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사진/6대사령관 공정식

제1장 - 2. 전투여단인 해병 청룡부대 준비 및 파병(1)

머린코341(mc341) 2017. 7. 18. 11:27

제1장 - 2. 전투여단인 해병 청룡부대 준비 및 파병(1)


 청와대 특별 리셉션이 있은 뒤 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에서는 1개 전투사단 편성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후 하달된 작전명령을 받은 나는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건의했던 것과는 달리 해병대의 1개 연대를 수도사단(후에 맹호부대)에 배속시키되 배속할 해병부대는 제2해병연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해병대의 1개 연대와 수도사단의 2개 연대로 1개 혼성전투사단을 편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달된 작전명령에 이의가 있음을 즉각 표명하고 내가 합참과 유엔군사령부에 최초 건의한 대로 해병대는 해병대 장군이 지휘하는 1개 독립 해병여단을 파병하겠다고 밀고 나갈 결심을 하였다. 그 이유로 첫째는 해병대가 육군의 일부가 되어서는 해병대 파병은 의미 없이 부대 지휘만 복잡해지게 되고, 둘째로는 주월 미 해병대와 원활한 연합작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제1해병사단 기지 내에 1개 해병여단(청룡부대)을 신편하는 한편, 해병대사령부 관리국장이었던 이봉출 준장을 여단장으로 임명해 놓고 김성은 국방장관과 박 대통령에게 월남전 출전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보고하였다.


 나의 보고를 접한 박 대통령은 나의 용기 있는 조치에 고무되기라도 한 듯 "그대로 하시오" 하며 해병대사령관의 입장에 찬성하고 1965년 9월 20일 제1해병사단에서 거행된 청룡부대 창설식에 참석하여 부대기를 이봉출 여단장에게 수여함으로써 해병대 청룡부대가 유사 이래 최초의 전투부대로 월남전쟁에 파병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군사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좀더 과감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으로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격으로 미국내의 '반전 무드'를 무마하는 한편 미국의 월남전 개입을 합리화해 주는 강력한 뒷받침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5천 년 역사상 최초의 해외 원정군으로 월남의 캄란 만에 상륙했던 청룡부대는 미 해병대와 더불어 자유의 십자군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신화를 남긴 해병' 이라는 군 사상 찬연히 빛나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또한 한국군의 얼남전쟁 파병은 한국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한 예로 한국전쟁 시 전투기 조종사로서 한국 해병대에 근접 항공 지원을 했던 미 해병대 예비역 대령 퍼킨스가 전역 후 미국에서 이름 있는 건설회사인 모리슨-누드슨사를 설립하여 월남에서 많은 공사를 수행하면서 한국 건설회사에게 많은 일감을 주어 월남 진출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자기 회사에 필요한 인력(특히 태권도 유단자)을 요청하여 한국 해병대 출신을 비롯한 한국군 예비역 500명 이상을 취직하게 해 주었다.


 퍼킨스 회장의 도움을 받아 월남에 진출하여 경험을 쌓은 건설회사들은 그후 중동 건설시장으로 진출시켜 많은 오일 달러를 벌여들여 오늘에 한국 경제의 바탕을 만들었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브라운 주한 미 대사와 해병대의 월남 파병에 대해 협의하는 필자. 1965. 7


티우 대통령의 파병 요청으로 월남 사이공의 대통령궁을 방문하여 파병 협의에 앞서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왼쪽은 신상철 주월 대사. 1965. 7


한국군 월남 파병에 앞서 합참의장과 월남 현지를 방문하여 주월 미군사령부에서 현황을 청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필자, 합참의장 김종오 대장, 주월 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 대장. 1965. 8


필자는 이봉출 준장을 청룡부대장으로 임명하여 해병대가 독립전투부대로 파병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1965. 07



해병대는 '전략기동 신속대응군'으로서, 국가의 부름이 있을 때 즉각 출전할 수 있도록 훈련되고 있다. 상시 출전 준비된 해병대 제1상륙사단(현재의 해군 항공전단)을 열병 중인 필자. 1965


청룡부대 결단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을 안내하는 필자. 1965. 9. 20


포항 제1해병 상륙사단에서 거행된 청룡부대 결단식. 오른쪽에서 첫번째 브라운 미 대사, 두 번째 필자, 세 번쨰 박정희 대통령, 네 번째 김성은 국방장관, 다섯 번째 주한 유엔군사령관 비치 대장. 1965. 9. 20



유사 이래 최초의 전투부대 해외 파병을 위한 해병대 제2여단 청룡부대 결단식. 1965. 9. 20

 


박정희 대통령이 초대 청룡부대장인 이봉출 장군에게 부대기를 수여하고 있다. 국방부 및 합참에서는 청룡부대를 추후 승인하였다. 왼쪽부터 주한 연합군사령관 비치 대장, 이봉출 초대 청룡부대장, 박정희 대통령, 해병대사령관인 필자. 1965. 9. 20


박정희 대통령의 청룡부대 열병. 1965. 9. 20


주요 지휘관들의 청룡부대 열병. 왼쪽부터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소장, 필자, 주한 유엔군사령관 비치 대장. 1965. 9. 20



해병대 제2여단 청룡부대 결단식에서의 보무당당한 분열. 1965. 9. 20

 


청룡부대 결단식에 축하 비행하고 있는 해병대 항공기. 해병대 항공대는 1973년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되기 전까지 운용되었는데 타군에 비해 우수한 신형 항공기와 헬기들을 보유, 정찰, 관측 및 연락 업무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우수한 조종사 및 정비사들이 통합 후 해병에서 해군으로 옮겨 초창기 해군 항공감 등을 배출하였으며, 오늘날 해군 항공전단의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 국방개혁 2020 계획에 해병대 항공대가 편성될 수 있도록 입안되어 있으나 국가안보의 최선봉에서 해병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2020 계획은 지금 당장 앞당겨져 해상·육상·공중에서 기동할 수 있도록 해병대에게 시급히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할 것이다. 1965. 9. 20


자료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사진첩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