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197기 김금산

[해병대의 기적] 8. 계속되는 기적

머린코341(mc341) 2015. 1. 6. 04:20

[해병대의 기적] 8. 계속되는 기적

 

주계는 장교용 식사를 따로 지었다. 사병에게는 쌀과 보리가 반반 섞인 밥에 국과 깍두기가 반찬으로 급식되고, 장교들은 흰 쌀밥에 5-6가지 반찬이 공급되었다.

 

1소대 쫄병이 주계 대원이 쌀밥을 먹는다고 중대장에게 투서를 했다. 그 투서로 주계 대원이 모두 중대장 앞에 단체로 불려가 주의를 받았다.

 

그날 저녁 1소대 배식이 3분의 2로 줄었다. 배식 담당 박 병장이 고의로 배식을 줄였던 것이다. 1소대에서 난리가 났다. 평소처럼 배식을 하다가 10그릇이나 밥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1소대 최고 고참 황 병장이 소대원들에게 기수빳다를 쳤다. 기수빳다는 기수별로 치는 빳다로 최고 고참이 동기를 제외한 쫄병에게 빳다를 치면 그 다음 기수가 빳다를 치고, 또 다음 기수가 이어가며 빳다를 치기 때문에 말단의 쫄병은 엄청나게 많이 맞는 빳다다.

 

그날 밤 1소대 중고참들이 사과의 뜻으로 주계에 술을 보냈다. 주계에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1소대가 굶주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중대장과 소대장도 주계병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주계병은 장교들이 저지르는 부정과 비리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비위가 상하면 급식내용이 당장 달라지고, 창고병으로부터 보복을 받아 필수품 사용에 지장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끗발 부서인 헌병대와 방첩대도 주계병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먹고 입어야 하고, 생활필수품을 보급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계는 그야 말로 끗발 부서로 군대는 끗발이 우선하는 사회였다.

 

내가 연평도에 전입할 당시에 최고 고참 박 병장은 제대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 병장은 쫄병들 앞에서 항상 자랑했다.

 

“느그들 좆나게 근무해라. 나는 제대한다. 알간?”

 

박 병장은 꿈에 젖어 제대 후의 일을 생각했고, 술을 먹고 기분이 좋으면 쫄병에게 먹을 것을 사다주기도 했다. 내가 주계에 소속이 된지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박 병장이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새벽 1시에 들어와 고함을 질렀다.

 

“총원 집합!”

 

주계병들이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 집합했다.

 

“쫄병 새끼들이 기합이 빠져가지고 말이야. 내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도 잠을 자다니……. 모두 엎드려 뻗쳐!”

 

모두 엎드리자 박 병장이 말했다.

 

“윤 병장은 빠져!”

 

박 병장은 야전삽을 가져오게 하여 주계병들에게 10대씩 빳다를 쳤다. 나는 빳다를 맞으면서 야전삽은 소리만 요란할 뿐 5파운드 곡괭이 자루보다 훨씬 덜 아프다고 생각했다.

 

박 병장이 빳다를 치고 나서 술에 취하여 곯아 떨어졌다. 박 상병과 김 상병이 기 일병과 나를 집합시켰다.

 

“느그들 때문에 우리도 맞았다. 엎드려 뻗쳐!”

 

박 상병은 우리에게 빳다를 5대씩 쳤다.

 

이튿 날 박 병장이 외출하자 윤 병장이 주계병을 집합시켰다. 윤 병장은 합리적인 인격자였다.

 

“김신조가 난리굿을 치는 바람에 군복무기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김신조가 내려오지 않았으면 박 병장은 이번 달에 제대했을 것인데 복무가 늘어지게 되어 군번이 늦은 박 병장이 피해를 가장 많이 받게 되었다. 지금 식으로 나가다가는 얼마나 더 있어야 제대하게 될지 모르겠다. 박 병장이 제대 문제로 심기가 날카로워져 있으니 모두 기합 빠진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모두 알았나?”

 

“예! 알았습니다.”

 

그제야 나는 진해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때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부터 주계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찬바람은 중대 전체로, 해병대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나는 박 병장이 술에 취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기 일병을 부리낳게 깨웠다. 새벽 2시였다. 기 일병과 내가 비틀거리는 박 병장을 부축했다.

박 병장이 혀가 꼬부라지는 소리로 말했다.

 

“너희 놈들 때문에 내가 제대를 못한단 말이야. 알간?”

 

“?………….”

 

우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대꾸를 했다가는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개새끼들…….”

 

박 병장은 기 일병의 명치를 주먹으로 쳤다. 자는 시늉을 하고 있던 주계병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병장은 주계병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개새끼들! 모두 집합해!”

 

주계병들이 모두 집합했다.

 

“침대 마후라 가져와!”

 

박 상병이 침대에서 마후라를 빼왔다.

 

“요새 모두 기합이 빠졌단 말이야. 알간?”

 

“모두 엎드려 뻗쳐!”

 

박 병장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흘렀다.

 

“기수 빳다야. 알간?”

 

박 병장이 윤 병장을 제외시키고 5대씩 쳤다. 기 일병이 침대 마후라를 맞고 쓰러졌다. 침대 마후라가 야전삽보다 훨씬 더 아프기도 했지만 기 일병은 나보다 체격이 켰지만 맷집은 훨씬 약했다.

 

“이 새끼가 어데서 엄살이야? 똑바로 못서?”

 

그 바람에 기 일병이 5대를 더 맞았다. 내가 빳다를 맞은 경험에 의하면 야전삽이 가장 아프지 않고, 그 다음은 5파운드 곡괭이 자루, 그 다음이 침대 마후라, 다음은 3단 분해한 M1소총 총신, 최고로 아픈 것은 LMG 꼬질대였다.

 

빳다 치기가 끝나자 박 병장이 침대 마후라를 윤 병장에게 인계하면서 말했다.

 

“기수 빳다야! 똑바로 해! 알간?”

 

윤 병장은 빳다를 치지 않고 이 상병에게 침대 마후라를 인계했다. 이 상병이 5대씩 4명에게 빳다를 치자 다음에는 김 상병이 나와 기 일병에게 5대씩 빳다를 쳤다. 중고참들은 우리에게 가혹하지 않았다.

 

중고참이 치는 빳다는 박 병장이 치는 빳다보다 훨씬 덜 아팠다. 박 병장은 빳다 치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코를 골았고, 맷집이 약한 기 일병은 끙끙 앓면서 잠을 잤다.

 

이튿 날 박 상병과 김 상병이 기 일병과 나를 집합시켰다.

 

“요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도 쫄병이어서 맞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이 상병까지 맞는 것은 문제가 있다. 너희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이 상병은 성격이 치밀하고 완벽하여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상병이 주름을 잡지 않은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연평도는 전기가 없어서 발전기를 돌려서 중대에 전기를 공급하는데 중대장이 기름을 팔아먹는 바람에 발전기를 제대로 돌리지 못하여 중대 전체가 남포불로 불을 밝혀야 했다.

 

이 상병은 솔가지를 태워서 열을 내는 다리미로 작업복에 주름을 세우곤 했다. 연기가 눈을 맵게 했지만 이 상병은 언제나 옷을 다려서 입었고, 휴가를 가는 주계병이 있을 때는 육군에게 쪽 팔려서는 안된다면서 옷을 다려주곤 했다.

 

박 상병이 말했다.

 

“오늘부터 작전을 개시할 것이다. 알았나?”

 

“알았습니다.”

 

그날 밤 주계의 쫄병 4명은 박 병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박 상병이 투덜거렸다.

 

“니기미 씨팔, 좆나발은 불어도 하루가 가는데 우짤 것이여? 씨부랑탕! 군대 좋다! 어떤 놈은 술 마시고 어떤 놈은 술 먹은 놈 기다리고…….”

 

해병대는 기율이 엄하여 입대가 1개월만 빨라도 담배불을 빌리지 못했다. 쫄병이 담배를 피우려고 성냥을 찾는 시늉을 하면 선임자가 담배불을 주는 식으로 담배를 피워야 했다.

 

박 상병이 박 병장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호랑말코 같은 놈, 문둥이 피고름에 밥 비벼 먹을 놈.......”

 

김 상병이 위병소로 전화를 걸었다.

 

“최 상병이야? 우리 박 병장 아직 안보이나?”

 

“박 병장이 위병소를 통과하면 즉각 연락해! 교대하면 인계하고 말이야. 알았나?”

 

2시가 넘어서 박 병장이 동기들과 함께 위병소를 통과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박 상병이 졸다가 기 일병과 나를 집합시키고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쫄병 새끼들이 기합이 빠져가지고 말이야. 느그들이 해병대야?”

 

박 상병이 야전삽을 꺼내 날을 폈다.

 

“엎드려 뻗쳐!”

 

“잘하지 못하겠나?”

 

기 일병과 내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잘하겠슴닷!!”

 

박 상병이 기 일병에게 빳다를 치자 기 일병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

 

“열!”

 

이때 박 병장이 비틀거리며 내무실로 들어섰다. 박 상병이 이번에는 나에게 빳다를 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박 병장은 빳다를 맞는 쫄병들을 바라보면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자리에 누웠고 자리에 눕자 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다.

 

빳다치기가 끝나자 박 상병이 말했다.

 

“앞으로 잘해!”

 

“잘하겠습니다.”

 

4명이 잠자리에 누웠다. 박 상병이 흥얼거렸다.

 

“잠을 자야 꿈을 꾸고 ~~, 꿈을 꿔야 님을 보지~~ .”

 

이렇게 하루 하루가 흘러갔다.

 

박 병장의 광기가 날로 심해져 갔다. 처음에는 술을 먹었을 때만 빳다를 쳤으나 제대가 날이 갈수록 늦어지자 술을 먹지 않아도 빳다를 쳤다. 기 일병과 나는 빳다를 맞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자고 있으면 으레 깨워서 빳다를 치기 때문이었다.

 

박 병장이 술에 취하여 야전삽 날로 기 일병의 머리를 내려치는 바람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 일병이 의무실에 입원하자 박 병장의 광기가 사라진 듯했으나 퇴원하자 광기가 다시 살아났다.

 

나는 기 일병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군번이 빨라서 항상 매를 먼저 맞았기 때문이다. 나를 보호하는 행운의 신은 기 일병을 방패막이로 삼았던 것이니 나의 신은 동기 600명 중에서 나를 선택하여 보호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평도는 중학교가 없었다. 그리하여 해병대는 대민봉사 차원에서 청산학원이라는 미인가 중학교를 설립하여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야간에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이 40명을 넘었다.

 

처음에는 장교들이 교육을 맡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귀찮게 생각하고 게을러지게 되어 사병 중에서 뽑아서 교육을 맡기게 되었는데 내가 수학과 음악을 담당하게 되었다.

 

내가 청산학원 선생이 되는 바람에 중대 훈련과 기합에도 열외가 되었다. 장교들은 중대에 비상을 걸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들을 소집하여 장교들 숙소에 머물도록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행운은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박 병장이 6개월을 더 복무하고 나서 제대했다. 훈련소에서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군번이 빠른 동기보다 6개월이나 제대가 늦어버렸던 것이다.

 

제대가 임박하자 박 병장과 그의 동기들이 쫄병들에게 사과했다. 주계에서는 박 병장을 용서하고 이해했지만 1소대는 황 병장을 용서하지 않았다.

 

제대병들이 전역명령을 받고 황룡호를 타려고 선착장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1소대 쫄병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황 병장에게 몰매를 가했다. 6개월 동안 당했던 분노를 풀었던 것이다.

 

제대병들이 당황했지만 서슬 퍼런 쫄병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황 병장은 동기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겨우 황룡호를 타고 떠났다.

 

그날 밤 1소대는 쫄병들이 하극상을 벌였다는 이유로 빳다 치는 소리가 밤 하늘에 울려 퍼졌다. 박 병장이 떠나자 주계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달라졌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윤 병장이 최고 고참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계에 쫄병이 한 명 배속되었다. 제대한 박 병장 자리를 채우게 되었던 것이다. 쫄병은 화부를 시켜서 기 일병이 화부를 면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그런데도 주계반장 김 중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기름때로 절은 옷을 입고 학생을 가르치게 해서는 안된다면서 쫄병을 나의 후임으로 임명하고 나를 창고병으로 발령했다.

 

연평도는 2개월을 근무하면 정기휴가 특별휴가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25일간 휴가를 주었다. 휴가가 많고 길다 보니 쌀과 부식, 생활용품이 많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연평중대는 장교들이 남는 물자를 팔아서 착복하는 일이 관례로 굳어져 있었다.

 

내가 창고병이 된 후부터 화랑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다.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화랑담배 1보루를 주계에 가져다 주면 주계병들이 그 당시 가장 고급품인 파고다 담배 1갑으로 바꿔다 주었다.

 

김 중사가 남는 물자를 팔아 먹었지만 나에게도 푼돈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보급 병과를 받게 된 값어치를 톡톡히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 일병은 항상 나를 부러워했다. 그는 자나 깨나 기름때로 절은 옷을 입어야 하는 화부 노릇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기적의 신은 여전히 나의 곁에서 맴을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