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초대사령관 신현준 30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7) 후방에 남은 가족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7) 후방에 남은 가족 6·25 동란의 발발로 제주도에 주둔중이던 해병대 전 병력이 진해로 이동한 뒤, 제주도에는 극소수의 병사들만이 남아서 군인가족들을 보살폈다. 마침 만삭(滿朔)의 몸이었던 아내 혜룡은 장남 옹목이를 서울에 있는 ..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6) 영월 지구 작전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6) 영월 지구 작전 일단 포항으로 철수했던 우리 해병대는 그뒤 한동안 미 해병 제1사단에 배속되어 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무렵 태백산맥(太白山脈)을 타고 다시 남하중인 적은 맹렬한 공세로 영월(寧越) 지구 일대를 수비중이던 우..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5) 북진과 중공군의 개입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5) 북진과 중공군의 개입 감격스런 수도 탈환식에 참가하였던 우리 해병대는, 그 날 오후부터 다시 서울 동북방으로 진출하여 북한강(北漢江) 일대의 적의 잔당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앞으로의 작전은 오직 북위 38도선을 넘어 북..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4) 수도 탈환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4) 수도 탈환 6·25 동란이 발발한 후 한동안 수도 서울을 비롯한 남한의 많은 지역은 적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아군은 매우 고전(苦戰)을 치러야만 하였다. 그러던 중에 맥아더 장군의 결단으로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戰勢)..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3) 인천 상륙과 진격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3) 인천 상륙과 진격 내가 지휘한 우리 해병대의 상륙목표지점은 인천부두의 '청색해안(靑色海岸, Blue Beach)'이라 이름 붙여진 지점이었다. 맹렬한 함포사격의 지원으로 인하여 인천부두의 상륙지점인 청색해안과 적색해안(赤色海岸, Red Bea..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2) 인천 상륙작전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2) 인천 상륙작전 해병대 사령부가 진해로 이동을 완료한 9월 2일, 당시 대구에 와 있던 국방부 장관이 급히 나를 만나고자 한다는 기별이 전해졌다. 나는 지난 4월, 역시 국방부 장관의 부름으로 학과 공부 도중에 서울로 달려갔던 일을 회..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 6·25 동란과 해병대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 6·25 동란과 해병대 1950년 북한 공산군의 전면 남침으로 6·25동란이 발발하였을때, 해병대는 최후방인 제주도에서 이를 맞게 되었다. 이에 해병대는 지휘관이나 사병을 막론하고 그간의 문제는 접어두고 모두 합심 협력하여 국가의 위..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10) 제주도 주둔과 경비 임무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10) 제주도 주둔과 경비 임무 해병대가 진주지역 경비 임무를 담당해 온 이래, 육군은 새로 창설된 해병대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당시 육군은 1948년 이른바 '4·3 제주도 폭동 사건' 이래 제주도 지역의 경비임무를 맡아오고 있었다...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9) 진주 지역 경비 임무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9) 진주 지역 경비 임무 1949년 6월 1일부로 나는 대령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8월 중순경에는 해병 제1기 신병 교육이 끝났고, 이보다 앞서 8월 1일에는 해군 14기 중에서 선발한 440명의 해병 제2기생으로 3개 소총 중대의 증편(增編)이 이루어졌..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8) 해병대의 창설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8) 해병대의 창설 여순(麗順) 반란사건을 진압한 뒤, 해군지휘부는 상륙작전수행을 위한 해병대 창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군 참모총장(參謀總長) 손원일 제독(提督)은 1949년 2월 1일부로 나를 해병대사령관으로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