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해외 출전<1편> - 투망작전의 비극

머린코341(mc341) 2016. 10. 8. 23:08

해외 출전<1편> - 투망작전의 비극


  1967년 1월(S~l4) 청룡부대는 빈손군과 손틴군 일대에서 성탄절과 신정휴전을 이용해서 전력을 정비한 적 부대를 섬멸하기 위한 투망적선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 작전기간 중(1월 10일) 3대대는 9중대 진지로 이동시켜 놓은 대대 전방CP를 부득한 사정으로 원위치인 후방CP 쪽으로 옮기기 위해 약 4키로의 거리를 도보행군을 하던 중 굴곡진 산간(山間) 소로에서 적 매복대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아 많은 인명손실을 입었다.


  이 날 오후 2시 20분 경 돌연 행군제대의 전방에서 총성이 일어남과 동시에 약 200명의 적이 행군제대의 후미에 위치한 대대본부 쪽으로 육박해 오자 대대장 조형남 중령은 즉각 무전기로 여단본부에 상황을 보고한 다음 현장을 작전장교(진우현 소령)에게 맡겨 두고 자신은 수 명의 대원을 데리고 9중대 본부로 달려가 9중대의 증원병력을 현장으로 급파하고 여단본부에도 증원병력을 공수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러는 사이에 피격을 당하고 있던 그 현장에선 계속 사상자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후방CP 쪽에서 출동한 3소대까지 도중에서 피격을 당해 졸지에 60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특히 전사자들 중에는 대대본부 작전보좌관 조경철 대위를 비롯, 첨병소대장 김진철 소위와 3소대장 전창우 소위 및 대대 군의관 김시현 중위 등 여러 명의 장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6.25전쟁과 월남전을 통해 군의관이 전사했던 예는 해병대에서는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역습전은 일몰시간 후에 감행되었다. 역습전에 투입된 병력은 9중대 1소대(장, 김원식 소위)와 헬기로 공수된 10중대(장, 박용화 대위)의 증원병력이었다. 그러나 아군의 기습전은 산간 소로 양쪽 고지에 매복한 적이 아군 병사들이 고지로 올라갈 때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내려갈 때를 기다려 기습적인 일제사격을 가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러한 와중에 부상자를 운반하러 온 메드백 한 대가 피격을 당해 아군 진중에 떨어지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란마저 야기되었다.


  아군의 역습전은 동이 틀 무렵까지 계속 되었는데, 날이 밝은 후 그 전날 피격을 당해 전사한 전우들이 군복이 홀랑 벗긴 채 총검에 의해 무참하게 난자를 당한데다 그 시체 밑에 부비트렙을 설치해 놓은 것을 목격한 아군 장병들은 적의 만행에 치를 떨며 분노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발목에 전선줄을 매어 안전한 곳에 엎드려 잡아 당길 수밖에 없었으므로 수거된 시체들은 참담하게 분해되어 있었다.


  한편 그 현장에는 북한군의 심리전 요원들이 뿌려 놓은 상당수의 삐라가 있었는데 그 삐라 가운데는 해골 바가지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의 그림을 그려 놓고 "누구를 위해 이역만리 낯선 전선에서 목숨을 바치고 있느냐"는 글귀가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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