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 534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7회)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7회) “ 金然翔장군은 최근 일련의 비자금사건 그리고 12.12와 5.18사건의 검찰 재수사 등과 관련, 현역 군인들의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金장군은 군대는 국가와 더불어 영원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비록 군이 정치..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3) - 고난의 야간 포위 돌파 장정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3) - 고난의 야간 포위 돌파 장정 그런 기념비적인 승리에 악운이 따랐다. 우리 해병대의 좌측방인 화천군 사창리 일대를 담당하던 국군 6사단 전선이 중공군에 돌파 당해 우리는 하루아침에 중공군에 포위당하게 됐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미 해병 1사단의..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2) - 화천지구 전투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2) - 화천지구 전투 영월지구 수복 임무를 수행한 해병 1연대는 춘천으로 이동해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큰 전공을 세운 데 대한 ‘보너스’였다. 휴식이 끝나고 1951년 4월 8일 휴식이 끝나고 9일부터 '캔사스 라인(Kansas Line)'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라인은 ..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6회)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6회) “ 金然翔장군은 과거에 대한 회상을 꺼린다. 평생 군에 몸을 담았고 전쟁을치른 기간만 해도 7년이기 때문에 숱한 사람이 죽어간 과거사를 되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덧없는 일이라고 金장군은 말한다. 전쟁 얘기를 하다보면 객관성을 잃..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5회)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5회) “ 지난 67년 2월14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월남의 ‘짜빈동전투’의 한국군전과는 실로 대단했다. 베트콩을 포함한 월맹군 정규군의 전사자는 모두253명.얼핏 보아도 믿어지지 않을 대단한 전과였다. 아군은 15명이 전사했다. 원래 쌍방..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4회)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4회) “ 얼마전 서울시내 모처에서 해군. 해병대 예비역장성들이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이 모임에 물론 金然翔장군도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시국문제쪽으로 옮겨졌다. 최근의 비자금사건과 12.12 5.18처리 등 일..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1) - 가리산 야간공격 전투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1) - 가리산 야간공격 전투 한국 해병대와 우군의 압박에 밀린 인민군은 1951년 3월 11일 야음을 틈타 지금의 영동고속도로 북쪽으로 퇴각했다. 이로써 영월지구 작전은 2개월도 못 돼 막을 내렸다. 용평스키장 마을인 평창군 도암면 용산리까지 진출했던 해병 1..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0) - 영월 ·정선·평창 지구 전투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30) - 영월 ·정선·평창 지구 전투 유재흥 육군3군단장이 찾아 달라는 고지는 영월읍에 있는 봉래산이었다. 우리 대대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작전에 들어갔다. 1951년 1월 19일 저녁 무렵 작전 개시에 앞서 우리 1대대 장병들은 본때를 한번 보여주자고 ..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29) - 전장으로 재출동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29) - 전장으로 재출동 새로 탄생한 해병대 제1연대 제1대대 지휘관으로서 나는 바짝 긴장했다. 낮에는 훈련하고 밤에는 전투교범을 연구하는 ‘주경야독’ 생활이었다. 12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지상전투에 투입될 날을 대비하려면 촌음도 헛되이 쓸 새가 없..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3회)-3

장군의 비망록 해병사관 1기생 김연상 장군편(3회)-3 포병장교로서 첫 부임한 곳은 강원도 화천일대였다. 미해병포대와 같이 근무하게 됐다. 그러나 적 포병공격이 만만치 않아 춘천으로 곧 후퇴했다. 계속되는 金장군의 회고. "...그때 포사격량은 엄청났다. 얼마나 쐈는지 귀가 먹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