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병대 하후생이다. (1) 입대
① 이 이야기는 1995년 8월부터 1996년 1월까지의 해병대 하사관 236기 24주의 실제 이야기이며 이로 인해 등장하는 동기생들의 실명은 성을 제외하고는 00으로 처리를 하였습니다.
② 군사훈련에 있어서는 세부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기록했습니다.
③ 내용 중 육군(특전사, 육군 하사관 학교 관계자분들)과 해군 특수전여단의 교육생(41차)들이 등장을 하지만 타군을 폄화 하는 내용이 아님을 미리 공지합니다.
④ 글에서의 모든 용어는 95년 당시 기준으로 표현 합니다. 끝으로 저의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며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란 곳 중 처음 시작하는 훈련소 이야기이기에 많은 성원 바랍니다.
⑤전역 후 고향인 울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던 고 장의태는 인근 바다에서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고 그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이 글을 동기 고 장의태에게 바친다.
-해병대 하사관 236기 원태운(아이언맨)
글을 시작하며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란 곳을 다녀온다 그 기간이 길든 짧든 말이다. 또한 군대를 다녀왔던 다녀오지 않았던 남자들은 누구나 군대 이야기를 한다. 싫은 추억이든 좋은 추억이든 말이다.
앞으로 내가 여기에 올릴 이야기들은 내가 처음 간 군대 란 곳의 이야기이며 나와 같이 하사관 교육 24주간 (95년 8월~96년 1월)을 지낸 나의 동기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그러거니와 좋은 추억도 나쁜 추억도 있다.
군대
작은 아버님이 직업 군인 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해병부대를 들락달락 거렸지만 오늘 만큼은 또다른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완 다른 목적으로 왔기 때문일까?
담담하게 난 포항 서문을 들어섰다. 이미 많은 입대 지원자들과 가족들로 입구는 대만원 이였다. 이들이 내 동기가 되는구나 피식 웃으며 한쪽 귀퉁이에 난 자리를 잡고 담배 한 대를 물어 피웠다. 내가 그리도 동경하고 가고 싶었던 해병대 휴~ 잘할 수 있을는지...
입대 전 고3 때
내가 해병대에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교 시절부터이다. 물론 작은 아버님이 추천을 하셨거나 해병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내심 관심이 쏠렸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뭐라 말할 수 없는 믿음직한 삼촌의 모습을 보면서 ...
그 시절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그 프로를 통해 나는 군인들의 모습을 조금이 나마 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전적으로 TV 와 휴가 나온 주위형들을 통해 군인들을 지켜보는 수준이였으니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해병대를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많은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그 첫 번째 이유 중에 하나는 아버지의 동생인 작은 아버지가(삼촌) 해병대 입대 후 생활과 월남에서의 생활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곳 생활이 쉽지 않다는걸 부모님 또한 아시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가 해병대 가면 성질 버린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해병대 지원을 했고 합격 발표가 있던 날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리곤 합격이라는 말에 난 혼자 조용히 방구석에서 환호성을 질렸다 얼마나 기뻤던지....
입영 날 난 부모님에게 군대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괜스레 걱정할까 하는 나의 생각 때문이였다.
입대일
"어머니 우철(친구) 이 집에 갔다 올게요"
이게 마지막 인사였다. 그리곤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서 포항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곤 내가 바라던 이곳 포항에 나는 와 있다 -
몇 시간이 흘렸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담배를 끄고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왠 정복을 입은 군인들의 무리가 보였다. 이들은 지원자들에게 상당히 친절하게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빨리 오세요"
"자 지원자분들 줄 서세요"
정복 차림의 그 군인들의 지시에 의해 지원자들은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애인과 가족들과 작별하는 지원자들도 있었다.
그리곤 부모님과 가족 애인 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라고 말했고 우리는 10분 뒤에 있을 그 상황을 모른 채 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난 가족이 없었지만(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가족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 들과 애인들 또한 있었다. 그런 가족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정복을 입은 그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줄을 맞춰 어디론가 이동을 했다. 아직 군인이 아닌 우리들은 이동 간에 서로 간에 인사를 하고 피식 거리며 어느 정도는 소란스럽게 했다.
이동한지 10분이 되었을까 맨 뒷줄이 코너를 도는 마지막 순간
"야 이 시발 놈들 다 앉아"
이게 뭐란 말인가 그 친절하게만 보이던 군인들이 갑자기 돌변하는 것이었다.
지원자들은 어리둥절하기 시작했다
"뭐야 앉아란 말이야 새끼들아~~!"
"개새끼들 서문을 들어올 때는 니들 맘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니들 맘대로 못 나간다 알겠어~!"
우리는 앉아 일어서를 반복하며 오리걸음에 한참을 이동했다.
어느 정도 왔을 때 위를 보니 "해병대 장래는 이곳에서 시작된다"라는 큰 현판이 보였다. 이곳이구나 라고 생각이 되었을 때 그 정복 차림의 군인들은 지원자들은 한층 더 내몰았다.
오리걸음을 하며 한참을 이동한 그곳은 2층 높이의 건물이었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가 24주 동안 생활하게 될 하사관 교육대대 건물 이란다.
곧바로 하사관 교육대대 앞의 승파관 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안은 우리를 인솔한 정복 차림의 군인과는 다르게 칼같이 다름질한 전투복과 눈이 보일 듯 말 듯 한 백하이바 를 쓴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우리의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고는
"개새끼들 뭘 보나 눈 밑으로 까~!"
처음 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쥐꼬리도 없는 놈들이었다. 지원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일제히 시선을 땅으로 꼬라박았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우리들은 텅 빈 체육관에 줄을 맞춰 섰고 그중에서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교관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해병대 하사관 236기 지원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소정의 가입소 기간을 거쳐 해병대 하사관 교육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전에 몇 가지 절차를..."
우리는 한 교관에 의해 가입소 기간에 있을 여러 가지 일정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
가입소 기간의 안내가 끝나자 또 다른 교관이 단상에 올라
"사회에서 각종 이권단체 운동권 조직폭력단체에 가담했던 자들은 즉시 나오도록"
지원자들은 서로들의 얼굴만을 볼 뿐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교관은 지원자들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금
"조사하면 다나와 나중에 걸려서 귀향 조치 되는 경우도 있어니까 나오랄 때 나올 수 있도록"
이 말이 떨어지자 주츰주츰 하더니 열대명이 눈치를 보며 단상으로 향했다. 교관들은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메모지에 적었다.
소정의 절차가 끝나자 우리는 저녁식사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본 군대 밥이라 어느 정도는 익숙해 있었지만 사회에서의 맛과 같으랴.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는 하사관 교육대대에 각자 배치받은 내무실로 들어 같다. 내무실은 2층 침상으로 되어 있는데 70-80명가량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의 동작이 맘에 안 들었는지 교관들은 다그쳤다.
간단히 짐을 정리한 후 우리는 지시에 따라 하사관 교육대 대 병사 앞에 집합을 했다. 그리곤 오후에 체육관에서 교관에게 모두 반납한 담배를 하나하나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리곤 "이것이 여러분들이 마지막으로 태우는 담배 일 것이다"
그날 우리는 순검 이라는 것을 치른 뒤 잠을 이루었다. 기대와 설렘 두려움을 배게 삼아...
●1995년 8월 2일 해병대 교육훈련단 입교
-6,8월 입대자 동시 입대 기수/4개월 만에 모집된 기수(해병대 부사관은 2개월에 한기수) 140여명
●1995년 8월 3일 ~ 5일 가입소 기간 /40여 명 불합격 판정
●1995년 8월 7일 ~ 9월 30일 기본반 8주 교육 수료 ?
-특과 동기들은 교육 수료 후 후반기 교육으로 인한 타군 위탁교육
●1995년 10월 1일 ~ 12월 8일 보병 특기반 10주 교육 및 하사 임용식
-235기 선배 1명 합류
-탈영 3명
●1995년 12월 9일 ~ 12월 13일 임용 휴가 실시
●1995년 12월 14일 ~ 1996년 1월 16일 하사관 초등교육 6주 수료 및 하사 임관식
-탈영 미수 1명
-1명 폐렴으로 인한 유급 조치
-235기 선배 1명 합류
-230기 선배 1명 합류
●1996년 1월 17일 ~ 실무
특과 00명 (상장, 포병, 공병 등)
보병 00명 (수색 00명 포함)
전역 후 고향인 울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던 고 장의태는 인근 바다에서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고 그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이 글을 동기 고 장의태에게 바친다.
[아이언맨 블로그]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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