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197기 김금산

[해병대의 기적] 2. 입영전야

머린코341(mc341) 2015. 1. 5. 20:11

[해병대의 기적] 2. 입영전야

 

나는 내일을 위해 잠을 자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허름한 여인숙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 좀 주세요.”

 

“혼자예요?”

 

나보다 대 여섯살 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조바가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물었다.

 

“혼자 오면 안되나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바는 내가 지지리도 못나 보였는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몇 시에 나갈 건데?”

 

“12시요. 12시에 열차를 타야 합니다. 깨워줄 수 있지요?”

 

조바가 물주전자와 수건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색시를 불러줄까?”

 

“필요 없어요.”

 

나는 돈도 없었지만 돈이 있었다고 해도 여자를 부를 생각이 없었다.

나는 사나이의 장도에 여자가 끼어들어 재수에 옴을 붙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내가 살풋이 잠에 들었다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오빠! 안돼요.”

 

“오빠! 제발…….”

 

여자는 애원을 하고 남자는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런 죽일 놈을 봤나? 싫다고 하면 그만 둘 것이지.)

 

“오빠…….”

 

남자가 마침내 일을 벌이기 시작했는지 오빠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남자의 씨근덕거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XX…….)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인숙을 나오고 말았다. 나는 가래를 힘껏 모아 허공에 ‘퉤!’하고 뱉어냈다.

밤 하늘의 별들은 나의 장도를 축복이라도 해주는지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간다.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르는 길을 나는 간다. 잘 있거라. 대전아! 여인숙 조바도, 옆방에서 사랑을 나누던 남자도 여자도 모두 잘 있거라. 부디 행복하거라. 안녕!)

 

나는 새로이 시작하는 인생을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진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였다. 수중에는 500원이 남아 있었다.

지금 돈으로 치면 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다.

나는 먹여주고 입혀주고 담배도 주고 월급까지 주는 것이 군대이니 돈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해도 돈 없이 군대 생활을 하면서 인내심을 기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사가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민간인이 아니다. 알았나?”

 

“알았습니다!”

 

“목소리가 작다! 그것밖에 안되나?”

 

“알았습니다!!!!”

 

“지금부터 너희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중대에 예금한다.

돈은 훈련을 마치고 실무에 배치될 때 이자를 쳐서 돌려줄 것이다.

해병대는 밥주고 옷주고 담배까지 주니 돈이 한 푼도 필요 없다. 알았나?”

 

“알았습니다!”

 

“목소리가 작다!”

 

“알았습니닷!!!!”

 

조교 완장을 차고 있는 하사가 종이를 돌렸다.

 

“종이에 이름과 돈 액수를 적어서 돈과 함께 내놓는다. 실시!”

 

나는 500원을 예금했다.

입대자들은 거의 모두가 돈을 팬티와 양말 속에 숨기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예금했나?"

 

“했습니다!!!”

 

“꼬불친 사람 없나?”

 

"없습니다!!!"

 

“좋다. 너희들의 인격을 믿겠다. 이번에는 군복으로 갈아 입는다.”

 

상중하 3가지로 구분한 옷과 군화가 입대자들 앞에 전달되었다.

 

“지금부터 옷을 갈아 입는다. 늦게 갈아입는 자에게 기합을 준다. 이의 없나?”

 

“없습니닷!!!”

 

“실시!!!”

 

중사의 구령이 떨어지자 옷 갈아입기가 시작되었다.

 

“군화가 발에 맞지 않습니다.”

 

“옷이 너무 큽니다.”

 

이곳 저곳에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사가 소리쳤다.

 

“해병대는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는 곳이다.

발을 군화에 맞추고 몸을 군복에 맞춰서 입는다. 알았나? 실시!!”

 

모두 기가 죽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목소리가 작다. 알았나???”

 

“알았슴닷!!!”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옷과 군화 바꾸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사가 신병들이 옷을 갈아 입는 사이를 돌아다니며 말했다.

 

"동작이 그것밖에 안되나?"

 

“이제부터 너희들은 귀신 잡는 해병대다. 알았나?”

 

“알았슴닷!”

 

옷 입기 전쟁이 끝났다.

그 와중에 돈을 양말과 군화의 깔판 속에 숨기기도 하고 돈을 볼펜처럼 말아서 팬티 끈 사이로 밀어 넣는 자도 있었다.

 

“동작이 뜨다. 조교! 원산폭격 시범 실시!”

 

조교가 원산폭격을 시범으로 실시했다.

 

“3시 방향!”

 

조교가 원산폭격자세에서 3시 방향으로 몸을 비틀었다.

 

“9시 방향!”

 

“12시 방향!”

 

중사의 구령이 떨어질 때마다 조교가 방향을 틀었다.

 

“원산폭격을 알았나?”

 

“알았슴닷!”

 

“이번에는 침대배치다. 조교! 침대배치 실시!”

 

침대배치는 발을 2층 침대에 걸친 자세로 거꾸로 서서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견디는 기합이다.

 

“이번에는 쥐잡기다. 조교! 쥐잡기 실시!”

 

쥐잡기는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기합이다.

 

“이제 알았나?”

 

“알았슴닷!”

 

“모두 모자 벗어!”

 

신병들이 모자를 벗어서 바닥에 내려 놓았다.

 

“원산폭격 실시!”

 

모두 바닥에 머리를 꼬라박았다.

조교가 돌아다니면서 제대로 되지 않은 신병들의 엉덩이를 군화발로 걷어찼다.

엉덩이를 차인 신병들이 나뒹굴었다.

 

“6시 방향!”

 

“3시 방향!”

 

나는 원산폭격은 기합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침대배치!”

 

신병들이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침대에 거꾸로 매달렸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팔에 힘이 빠지면서 팔이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머리를 바닥에 박는 신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교는 머리를 바닥에 박은 신병들을 찾아 다니며 군화발로 걷어찼다.

 

“동작 그만! 이번에는 쥐잡기다. 실시!”

 

신병들이 침대 밑으로 들어가기 위한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동작이 늦은 신병은 침대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머리만 디밀고 있는 자도 있었다.

 

“대가리만 박은 놈 나와!”

 

“상체만 박은 놈 나와!”

 

지적 받은 신병들에게 기합이 떨어졌다.

 

“침대배치 실시!”

 

운 좋게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간 신병들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잘못 입대한 것 같아.”

 

기합이 끝나고 머리를 깎았다. 민둥머리가 되면서 눈물을 흘리는 신병도 있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깎아야 할 머리를 당연하게 깎는다고 생각될 뿐이었다.

45명이 머리를 모두 깎은 시간은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바리깡이 한 번 훑고 지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중사가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5중대 14소대로 소속된다. 알았나?”

 

“알았슴닷!”

 

“내가 너희들을 통솔할 소대장 김철수다. 알았나?”

 

신병훈련소는 중사가 소대장을 맡고 있었다.

 

“알았슴닷!!!”

 

“다음은 조교다. 허인영 하사가 조교를 맡는다. 알았나?”

 

“알았슴닷!!”

 

“지금부터 향도를 뽑는다. 향도는 너희들을 대표하여 통솔할 것이다. 향도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신병들은 서로 눈치를 볼 뿐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지원자가 없으면 내가 고른다.”

 

소대장이 신병을 사열하기 시작했다.

소대장의 눈이 매서워 신병들은 소대장을 마주 바라보지 못했다. 소대장이 한 신병을 지목했다.

 

“귀관!”

 

지명을 받은 신병이 주눅이 되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소대장이 주먹으로 신병의 가슴을 후려치자 신병이 비틀거렸다.

 

“지목을 받으면 반드시 복창한다. 옛! 신병 아무개라고 말이다. 알았나?”

 

“알았슴닷!”

 

소대장이 신병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말했다.

 

“귀관!”

 

“옛! 신병 아무개!”

 

신병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대장과 조교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따라서 웃었다. 소대장이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너의 이름이 아무개인가?”

 

신병이 당황하여 대답했다.

 

“아님닷!”

 

“그럼 다시 한다. 너!”

 

“옛! 신병 최수길!”

 

“입대하기 전에 무엇했나?”

 

“놀았슴닷!”

 

“무엇하면서 놀았나?”

 

“그냥 놀았슴닷!”

 

웃음이 또 터져 나왔다. 소대장은 체격이 건장한 신병을 다시 지목했다.

 

“귀관!”

 

“넷! 신병 이만수!”

 

“운동했나?”

 

“유도를 했습니다!”

 

“몇 단인가?”

 

“3단임닷!”

 

“좋다. 너에게 향도를 맡긴다. 알았나?”

 

“알았슴닷!”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서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전과업 끝. 오전과업 끝.’

 

소대장이 말했다.

 

“지금부터 점심을 먹으러 간다. 연병장에 4열 종대로 헤쳐모엿!”

 

신병들이 우르르 병사에서 나가기 시작하자 소대장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이런 놈들을 봤나?”

 

소대장이 조교에게 명령했다.

 

“조교! 다시 집합시켜!”

 

조교가 호루라기를 힘껏 불었다.

 

‘호르르르르………….’

 

연병장으로 달려나가던 신병들이 호루라기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았다.

 

“총원, 병사로 다시 집합!”

 

신병들이 어리둥절해 하면서 집합하기 시작했다. 조교가 소리쳤다.

 

“동작이 그것밖에 안되나? 앙?”

 

신병들이 움칠하며 동작했다.

 

“너희들은 복창할 줄도 모르나?”

 

신병들은 모두 주눅이 들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반드시 복창한다. 알았나?”

 

“알았슴닷!”

 

“꼬라박아!”

 

“꼬라박아!!!!”

 

신병들이 모두 원산폭격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