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14 - 지휘관

머린코341(mc341) 2015. 7. 22. 19:04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14 - 지휘관

 


연일 계속 내리던 비도 오늘 아침에는 잠시 개이는 모양이었다. 모래 구덩이 빗물 속에서 나와 햇볕에 구릿빛 육신을 그슬렸다.


어제는 4개월 동안 생사 고락을 같이 했던 중대장(문수장 대위)이 후송을 간 날이었다. 지휘관이 훌륭해야 그 부대가 사기가 높아진다는 말처럼 문수장 중대장은 중대를 떠나는 그 날까지 지휘관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대장과 마지막이 될 것만 같은 기분으로 악수를 나눌 때는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이번 작전이 시작되고 난 며칠 뒤 항공 부비트랩의 폭발로 한쪽 귀 고막이 터지고 몸 전신에 심한 타격을 받는 부상을 입고도 연일 계속되는 작전을 한달 가까이 수행해온 중대장이었다. 수차에 걸쳐 상급 부대에서 후송을 종용해도 이를 거부해 오던 중대장이 결국 더 심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해 후송을 가게 된 것이다.
 
"끝까지 싸워 다시 웃으면서 만나자."
 
문수장 중대장은 눈물을 흘리며 떠났고 곧 새로운 중대장(서윤석 대위)이 부임해 왔다. 새로온 중대장은 "여러분과 같이 중대에서 생사 고락을 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어떤 상황이든 당황하지 않고 귀관들과 상의할 것이며 지휘관으로서 비겁한 행동을 보이지 않겠다."고 인사말을 했다. 헬리콥터 편으로 실려온 맥주를 마시며 지난날의 작전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주고받았다.


이번에 새로 부임해 온 중대장은 원래 여단 본부에서 근무해 왔었는데 3중대 중대장이 공석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단 본부에 건의해서 우리 중대의 사기를 한층 더 높이겠다고 지원해서 왔다고 했다. 주간 매복대가 상황 없이 무사히 귀대했다는 보고가 h-33 무전기에서 흘러나왔고 야간 매복대가 또 출발을 했다.



대대 본부로부터 중대장에게 내려진 새로운 작전 명령은 밀림으로 우거진 30고지 하단부에 A마을(AN THINH<1>)과 B마을(AN THINH<2>)의 탐색이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중대는 06:30분을 출발 시간으로 '체크 포인트 A'를 지났다.
 
화기 소대장과 나 사이에 중대장이 위치한 채 계속 A마을을 향해 기동했고 이번의 기동로도 수십번 왕래했던 지역이라 V.C들의 부비트랩이나 함정이 있지 않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계속 기동했다. 언제 땀이 났는지 배낭을 지고 있는 등은 작업복이 착 달라붙어 끈적거리는 가운데 30고지와 A마을이 보이는 곳까지 진출했다.

 

중대는 그곳에서 임시 배치하여 경계에 들어간 다음 30고지와 그 하단부에 위치한 A마을 일대를 숲속에서 은폐한 채 주의 깊게 쌍안경으로 하나하나 관측했다.V.C의 소수 병력이 숲과 숲사이로 분주히 다니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고 중대는 세부적인 작전계획을 짠 다음 C-레이션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중대는 2열 종대로 30고지를 향해 긴장된 마음으로 주위 일대를 경계하면서 기동했다.


헬리콥터로 보급물이 도착하자, 소대별로 C-레이션과 실탄을 나눠주고 있다.


30고지와 A마을 일대는 포병대대의 포사격으로 계속되는 폭발음과 함께 곳곳이 쑥밭이 되고 있었다.


"꽝- 꽝-꽈과광-"


포사격이 멈추어지자 1개소대는 30고지를 차단해 가며 좌회전하여 기동하고 2개 소대는 우회전하여 A마을로 진출했다. 계속하여 항공 관측을 하고 있던 L-19정찰기는 V.C가 있는 곳마다 붉은 신호탄을 투하 우리들에게 V.C들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A마을의 주위는 2중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 잠시 기동을 멈추고 부비트랩과 철조망을 제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을 주위를 서서히 포위하면서 철조망을 너머 마을로 진입을 하니 주위는 부비트랩과 지뢰투성이었다. 쌍안경으로 보이던 V.C들도 우리가 마을에 진입하자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아 탐색조를 3개분대로 편성하여 집집마다 동굴마다 구석구석 탐색하기 시작했다. V.C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은밀한 곳에서 우리를 조롱이라도 하듯 총구를 겨누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L-19 정찰기
 

하늘의 독수리처럼 공중을 천천히 선회하며 관측을 하던 L-19 정찰기에서 V.C들이 숲을 벗어나 B마을로 모이고 있다는 무전 연락을 해 왔다. A마을 일대는 포병대대 포사격에 의해 전신이 갈갈이 찢긴 채 죽은 3구의 V.C시체 밖에 없었다. 더 이상 V.C의 흔적을 찾지 못한 중대는 2목표인 B마을 향해 진출하기로 했다. B마을로 진입하자면 엄폐물이 거의 없는 개활지를 통과해야 했고 중대는 30고지 하단부로 우회해서 공격하기로 하고 30고지 하단부로 이동했다. 기동로 주위로는 엄폐물이란 찾아 볼 수 없고 군데군데 작은 싸리나무만 서 있을 뿐이었다.
 
"형편없는 V.C들이군. 꽁무니만 빼니 말이야."
 
중대장이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중대장님이 새로 오신 줄 알고 V.C들도 인사가 있을 법 한데 아마 이놈들이 겁을 먹은 모양이죠"


중대장에게 한 마디 했다. 선두 소대장의 첨병이 군데군데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어 제거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면서 자부 멈추는 바람에 중대의 기동도 자연히 자주 멈추어 졌고 그렇게 몇 번을 멈추고 되풀이하던 중 갑자기 멈추어진 중대를 향해 V.C의; 자동화기 사격이 집중적으로 퍼부어 왔다. V.C의 사격은 바로 중대 본부를 향해 정확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주위에 군데군데 서 있는 싸리나무를 은폐 삼아 재 빨리 엎드렸다.



  "딱쿵- 딱쿵- 따다다- 따다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소나기처럼 중대 지휘 본부를 향해 총알이 날아들었다. 중대 본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야만 했고 귓전을 스치며 날아드는 실탄들이 비오듯 쏟아졌지만 피할 곳이 없었고 중대 지휘 본부는 말 그대로 손끝 하나 발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V.C들의 집중적인 사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자기들의 공격 대상이 지휘부인 것을 확실히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가까운 거리에 엄폐할 곳은 보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타켓을 세워두고 조준 사격을 하는 훈련소의 사격장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V.C들의 사격은 몸 구석구석을 노리고 에워싸며 정확히 줄을 이어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도 없었고 움직여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V.C들의 조준 사격을 받는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진짜 벌집이 될 판이었다.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조금이라도 엄폐 할만한 곳이 보이면 몇 발의 총알이 몸에 박히더라도 V.C들의 목표물이 된 현 위치를 떠나야만 했다. 숱한 교전 속에서 사격을 받아 보았지만 이렇게 숨 쉴 틈 없이 정확히 쏘아대는 사격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통신병, 위생하사관, 중대전령, 통신하사관, 화기소대장, 등 중대 본부 요원 전부가 나와 똑같은 상황에 꼼짝 못하고 엎드려 당하고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옆에 누워있던 위생병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중대 전령의 작업복에서도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중대장을 찾았다. 5m정도 떨어져있는 중대장의 작업복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통신병 소대에 연락하여 지원을 요청하라."



소리치며 통신병을 보니 통신병도 한방 맞은 모양인지 고통스러워하면서 피 나는 곳을 움켜쥐고 뒹굴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 거든 누구든지 지원사격을 부탁한다. 중대 본부에 사상자가 많다. 소대에 연락좀 해라."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질렀다. 중대장을 보니 피가 계속 흘러 내려 주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중대장은 쓰러 진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위생하사관! 중대장님이 다쳤다. 치료하라."
 
소리를 쳤지만 위생하사관도 나와 똑 같은 상황에 부딪쳐 자기 몸도 돌볼 겨를 없이 헤매고 있었다. 빗발치듯 날아드는 총알은 조금도 반격할 여유와 움직일 틈을 주지 않으면서 옷깃을 뚫고 스쳐 지나갔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턱 밑이 뜨끔해 손을 대니 피가 묻어 나왔다.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하마터면 턱이 날아갈 뻔했다.
 
V.C들이 쏘아대는 사격은 여전히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날아들었다. 숨이 꽉꽉 막혀왔다. 날아온 실탄에 맞아 은폐해 있던 싸리나무가 쉴 사이 없이 '뚝- 뚝- '하고 꺾어졌다. 중대장과의 거리는 불과 5m 이었지만 5m 간격 사이에는 수십 수백 발의 총알이 날아와 먼지를 일으키며 꽂히고 있었다. 주위의 싸리나무는 계속하여 하나 둘 꺾어지고 있었고, 오- 신이여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어차피 현 위치에서 부상을 입거나 죽을 바에야 중대장이 있는 쪽으로 가다가 부상을 입거나 죽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상황 판단이 들었다.
 
다만 아직까지 재수가 좋아 정통으로 맞지 않았을 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따가웠다. 그러나 더 이상 중대장이 피를 계속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고 중대장이 더 다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순간 몸이 굳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소이동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중대장이 있는 곳까지 지상  최대의 빠른 동작으로 다가갔다. 소나기 같은 사격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몸 구석구석을 노리고 더욱 세차게 날아들었다.


중대장이 위치한 곳에서 1m정도 뒤에 싸리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라도 은폐물로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동시에 중대장을 안고 싸리나무 뒤까지 뒹굴었다. 싸리나무가 무슨 방패가 될 것이랴 마는 그래도 마음은 한결 덜했다. 중대장의 상처 난 부분을 찾아보니 오른쪽 다리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중대장의 작업복 바지를 찢었다. 세 발의 관통상을 입고 있었다. 압박 붕대로 세 곳을 칭칭 동여매자 겨우 피가 흐르던 것이 멈췄다.
 
"다른 곳은 괜찮습니까?"
"딴 곳은 이상 없다. 우선 대대 본부에 현 상황을 보고하고 적의 사격을 저지 시켜야 한다. 각 소대에 연락하여 적의 사격을 저지시키고 난 다음 V.C 놈들을 한 놈도 빼 놓지 말고 소탕해야한다. 내 걱정은 말고 부탁한다. 작전하사관."
 
중대장은 침통하게 명령을 내렸다.


"알았습니다."



통신기 옆으로 다시 몸을 움직이려하는데 화기 소대장이 비오듯 날아오는 총탄도 아랑곳하지 않고 각 소대에 지원사격 명령을 내리고 60m/m 박격포 반장에게 V.C가 위치한 곳곳을 지도를 보면서 포사격을 지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60m/m박격포탄이 적의 자동화기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계속 폭음을 내며 터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니 화기 소대장이 포병 대대에 요청한 C.V.T탄(지상 20미터 정도 상공에서 폭발하는 폭탄)이 적의 화집점 일대에 날아가 계속 폭음과 함께 하늘에 검은 연기를 내면서 터지기 시작했다. 순간 비오듯 날아오던 적의 사격이 잠시 주춤했고 중대는 포병대대의 C.V.T탄 사격이 멈추어지자 화기 소대장의 지시를 받고 B마을과 사격이 날아온 지점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도주하는 V.C들을 보이는 대로 쏘아 죽였다. L-19정찰기가 붉은 신호탄으로 도주하는 V.C들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대로 과감히 돌진하여 사살했다. 죽은 놈 위에 분이 풀릴 때까지 쏘고 또 쏘았다.
 
여기 저기서 2시간 여의 V.C 소탕 작전이 끝난 뒤 V.C는 완전 전멸되었다. 사살 57명, 병기 45정, 그 외 수류탄, 실탄, 장구류 등을 다수 노획하고는 중대 본부가 조준 사격을 받았던 격전지 지점에서 약 700m되는 지점에 임시 급편방어하여 숙영지를 구축하고 후송 헬리콥터를 요청했다.
 
"중대원을 작전 지역에 두고 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모두의 건투를 빌고 다시 만날 때   까지 모두 건승하기를..." 
 
중대장의 마지막 눈물 섞인 말이었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중대장과 부상병들은 헬리콥터에 몸을 싣고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중대장을 실은 헬리콥터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허공만을 쳐다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이 멍한, 허탈한 상태였다. 툭- 하고 어깨를 치기에 돌아다보니 화기 소대장(송상태 중위)이 웃으며 다가와 앉으며
 
"뭘 생각하고 있나?"
 
난 아무 생각도 없었으며 생각나지도 않았다. 다만 소름끼치듯 날아오던 실탄들이 아직도 몸 구석구석을 쑤셔대고 있다는 착각뿐이었고 중대장이 남기고 간 선물만 손과 작업복에 검붉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중대진지 10고지 모래산 모래 위에 팔을 베고 누워 40℃의 열기를 뿜고 있는 태양을 쳐다보며 어제의 울분을 차근히 되새겨 보았다. 흥분된 마음이 다시 소용돌이 쳤다. 중대의 기동이 잠시 멈추어졌을 때 무전기(대대 전술망, 중대 전술망, 포병 전술망 등)들이 한곳에 집결되면서 V.C들에게 지휘 본부임을 노출시켰을 것이다. 공격 대상을 포착한 적은 동시에 지휘 본부를 향해 집중적인 조준 사격을 퍼부었고 엄폐는 물론 은폐할 곳도 마땅치 않은 지점에서 중대 본부는 삽시간에 당하고 만 것이다. 실수 중에도 대 실수를 했던 것이다. 허리에 차고있던 수통은 구멍이 나 버렸다. 등에 걸머졌던 군장도 벌집처럼 구멍 투성이가 되어버린,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공격을 당했던 것이다.
 
"권하사관"
 
통신 하사관인 이명수 하사가 캔 맥주를 들고 뒤에 서 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나?"
 
맥주 한 갠을 던져 주고는 옆에 털썩 앉아 이하사관은 어저께 멋진 귀국 선물을 얻었다며 구멍 뚫린 작업복과 러닝 셔츠를 보여 주었다. 실탄이 작업복과 러닝 셔츠를 뚫고 살가죽을 스치며 지나가 조금만 방향이 틀렸어도 골로 갈 뻔했다며 애들처럼 신이 나 했다.
 
"이건 분명 하늘이 나를 도운 것이야. 귀국하면 귀국 선물 1호로 이놈들을 가져 갈 거야."
 
내가 보기에도 그것은 귀국 선물 1호감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살아 돌아갔을 때의 얘기다. 턱 밑을 만져보니 아직도 따끔거리며 아팠다.


강과 늪지대도 철저히 탐색
 

중대장이 후송되고 미칠 뒤, 지루하고 지루했던 바탄강 일대 V.C 소탕 작전을 편지 56일만에 마침내 철수 명령이 내렸다. 기쁜 마음은 이를 데 없었지만 중대진지(110고지)를 처음 떠날 때의 전우 전원이 다시 중대 진지를 향해 함께 가지 못함이 마음에 걸린다. 산화한 전우들과 부상당해 후송간 전우들을 생각하면 새삼 가슴이 메었다.


청룡부대 작전중 가장 길었던 용화작전(바탄강 일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V.C를 이 잡듯이 잡아낸 소탕작전)이번 작전을 무사히 끝마치고 중대 진지를 향해 기동하고 있는 자신이 아득한 꿈결처럼 느껴졌다. 멀리 110고지의 중대 진지가 보이자 반가움이 와락 솟구쳐 왔다.
 
  -바탄강 일대 V.C들은 완전 소탕되었다.-
 
우리들의 귀대를 환영이라도 하듯 무전기에서는 V.C의 완전 소탕을 알려주었다. 늪을 지나고 개활지를 지나 110고지의 중대진지 하단부에 도착하니 대대 본부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온 대대장이 중대원들에게 담배를 권하며 한사람 한사람씩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중대진지 안 벙커에 도착하자, 배낭을 집어던지고는 침대에 누워 56일 간의 악몽 같았던 지난 작전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을 뛰면서 걸으면서 V.C의 탐색길에 나섰다. 기동중인 중대원들이 개인 거리를 확보한 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용화작전에서)
 
여단 본부는 우리 중대에게 이번 용화작전 중 많은 전과와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다면서 7일간의 다낭 해변가 휴양지로 휴양 갈 것을 지시했다. 110고지 중대 진지에서 헬리콥터 편으로 대대 본부에 도착한 뒤 L-19정찰기의 엄호를 받아 가면서 트럭에 승차하여 5번 도로를 따라 다낭 해변으로 향했다. 하늘을 날 듯 기분이 좋았고 살다 보니 이런 말도 있는가 싶었다. 꽥꽥 소리를 지르며 군가를 합창하는 가운데 우리를 실은 트럭은 계속 휴양지를 향해 내 달렸다. 도로변의 야자수는 탐스럽게 주렁주렁 야자수를 달고 있었고 벼를 탈곡하는 곳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국의 전경이 새삼스럽게 신기하게만 보였다. 언제 치열한 전투를 치렀는지 조차 잃어버린 듯 우리는 군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귀신잡는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청룡은 간다......."

 

다낭 해변가 휴양지에서(필자)
 

다낭 해변가 휴양지에 도착한 우리는 흥겨운 마음으로 맥주에 취해서 잠시나마 열대의 전선을 잊어버리고 쌓인 피로를 마음껏 풀었다. 주월사령관(채명신 장군)이 용화작전 중 바탄강 일대의 V.C와 월맹 정규군 소탕 작전에 최대의 전과를 올린 우리 중대를 극찬하고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사이공에서 다낭 휴양지까지 우리 중대의 늠름한 모습을 직접 보겠다고 방문한다는 무전 연락이 왔다.


청룡 부대의 사기를 있는 그대로 보이자는 중대장(문수장 대위. 후송간 다음 완쾌되자 중대장이 공석이라는 소식을 듣고 다음 중대장이 부임할 때까지 중대장을 맡겠다고 다시 왔다.)의 말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주월사령관이 도착하자 우리는 구릿빛 그슬린 피부와 근육, 번쩍거리는 눈동자로 절도 있게 태권도 시범을 보였으며 사령관은 연신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중대원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직책을 물으며 악수를 했다. '앞으로도 보다 나은 분투를 바란다.' 한 뒤 채명신 사령관은 맥주를 기증한 뒤 떠났다.


다낭 휴양지의 우리 중대가 위치한 해변가 막사 오른쪽으로 얼마 가지 않으면 미군들만 상대하는 미군 위안부들이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열대 전선에서 싸우는 미군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막사를 짖고 위안부들을 두어 휴양 온 미군 장병들을 상대하는 곳이었는데 '한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어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P.X에서 사 온 맥주로 휴양지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휴양지에서 가장 맛있게 먹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냉동된 쇠고기를 잘게 썬 다음 거기에 고추장과 식초를 넣어 다른 양념과 함께 맵게 버무린 쇠고기 육회였는데 맥주와 함께 먹는 그 맛이란 영원히 잊지 못할 만큼 좋았다.


일주일간의 휴양이 아쉬웠지만 중대는 다시 110고지 중대 진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로운 중대장이 부임해 왔다. 중대장(강근암 대위)은 "같이 생사 고락을 하면서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고국에 돌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서로 협력하여 지내자" 며 부임 인사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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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

 

오늘도 재판대 앞에 선다


너는 죽음!

탕~  탕~  탕~

 
너는 삶!

 
살아남은 자는

남십자성 별빛 아래서

내일의 재판을 기다린다.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