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와 월남전

청룡부대 전투상보 (3) - 청룡부대의 작전지휘권 및 작전개념

머린코341(mc341) 2015. 6. 10. 18:47

청룡부대 전투상보 (3) - 청룡부대의 작전지휘권 및 작전개념


제1절  파병및 캄란지역 작전

 

2) 캄란항(Cang Cam Ranh) 상륙및 초기작전

 

<2>청룡부대의 작전지휘권 및 작전개념


* 당시여단 참모장 정태석 대령의증언 *


1964년 8월 통킹만 사태이후 월남의 상황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었지요.

상황이 계속 악화되어가자,
미국과 월남 정부는 1개사단 규모의 한국군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때가 1965년 6월 14일이었어요.
이에 따라 국방부는 1965년 6월 23일 일반명령 제11호에 의거
합동참모본부에 월남에 대한 군사지원을 전담하는 기획단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기획단의 편성은 합참기획국장인 손희선 소장을 단장으로 하여
8명의 위원이 편성되었는데
해병대를 대표하여 본인과 해병감찰이던 유국태 대령이 위원으로 편성되었습니다.


그때 본인은 당시 제1연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제2연대로 파병부대를 편성하여 파월하도록 내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파월되는 한국군의 전투부대가 중부지역에 배치된 동기는
월남의 성장들이 한국군을 유치하기 위해서 맹열히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왜 하필이면 제2군단 지역으로 갔느냐 하는 질문에....
그 문제가 상당히 애매하게 되어 있습니다.


맹호부대의 작전지휘권과 관련하여 주월 미군사령관 웨스트모랜드 장군과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이 최종적으로
주월한국군 의 지휘권은 주월 한국군사령부에 있다고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청룡부대의 경우는 해병대 고유의 영역이 있었기에
미해병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초에 청룡부대를 편성할 때부터
연대를 여단으로 승격시킨 이유가 "독립작전이 가능하도록 편성하는것"이었기 때문에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의 작전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같은 이유로 청룡부대의 작전에 대해선 주월 한국군사령부보다는
미 제1야전군사령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수행하고 있었으며
주월 한국군사령부에는 미 제1야전군사령부의 작전지시를 통보하여
형식상으로 추인을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청룡부대가 10월 9일 캄란항에 상륙한 후 판랑과 투이호아 지역에서
작전이 계속되었는데 채명신 사령관이 청룡부대에 하달한 작전개념은?


작전에 앞서 특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작전개념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군은 게릴라전을 해야한다" 또는 "중대단위 거점방어를 한다."
등의 구체적인 작전지침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먼저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채명신 사령관은 맹호부대장겸 주월사령관으로 왔지만 
그분보다는 우리가 1개월 먼저 갔기 때문에 그분들이 도착해서
어떠한 구체적인 작전지시를 내리지 못했던것입니다.


따라서 청룡부대의 작전은 최초 미 제1야전군 사령부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구체적인 작전은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여 그때의 상황과 그때의 전세에 맞추어 작전을 한 것입니다.

채명신 사령관이 도착한 후 우리의 여단장인 이봉출 장군에게 어떠한 지침을
부여하여 간접지휘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여단장의 지침을 받아 작전에 임했으며
채 장군으로부터 직접적인 지휘를 받은것은 없습니다.

 

 

최초의 여단급 작전인 청룡1호 작전을 11월에 계획했다가 12월로 연기한 이유는.?


순수한 기상조건 때문이었읍니다.
아시다시피 청룡1호 작전지역은 투이호아 북방의 험준한 산악지대인데
당시에 우리가 주둔하고 있던 캄란과 투이호아는 육로로 연결되어 있지 못했어요.


따라서 우리가 작전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공중이나 해상으로 이동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중과 해상이동을 반반씩으로 하여 1개대대는 공중으로
1개대대는 해상으로 이동하도록 계획했는데.
해상으로 이동하던 미군 L.S.T.가 좌초되어 버렸습니다.
문제가 심각하게 되어 버렸지요.


선박이 적지역에 들어가서 좌초되어 오도가도 못하고 있으니
적이 가지고 있는 81mm 박격포로 공격을 해 온다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지요.


그래서 좌초된 선박을 경계하기 위해 최초에 1개중대가 갔다가 나중에 대대로 증강되었지요.
이같은 상황으로 볼때 청룡1호 작전이 연기된 이유는 기상불순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룡부대 작전의 특징은?

 

해병대 장병 들은 타군이 갖지 못한 어떤 "프라이드" 를 가지고있습니다.
전투현장에서의  프라이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 해병대는 후퇴가 없다 " 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청룡부대가  어느부대에게 패했다"는 것은 아직 없습니다.
" 월남에 와서 작전을 했다하면 이겼지 패배한 부대는 없다"는 것입니다.


" 어느부대가 무엇을 잘 한다"는 특성보다도 포괄적으로 모든 면에서
즉 예를 들어 게릴라전에서는 끊임없는 탐색을 해야 된다든지
어떤 상황에 따라서는 야간정찰과 철저한 매복 등 이런 것들을
어떤 부대고 간에 공통적으로 수행한다고 보며
"어느 부대가 특수하게  무엇을 잘 했다."
이런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맹호부대의 주임무는 전술책임 지역을 방어 하는 것이지요.
반면 우리는 적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어떤 곳에 적이 있다고 하면 거리가 멀던 가깝던
쫓아가서 수색으로 적을 발견한 후 이들을 격멸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맹호부대와 다른점 입니다.


적의 위치가 확인되면 1개대대 이상의 적이 있는 적진에 아군 1개중대를
떨어뜨려 놓습니다.


이때 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주민들에게 내려와 쌀을 공급 받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보급로만 차단할 수 있다면 이들을 고사 시킬수 있는것 입니다.

월남전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저분한 전투입니다.
이같은 전장에서 작전에 임하면서 한국 청년들이 아주 우수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저희들도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읍니다.
오히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강간과 같은 대민사고나 유발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국의 국위가 달린 문제이지요.
그런데 막상 전장에 투입되고 보니 병사들이 서로 서로 걱정을 하며
그같은 대민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것을 볼때
한국인이 우수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출처 : 해병 그대 청룡의 기백으로!, 海岩(170)도공식
         http://cafe.daum.net/rokmc.bluedragon/EfO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