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와 월남전

청룡부대 전투상보 (1) - 주월한국군, 청룡부대의 파병 경위.

머린코341(mc341) 2015. 6. 10. 13:49

청룡부대 전투상보 (1) - 주월한국군, 청룡부대의 파병 경위.
  
청룡부대(제2해병여단)

 


파월약사

 

1965년10월 ,전투부대로서는 최초로파월 캄란(Cam Ranh)에 상륙하여
캄란과 동바틴(Dong Ba Thin) 지역 일대에서 경계 및 평정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어서 1965년 12월. 청룡1호 작전을 전개하면서 투이호아(Tuy Hoy) 지역으로
이동하여 남베트남의 3대 곡창의 하나인 투이호아 평야를 평정했다.

그결과 베트콩의 식량보급원을 차단하고
푸엔(Phu Yen)성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소하였으며
1번도로를 개척하여 지역안정을 기하였다.


그후 1966년 8월 , 추라이(Chu Lai) 지역으로 이동하여 지역 평정 작전과 함께
1개 중대로 북베트남 정규군 2개 연대 병역을 격멸시킨 짜빈동전투로 국내외에 명성을 덜쳤다.


이어서 1967년 12월, 호이안(Hoi An) 지역으로 이동하여 .
호이안 서남부일대를 평정하였으며 남베트남 제2의 전략도시인
다낭(Da Nang) 안정에 기여한 후 1972년 2월 29일 철수 귀국하였다.

 


제1절==파병 및 캄란 지역작전


1) 청룡부대의 파병경위


1965년 6월21일.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하는 남베트남 정부의 공한(1965년 6월14일자)을 접수한 정부는
동년 6월 23일부로 합동참모본부에 "월남공화국" 지원을 위한 기획단을 설치하여

한국군 전투부대의 파병과 관련된 제반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해병대사령부는 1965년 3월.

공병 1개 중대를 비둘기부대에 배속하여 남베트남에 파병한 이후
머지않아 전투부대의 파병이 이어질것으로 판단하고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던 "해병대 정책연구위원회"로 하여금
"해병 전투부대 파병안을 연구하도록 구두지시(1965. 5. 12. )하였다.

이에따라 해병대 정책연구위원회는 파병규모를 1개 여단으로 상정하고
3개의 구체적인 편성안(A.B.C.)을 검토하였다.

이 결과 3개의 보병대대와 1개의 포병대대 및 직활중대로 편성되는
5.800여명 규모의 A안을 내부적으로 확정하였으며,

사령부 작전준비 지시 제1호(1965. 6. 4) 에 의해 1개 여단의 편성과 교육훈련을
포함한 출동준비태세를 갖추도록 제1상륙사단장에 지시했다.

이에따라 제1상륙사단장은 예하의 제2연대를 모체로 하는 파병부대 편성에 착수하게 되었다.


한편 합참의 "파병기획단" 은 자체의 "파병부대 편성지침" 을 마련하여
1965년 6월 26일 제1차 파병기획단회의를 소집하여 편성지침에 대한 토의를 가졌다.

이때 해병대에서는 제1해병 연대장 정태석 대령과
사령부 감찰감 유국태 대령이 파병기획단 요원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이어서 동월 29일. 한·미 연합회의를 거친 파병부대 편성지침은
국방부 지령 제8호(1965. 6. 29)로 확정되고 각 군에 하달되었다.

그런데 확정된 파병부대 편성지침은 1개 사단 규모로 편성하되
육군 보병사단 및 해병 1개 연대와 지원부대로 편성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해병대사령부는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여단편성안을 조정하여
7월 12일 부로 해병파병부대 목록(해병발4831호)을 합참에 제출하였다.


* 해병 파월 부대 목록 *


1) 해병 제1사단 제2연대
2) 해병제1사단 포병연대 제2대대
3) 해병제1사단 의무대대 제2치료 및 수용중대
4) 해병제1사단 본부대대 일부
5) 해병제1사단 근무대대 일부

*총인원 : 4.130명 (장교:206명  부사관 및 병:3.924명)

 


주월한국군 사령부와 함께 해병 연대의 편성안이 국방부 승인을 얻어 확정되자
해병대 사령부는 제1연대장을 근무중인 정태석 대령을 제2연대장에 임명하고
부대편성과 교육훈련에 착수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어서 1965년 8월 13일. 제52회 국회본회의에서 국군 1개사단 파병안이 통과되었으며
국방부는 8월 16일 부로 전투부대 월남 파병지시(국방부지령 제10호) 를 정식으로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파병되는 제2해병연대장 정태석 대령은 8월 27일 작전장교를 대동하고
육군 수도단 사령부를 방문하여 파병에 따른 협조사항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해병대를 지원할 육군의 155mm 포병 1개포대와 야전공병 1개중대가
배속되었으며 이들 부대는 9월 6일 포항에 도착하여 청룡부대와 합류하였다.

 

한편 국방부는 8월 18일 .
작전지역 현지답사와 아울러 미국 및 남베트남과 군수지원 및 상호협조 사항을 사전에 협의하기 위하여 
이세호 육군소장을 단장으로 한 연락장교단을 남베트남에 파견하게 되었다.

이때 연락 장교단에 해병대 사령부의 작전교육국장이던  김연상 해병준장이 포함되어
해병부대의 파병에 따른 제반 사항을 조치하도록 하였다.

그후 9월 8일 남베트남 현지를 방문하고 복귀한 연락장교단은 파병부대의 주둔지와
임무에 대해 "수도사단은 퀴논(Quy Nhon)에 해병연대는 캄란(Cam Ranh)에
각각 분리하여 주둔하게 될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라고 보고하였다.

 

이에 해병대 사령부는 해병대의 독립적인 임무수행을 고려하여 파병부대를
여단급 규모로 확대해 줄 것을 국방부에 건의하였다.

국방부는  해병대의 건의를 검토한 결과 1965년 9월 20일 부로 제2해병 연대를
제2해병 여단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여단장은 준장으로 임명하라는 수정지시를 하달하였다.

이와 같이 해병대의 건의가 국방부에 의해 승인되자
해병대 사령부는 관리국장이던  이봉출 준장을 여단장에 임명하고
이미 연대장으로 임명되었던 정태석 대령을 참모장에 임명하였다.

 


이어서 제2연대를 제2여단으로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파병 선발은 해병의 전통에 입각하여 투철한 해병정신을 소유한자를 선발하는데 주안을 두었다. 

또한 파병을 위한 교육훈련은 1965년 7월 1일 부터 대대단위 야외훈련. 연대전투훈련 및
야외기동연습. 대게릴라전 및 중대단위 주야간전투훈련 정글지대 작전 및

이동간 즉각조치훈련과 헬기탑승훈련, 해양훈련과 M1 검정사격 등을 단계적으로 중점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마무리단계의 인원편성과 교육훈련이 진행되는 가운데

1965년 9월 20일 10시

포항의 훈련기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3부 요인과 주한외교사절
한·미 양군의 주요장성, 파월장병 가족과 포항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파월 청룡부대의 결단식이 거행 되었다.

이어서 청룡부대가 파병을 위한 제반준비를 완료하자
국방부는 출국명령(지령 제12호: 1965. 9. 21) 을 하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여단은 10월 2일 열차편으로 포항을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한 다음
10월 3일 부산항 3부두에서 육군 선발대와 함께 미해군 수송함편으로

남 베트남을 향하여 출항하게 된다.

 


 출처 : 해병 그대 청룡의 기백으로!, 海岩(170)도공식

          http://cafe.daum.net/rokmc.bluedragon/EfO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