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와 6·25사변

한국전쟁 ‘통영상륙작전’을 아시나요

머린코341(mc341) 2017. 6. 30. 09:45

한국전쟁 ‘통영상륙작전’을 아시나요


한국군 첫 단독 상륙작전, ‘귀신잡는 해병’ 신화 창조 계기


통영지구전적비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17일 통영상륙작전을 기념하고 전투에서 희생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80년 통영에 건립된 전적비.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새 67돌. 대표적인 전투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손꼽히고 있지만 이에 앞서 한국군이 단독으로 감행한 ‘통영상륙작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통영상륙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우리 해병대와 해군이 합심해 성공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다.


전쟁 발발 두달여 만에 파죽지세로 부산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한국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총 공세를 벌였지만 한국군의 결사항전에 막혀 성과를 보지 못하자 통영과 거제를 점령해 마산과 진해의 해상을 봉쇄하고, 부산을 포 사정거리 안에 두려 했다.


북한군 7사단이 통영을 점령하고 거제까지 노리자 한국군은 거제 방어를 위해 해병대를 출동시켰다.


하지만 거제도 방어임무를 안고 출동한 해병대는 오히려 통영을 직접 상륙해 탈환하겠다는 공격 작전을 상부에 건의했다.


1950년 8월17일 새벽 3시께 통영 동북방 1km 해상에 도달한 해병대는 해군의 엄호사격속에 이날 오후 6시께 통영 장평리에 상륙을 시도했다.


해병대는 통영의 원문고개와 망일봉으로 나눠 상륙작전을 펼쳤다. 허를 찔린 북한군은 다급히 반격에 나섰지만 사기가 오른 해병대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500여 명이 사살되고, 1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당시 해병대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충렬사와 세병관, 주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폭발하지 않는 무쇠탄을 사용해 적을 교란만 시켰다고 전해진다.


이 작전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최초로 성공시킨 상륙작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위해 철수하는 와중에 유일한 공격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전투를 취재하던 당시 뉴욕타임즈의 외신기자 마거릿 히킨스는 ‘귀신도 잡을 만큼 놀라운 일을 해냈다’는 기사를 타전했고, 이로 인해 한국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통영상륙작전의 승리로 한국군은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만약 당시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한국전쟁의 결과 또한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군사적 거점인 마산 진해 해군기지를 방어하고 부산 공격을 위한 북한의 거제도 포병 진지 구축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역으로 반격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통영상륙작전의 승리는 당시 맥아더 장군이 준비하고 있던 인천상륙작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맥아더 장군은 이 전투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해병을 차출해 인천상륙작전의 선봉대로 투입시켰고 이들은 서울수복작전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통영시는 지난 4월 해병대가 처음 상륙작전을 펼친 용남면 장평리 전승기념비부터 원문공원까지 약 8.4km 구간의 도로를 ‘해병대 상륙작전로’로 명명하고 기념하고 있다.


[경남일보] 201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