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336기 고상호

실록 병영 일기 / 제24화 : [병장]의 전성시대

머린코341(mc341) 2017. 8. 21. 11:25

실록 병영 일기 / 제24화 : [병장]의 전성시대

 

1975년인가 76년 인가 개봉된  [영자의 전성 시대] 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당시 인기 작가군에 속했던 [조선작]의 원작 소설을 무진기행등을 썼던 작가 [김승옥]이 각색하여 각본을 써서 만들어진 영화로 젊은 송재호와 염복순이 주연을 맡고 젊은 이순재가 조연을 맡은 작품으로 특히 염복순의 농염한 연기가 일품인 작품으로 관객들에게크게 호평을 받았던 영화로 기억된다.

 

군 생활 중 병장이야말로 육,해 공군 해병대 공용 군가의 가사에 나오는 것 처럼 [깨긋히 피고질 국군의 꽃이다] 라는 말과 같이 국군의 꽃이요, 병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아는 5대 장성 중의 하나라고 자부심을 갖는 직급인 동시에 무한 책임을 지어야 할 병의 최고 직급이다.

 

권리와 책임이 동시에 동반된 어려운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진급식

 

1979년 7월 1일 일요일 부대 본부 인사 참모부에서 진급자 신고식이 있다고 해서 부대 연병장에 집합 했으나 휴일이라 내일 한다고 해서 모인 동기들끼리 인근 P.X 에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오랫만에 한꺼번에 모이는 자리라 많은 이야기를 화기애애하게 나누며 즐겁게 담소했다.

 

6개월 후에 있을 전역기념으로 전역패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모두 긍정적으로 찬성했으나 당시 연평도에는 전역패 같은 것을 만드는 가게가 없어 인천 지 누군가가 가서 단체로 맡겨야 하는 처지라 말만 나오고 끝내 만들지 못하고 군 생활을 마쳤다.

 

7월2일, 7월 부대 과업 정렬이 있었고 과업 정렬과 함께 336기 진급 신고식을 치루므로 정식 병장이 되어 후임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당직병을 서게 되기도 했다.

 

두 번째 휴가

 

아들 둘이 있는데 사정이 있어서 해병대에는 못 보내고 큰 아들은 공군, 작은 아들은 육군 정훈병으로 제대했다.

 

공군을 다녀 온 큰 아들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은 외출휴가를 다녀 갔다.둘

 

째 아들은 제대 임박해서 말년휴가를 느긋하게 즐기고 전역 신고하러 부대에 갔다 와서는 제대했다.

 

나는 30개월 군 생활 중 휴가는 25일짜리 딱 두 번 나오고 끝이었다.

 

7월 6일 5시에 기상하여 세면하고 삼양라면 한 개 끓여 먹고 6시에 부대 연병장에 집합 헌병들의 검색을 필하고 주임상사의 지시사항이 있은 후 부대장님께 신고하고 인사참모의 휴가중 주의사항을 듣고 트럭에 탑승하여 부둣가에서 옹진호를 타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휴가를 세 시간여를 거쳐서 인천 여안부두에 입항 함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포항제철에 형님이 다니고 있어서 인사도 드릴 겸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포항 상륙사단을 보지를 못했서 구경도 할 겸 포항을 가기 위해서 강남 터미널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동기생을 만나 함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루한 줄 모르게 천일고속 고속버스로 포항에 도착했다.

 

포항에서는 포항제철을 구경하기 위해서 101번 버스를 타고 포항제철을 한 바퀴 돌고 1사단 본부 건물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제대후 주민등록등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처리 하는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귀대할 날이 돌아왔다.

 

7월 30일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는 소고기국을 먹고 오후 2시 30분 집을 출발하여 인천에 도착해서 나룻배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먹고 도서파견대에 귀대하여 하룻밤 자고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식사하고 방어대에 도착하여 해군 LSM에 탑승하여 장장 9시간에 걸쳐서 해군 작전 수행을 목도하면서 연평도에 입도 하므로 휴가를 마치게 되었다.

 

떠나는 자, 남는 자

 

8월 26일 일요일 동기생중 대학 2년을 마치고 온 2명의 동기들이 4개월을 면제 받고 먼저 제대하게 되어 송별회를 가진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나 우리부대는 대원이 소수인 관계로 과업이 없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부대장 진지방문을 대비하여 교통호 정비 작업에 전대원이 동원되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점심 먹고 오후에 전화가 와서 부대 PX에 가보니 나를 제외한 동기생 전원이 모여서 맥주를 마시면서 떠나가는 포병중대의 성 모 해병과 00 기지의 안 모 해병을 아쉽지만 떠나보내기로 하고 제대를 축하해 주고 제대후 인천의 연안부두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그 후 안 모 해병은 몇 번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수병에서 해병으로

 

해병대는 원래  초창기에 해군에서 차출된 병력으로 시작되어 해군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답습하여 쓰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선임해병을 [수병님]으로 호칭하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물론 수병이 잘못된 용어는 아니지만 해군들과 같은 용어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직계 후임인 338기 모 해병이 당직을 서는 날, 순검후 수병을 해병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후임들에게 묻고 나에게 추인을 요청해 쾌히 승락했다.

 

그후 연평 전차부대는 수병을 해병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통이 세워진 것이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내려 오고 있다고 믿고 싶다.

 

병장의 임무 중에는 당직병의 임무가 있다.하루 과업을 책임지고 병들을 통솔하는 임무로서 책임감이 따르기도 했다.

 

후임들로부터는 신뢰 받는 선임으로 군 생활 중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어느덧 제대하는 날이 문 앞에 와 있을 것이다.

 

병장의 전성시대도 국방부의 시계에 의해 끊임 없이 전개되는 훈련과 경계근무가 이어지고 마침내 30개월의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