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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전<2편> - 그 후의 월남

머린코341(mc341) 2017. 8. 1. 09:59

해외 출전<2편> - 그 후의 월남

  미국의 월남화계획에 따라 종식이 된 그 월남전은 휴전협정문에서 미국이 유엔의 중개라는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휴전을 관리하는 평화유지군의 주둔을 바랄 수가 없었던 것을 위시하여 국제감시단의 존재 등 전쟁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실효성 있고, 통제력 있는 기능장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데다 월남 내에 2개의 정부(월남정부와 베트콩이 내세워 놓은 꼭두각시 집단인 남부월남혁명정부)와 월남을 적화시키려는 베트콩이나 월맹의 위장된 전략 전술을 정면에서 지원하고 나선 제3세력의 잠정적인 관여를 허용했고, 또 미군을 비롯한 참전연합군의 완전철수 시한은 확고하게 못박아 두었으면서도 월남 내에 침입해 있는 월맹군의 철수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휴전협정은 휴전이 성립된 지 60일후 마지막 제대의 미군의 완전철수가 이루어지면서부터 전투가 재발되어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감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그러간 상황속에 공산당의 위장된 정치극에 의한 정치적 붕괴작용과 군사적인 붕괴작용이 동시에 일어나 끝내는 사이공 최후의 날로 기억되고있는 1975년 4월 30일 그러니까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2년 3개월 4일째가 되던 날 마침내 자유월남공화국은 영 영 폐망하고 말았다.


  이른바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으로 불리우고 있는 그 월남전쟁기간 중 월남군은 45만 명의 전사자와 30만의 부상자를 내었고, 월맹군을 비롯한 공산군은 30만의 전사자와 50만 명의 부상자를 낸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미군은 45,000명의 전사자와 20만 명 이상의 부상자를 그리고 한국군을 포함한 다른 참전연합군도 5,000명 이상의 전사자와 수만 명의 전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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