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와 6·25사변

형제를 겨냥했던 옥죄는 아픈 청춘 6.25, 그리고 '무적 해병'

머린코341(mc341) 2016. 9. 3. 09:00

형제를 겨냥했던 옥죄는 아픈 청춘 6.25, 그리고 '무적 해병'
 
해병대 '전설의 기수' 3기 송치선 어르신 "전쟁, 두려웠지만 내가 살아야 했다" 


해병대 3기인 송치선 어르신(87. 사진 오른쪽)은 "6.25 전쟁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조국을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 <사진 왼쪽부터> 오창일(84. 해병대 4기), 고순덕(84. 해병대 4기), 송치선(87. 해병대 3기)

 

 #. 전설의 무적해병 3기가 전한 참혹했던 6.25 전쟁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고 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과 여전히 숨을 쉬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전쟁터는 무서웠고, 같은 형제끼리 총을 겨눠야 하는 형국이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1일 오전 11시 '제16회 제주 해병대의 날 행사'에서 6·25 참전 해병대 3기·4기 어르신들을 만났다. 이들 기수는 지금의 해병대의 상징적 단어인 '무적해병'의 근원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은 <인천상륙작전>과 <도솔산 전투>등에 투입돼 '전설의 기수'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1950년 8월5일 해병대에 지원했죠. 당시에 저는 스물한 살로 공무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위험에 빠진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 나서기로 결정했어요. 총구를 겨누는데 생각해보니 (북한도)같은 형제잖아요. 그게 가장 두려웠어요. 하지만 내가 살아야 했으니…"


사진제공-대한민국 해병대 


송치선(87세. 해병대 3기) 어르신은 영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날을 생생하게 서술했다. 그가 기억하는 전쟁은 공포였고, 살기 위한 몸부림은 '악'이란 단어를 가슴에 아로새겼다.


스물한 살이던 그가 겪어야 했던 전쟁은 참혹했다. 서대문 형무소에 즐비했던 시체들의 형상은 아직도 그의 아픈 청춘을 옥죈다. 여전히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왜 같은 형제가 싸워야했지'라는 알 수 없는 물음표.


참혹한 전쟁터 속에서도 송 어르신은 형제끼리 겨누는 총구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적확한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 "내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마음의 울분으로 총을 쐈어요. 내가 살아야 했어. 내가 살아야 한국이 사니까. 우선 살고 봐야 했으니까"


도솔산 전투(1951년6월4일~20일), 해병 제1연대가 참여한 전투로 24개 고지 탈환에 성공하고는 '무적해병' 칭호를 얻게 된다. 해당 전투로 4624명이 사살되고, 3127명이 사상을 입었다. / 사진제공-대한민국 해병대


그는 1951년 6월에는 강원도 양구군 <도솔산 전투>에 대대통신병 보직으로 투입돼 17일 동안 24개 고지 탈환을 위한 피 말리는 전투를 이어가기도 했다.


해당 전투는 송 어르신 가슴에 아로새겨진 '악'의 결정체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무적 해병'과 '전설의 기수'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기쁨도 한순간,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제주에서 모집된 해병대 3기 전우들의 얼굴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내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는 다짐 속에 겨눈 총구는 현실이 됐다. 그는 '그땐 미처 알지 못한'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전우 374명을 잃어 버렸다고 했다. 그는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취재진의 눈만 바라봤다.


사진제공-대한민국 해병대 


문정열(83. 해병대 4기) 어르신 


 #. 제주도 여학생들의 자원입대 '학도군' 해병대 4기


송치선 어르신에 따르면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로 한국이 위기에 처하자 제주도에서 해병대 자원 입대병을 모집했다. 당시 성인이던 그는 3기로 자원입대를 했고, 25일 후인 8월30일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학도병'들도 조국을 위해 4기로 지원을 했다. 전쟁터로 스스로 뛰어든 이들은 성별을 초월했다.


그렇게 모인 제주의 젊은이 약 3000명의 3·4기 해병대들은 같은 해 9월1일 출정에 나서 6일 부산으로 향했고, 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이들의 자원입대 배경은 '곧 제주도도 북한군에 의해 점령돼 가족들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당시 소문을 두고 문정열(83세. 여. 해병대 4기) 어르신은 "목포까지 북한군이 왔다는 소식과 제주도도 금방 점령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어요. 제주에서 죽음을 당하느니 나가서 싸우자는 심정으로 지원했죠"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친구들 30여명과 동반 입대를 했어요. 우린 어렸고 솔직히 애국심보다는 가족이 있는 제주도로 북한군이 못 오게 막아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또 다른 학도군 윤연숙(83. 여. 해병대 4기) 어르신은 "나는 진해 통신부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곳은 126명의 여자 해병이 있었어요. 한번은 불침번 때 단잠을 자버렸는데 걸려서 군화발로 차이면서 혼나던 생각이 문득 떠오르네요"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땐 생명이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는 전쟁중이라 식단도 밥, 콩나물국, 깍두기가 전부였는데 요즘은 평화롭고 배고프지도 않은 시대니 오직 국방만 생각하며 나라를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현 국군장병들에게 당부를 건냈다.


문정열 어르신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조국이 있어야 내가 있어요. 그러니까 애국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라며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주변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고, 좋은 나라가 될 것이예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송치선 어르신은 "과거를 바로 알고, 역사를 이해하고, 청춘을 소중히 알고 젊은이들이 살아갔으면 좋겠다"며 "전쟁터에서 내가 보낸 참담했던 청춘이 아닌, 창창한 청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제공-대한민국 해병대

 
한편 해병대사령부는 8월31일~9월1일까지 제주시 일대에서 '제16회 제주 해병대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66년 전 제주항에서 출정한 3000명의 해병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된 행사는 제주 해병 3, 4기생과 이승도 해병대부사령관, 해병대전우회, 제주도 해병대 9여단 간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졌다.


이 자리에서 해병대 관계자는 "해병대와 제주도 인연은 특별하다. 특히 6.25 전쟁 발발 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한 이들만 3000명(여군 126명)"이라며 "이들은 <인천상륙작전>, <도솔산 전투>, <김일성, 모택동 고지전투> 등에 참전하며 무적해병 신화를 세웠다"고 치켜세웠다.



[시사제주]201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