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336기 고상호

실록 병영 일기 / 제23화 : [위문편지] 그리고 [펜팔]

머린코341(mc341) 2017. 8. 21. 11:18

실록 병영 일기 / 제23화 : [위문편지] 그리고 [펜팔]

 

위문 편지

 

우리가 살아 오면서 누구나 위문편지 한 통 정도 쓴 기억은 있을 것이다.

 

60년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위문 편지를 엄청 많이 쓴 것으로 기억된다.

 

국군장병 아저씨께 특히 당시에는 월남 파병으로 월남 파병 아저씨들께 편지를 많이 쓴것 같다.

 

그러나 답장을 받아 본 기억은 없다. 막상 군대에 가보니 답장이 안 오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가고 이해가 간다.

 

위문편지에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편지와 초,중학생들로부터 오는 편지 그리고 애인으로부터 오는 편지가 있을것이다.

 

훈련소에서는 가족들로부터 받는 편지가 가장 반가웠다.

 

요즈음은 육, 해, 공군 해병대 각 군마다 훈련소 홈피가 활성화되어서 굳이 우표 붙여서 쓰지 않더라도 인터넷 서신으로 얼마든지 편지를 보낼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옛날 위문편지 보내고 나서 답신이 없어서 헛고생한 경험이 떠올리기도 해서 나름대로 위문편지는 정성을 다해서 답신을 보냈다.

 

그런데 이 번에는 답장을 받은 학생들로부터 재답장이 오지를 않아서 위문편지는 그냥 위문편지이지 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니 다소 위로가 되기도 했다.

 

펜팔(Pen Pal)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졌는지는 몰라도 선임 해병님들은 평균적으로 대,여섯명씩 하고 펜팔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서부대 특성상 육지와 소통하는 방법이 그 외에 뽀족한 방법이 없어서 그런지 70년대에는 펜팔이 유행이었다.

 

나는 글씨체가 좋다는 이유로 선임들로부터 종종 대필을 요구받아 대필을 해 주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온갖 미사려구를 동원해 편지를 써내려가다 막히는 부분은 나에게 대신 쓸 것을 요구해 졸지에 내가 대신 선임의 펜팔 편지를 쓴 적도 있다.

 

선임들 중에는 펜팔하는 처자들이 하도 많아서 여러 통의 편지를 써서 바꾸어 편지를 보내서 곤욕을 치루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하여간 사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외로운 해병들에게 펜팔은 활력을 주는 자양강장제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샘터'로부터 맺어진 '펜팔'의 인연

 

거의 모든 잡지책에는 끝장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펜팔코너] 이다.

 

해병들 중에는 펜팔 코너에 투고하여 그 이름이 당당히 올라가기도 했다.

 

그 당시 휴대하기 편한 사이즈에다 유익한 내용이 많이 실리기로 유명한 [샘터] 라는 포켙용 월간 잡지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는 잡지였다.

 

여기에 주소가 한 번 올라 가면 그야말로 부대 전체가 난리가 났다.

 

편지를 수취하는 부서에는 조금 과장해서 산더미 처럼 쌓인다고 행정병이 전해 주기도 했다.

 

상병 마루봉 쯤인 때로 기억된다.

 

행정병을 맡고 있었던 선임은 6기 선임으로 나와는 친한 편에 속했다.

 

어느날 그 선임이 샘터 한 권을 건네 주었다.

 

드디어 연평부대에도 펜팔코너에 모 해병의 이름이 올라간 모양이다.

 

잡지에 이름과 주소가 올려지면 편지 수취부서는 밀려오는 책과 편지를 처리 하는데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그래서 부대 각 부서 행정병에게 일정 부분을 나누어 주고 그래도 많은 부분은 해당 병의 부서로 보내는 모양이다.

 

소중히 싸여진 샘터 안에 예쁜 글씨로 씌여진 C모양의 주소는 해병 후반기를 지루하지 않고 보내는데 크게 기여 고 나를 편지의 달인으로 바꾸어 놓으며 내 해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연평도를 육지와 연결 시키는 유일한 연락 수단인[황진호]와 [옹진호]에는 거의 그녀의 편지가 실려서 왔다.

 

때로는 다소 철학적인 [함석헌] .[김동길] 선생의 책이 오기도 했고 매월 샘터는 따박 따박 와서 지적 요구를

충족 시키기도 했다.

 

그녀는 매 달 3권의 샘터를 보낸다고 이야기 했다.

 

한 권은 부모님께 또 한 권은 친구에게 그리고 또 한 권은 미지의 그 누구에게 보낸다고 한다.

 

미지의 그 누구가 나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 부대는 과업이 없는 주말 오후나 휴일에는 정훈부서에서 책을 빌려다 많이 읽기도 했다.

 

그렇게 읽은 책은 그녀와의 편지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인용하여 유식한 해병으로 혼동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기도 했다.

 

두번째 휴가에서 직접 만나보고자 했으나 갑자기 몸이 아파서 직장을 휴직하고 고향으로 가는 바람에 만나지는 못했고 제대후 드디어 만남을 가졌다.

 

씨를 잘 쓰는 여자는 인물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그녀는 아리따움 그 자체였다.

 

그 후 여러가지 각자 가는 방향이 달라서 계속적인 인연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해병대 생활을 회고 해 보면 그 한 편에 그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펜팔을 통해 군 생활이 훨씬 빠르게 지나간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편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