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특과 2기 정채호

장편서사시 대한민국 해병대 -3

머린코341(mc341) 2015. 10. 22. 19:27

장편서사시 대한민국 해병대 -3

 

낙동강을 최후의 방벽(防壁)삼아

사력을 다해 버티어 왔던

유엔군과 국군의 그 기진맥진해진 지연작전기를

결사적인 반격전환기로 전환시킨

그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

그 전략적인 대작전에 영예롭게도

미 해병1사단과 함께 상륙선봉군으로 참전했던

한국 해병대는,

조국의 사활(死活)이 걸린 그 작전에서

구국의 용마로서의 빛나는 명성을 떨쳤다.

 

1950년 9월 15일, 18시 30분,

레드비이치(赤色海岸)에 적전상륙을 감행했던

우리의 해병용사들은,

부슬비 내리는 해안 교두보(橋頭堡)에서

악몽같은 일야를 보낸 다음,

시가지 소탕전을 거쳐 일로 서울로 진격,

김포(金浦)와 행주(杏州)에서 승전을 거듭하며

적이 완강하게 저항한 서울 서측방의 천년방벽(千年防壁)

104고지 위에 전승(戰勝)의 기를 꽂았고,

연희고지 일대의 강력한 적 주 저항선이 무너지자

지체없이 무수한 바리케이트가 구축된

서울시가지를 공략.

 

9월 28일 마침내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야 말았으니

그 날의 그 감격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9월 15일 인천에서 일어났던 그 상륙의 큰 함성이

9.28의 감격으로 영글게 되자

국군과 유엔군은 패주하는 적을 쫓아

반격의 말고삐를 숨차게 다잡았고,

뒤질세라 해병대도 해로로 원산(元山)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10월 27일

명사십리(明沙十里)에 상륙했던 해병대는,

그로부터 한달 남짓

고성(高城)·간성(杆城)지구를 거쳐

원산·함흥(咸興)·양덕(陽德)지구로 전진하며

부여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1월 하순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과 국군이 철수를 단행할 땐

아호비령(阿虎飛嶺) 너머의 동양(양덕군)으로 진출,

양암산성(陽巖山城) 옛 성터에 진을 치고

그곳 평원간(퍙양·원산간) 가도상의 요충지(要衝地)를

경비하고 있던 3대대 장병들은

 

12월 2일 꼭두새벽

백설이 덮인 준령들을 타고 결행했던

그 필사의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설한지(雪寒地) 작전사(作戰史)에

놀라운 전례(戰例)를 남겼고,

중공군에 포위된 우군부대(미 육군)의 철수엄호를 위해

원산에서 흑수리(黑水里)로 향하던 중

혹한의 검산령(劒山嶺) 고개에서

이틀밤을 지새웠던 5대대 장병들은,

동태처럼 얼어죽지 않았던 그날 밤의 일들이

지금도 기적같이 여겨진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장편서사시 대한민국 해병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