민국 해병대를 격찬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충분히 입증하는 바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추진된 미국군의 3군 통합에 관한 청문회는 미해병대에게 전장이 아닌 또다른 상황에서의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해병대의 도덕적 용기를 미해병대의 Edson 준장은 보여 주었다.
각 군종간 첨예한 의견대립 과정에서 명예훈장 및 해군 철십자 훈장을 2회 수상한 Edson 준장은 자신의 생각을 모든 자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쏟아질 비판으로부터 해병대를 보호할 목적으로 그는 자진해서 퇴역해 버렸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고자 군문을 떠난 것이다.
Edson 준장은 누구나 어떠한 것을 추구할 용기만 있다면 선택은 바로 그 자신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군 통합을 저지하기 위한 모든 노력중 Edson 준장의 해병대에 대한 열정적 노력이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고 후일 많은 장교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전투간 지휘는 평상시 지휘와는 상당부분 다르다.
평상시 부대에서는 누구나 지시를 할 수 있고 또 복종하도록 할 수 있다. 복종하는데 장애물이 있을 수 없다.
영창, 감봉, 그리고 강등 이 모든 것들이 명령 계통과 군기를 유지 하는데 필요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전시에 명령이행은 일촉즉발의 위험을 수반함은 물론 죽음에 이르는 명령이 될 수도 있다.
지휘관은 부하들에게 저 명령이 왜 나에게 하달 되었고 어떻게 시행 해야 하는가를 알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해병대원들은 무엇보다도 명령을 하달하는 지휘관은 그 명령을 받는 부하가 누구이며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사전에 알고 명령과 지시를 하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고도의 훈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해병대원들의 임무수행은 지휘자(관)의 솔선수범과 용기를 포함하는 리더쉽에 의해 결정된다.
나폴레옹은 "무능한 지휘관은 있어도 무능한 부대는 없다."고 하였다.
한편 통수강령에서는 "지휘관은 부대의 중추이며 또한 원동력이다.
자고로 군의 승패는 그 군대보다 오히려 지휘관에게 달린바 크다."라고 말하고 있다.
능력있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진 지휘관에 의해 지휘되는 부대는 지휘관의 솔선수범과 용기 그리고 자신감으로 인해 그가 지휘하는 부대 또한 주어진 어떠한 임무도 완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게 되며, 지휘관은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해병대 사령관 글 > 22대사령관 전도봉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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