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264기 박동규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2)

머린코341(mc341) 2015. 1. 6. 04:31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2)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었던 곰보빵)


먹는 것에 대해서는 뒤에 또 쓰겠지만,훈련소에서는 정말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한창 먹을 나이에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뛰고,구르니 배가 고플 수밖에요.
그래서 너,나 할 것없이 날마다 배가 고파 껄떡댔습니다.

어쩌다가 식사당번으로 차출되는 날이면,그야말로 '대낄'입니다.
밥이 담긴 커다란 알루미늄 밥통을 다른 식사당번과 둘이서 들고 오면서
한 손으로는 밥통을 들고,다른 한 손으로는 그 뜨거운 밥을 입에 퍼 넣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하도 뜨거운 밥을 처넣어,입 천장이 홀라당 까진 기억이 납니다.

해군 훈련병과 해군 하사관 후보생들이 얼마간 떨어진 병사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우리들보다 비교적 더 자유로웠기 때문에,우리보다 훨씬 자주 PX를 이용했었는데
해병 훈병과 해병 하후생들에게 빵을 많이 뺏겼다고 합니다.

당시 PX에서는 윗부분이 울퉁불퉁한 곰보빵을 팔았는데
일주일에 한번인가 이용할 수 있는 PX에서 곰보빵은 최고 인기상품이었습니다.
저희 훈병 첫 봉급이 600원이었는데,그 곰보빵 가격이 개당 20~30원이었던 걸로 기억되며
PX 가는 날에는 똥깐(화장실)에서도 곰보빵을 먹었습니다.

훈련소를 수료하던 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렇잖아도 가여운 막내 동생이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고무신 질질 끌고 해병대에 입대해버려 불쌍하다고
멀리서 형님(몇해 전에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눈물나게 그립습니다)이 면회를 오셨는데
그때 곰보빵을 13개나 먹고,라면을 두개 먹고,그러고도 더 먹고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옆사람이 건네준 닭다리 하나를 또 얻어 먹었습니다.
먼저 먹은 음식이 목구멍으로 치받혀 올라오는데도,꾸역꾸역 들어가더군요.
퉁퉁 부은 얼굴로 끝없이 먹어대는 제 모습을 보시고 형님 눈가가 붉어지셨지요.

진해훈련소 주계 옆에는 덮개가 없는 조그만 하수구가 있었습니다.
그 하수도 중간쯤에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 짬밥을 가져 가려고 소쿠리를 받쳐 놓습니다.
그러면 기간병과 장교들이 먹다 버린 밥알이 하수구를 흘러가다가 그 소쿠리에 모아지는데
물을 빼기 위해서 소쿠리를 들어 올리면,하얀 밥알이 수북하게 쌓이게 됩니다.
어떤 동기들은 그 짬밥을 교관 몰래 손으로 집어 먹기도 했는데
어느 날인가 저도 한번 집어 먹으려 했으나,교관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사격장에서의 오발사고)


훈련소에서 지급받은 개인화기는 M1이었습니다.
M16은 나중에 실무에서 받았는데,그 M1이 반자동인데다 무거운 단점은 있지만 위력은 대단합니다.
총신이 길어서 명중률도 좋고,4명을 관통한다고 하던데,특히 총소리가 굉장합니다.

M1을 쏠 때는 개머리판을 눈에 바짝 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발사시 충격으로 오른쪽 광대뼈와 눈탱이가 시커멓게 멍이 듭니다.

첫번째 사격을 하던 날,총구에서 들리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지만
사격장엘 자주 다니다보니,바로 앞 사선에서 총을 콩 볶듯 쏴대는데도 잠이 오더군요.

잠이라는 놈,이 놈도 대단하더군요.
군 시절을 되돌아보면,그때는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던 걸로 기억됩니다.
월남전에 다녀오신 선배들의 얘기에 의하면,
가슴팍까지 빠지는 물 웅덩이 속에서,판초를 뒤집어 쓰고 빗속에 경계근무를 서는 때에도
어김없이 잠은 오더랍니다.

군 시절에 무슨 싯귀가 생각났겠습니까마는,사격장에서 마치 한마디의 시와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흔히 방아쇠를 당길 때는 열여덟 처녀의 젖가슴을 만지듯,부드럽게 당겨야 한다고 교육을 하지요.
그런데 어느 교관인가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
"아침 풀잎에 이슬이 내리듯"방아쇠를 당기라구요.
해병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정말 시적인 표현 아닙니까?

실제로 사격을 할 때는 소대별 점수를 높이기 위해 잘 맞는 총만을 골라 사격을 합니다.
M1이 오래된 총기이기도 하지만,꼬질대로 하도 쑤셔대서 총구가 넓어져
잘 안맞는 총이 많았는데
그래서 잘 맞는 총으로만 사선에서 계속 사격을 하고,잘 안 맞는 것들은 따로 사총을 해 놓았습니다.

마지막 사격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제 총은 잘 안 맞는 총이었기 때문에 사총을 해 놓았었는데
그날 사격이 끝난 시간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때였습니다.
"탄피야! 나오너라~"노래를 불러가며 겨우 탄피의 갯수를 맞춘 후,전 병력이 집합을 해서
교관의 '격발및 약실검사!!' 구령에 따라 모두들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노리쇠를 후퇴시킨 다음에,동시에 격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발사가 되었습니다.
대형사고가 날뻔한 일이었는데
그때 만약 총구가 옆을 향하고 있었다면,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었겠지요.

전혀 뜻하지 않은 소란중에, 이제 어느 누구의 총구에서 발사가 되었는지를 찾아내야 되는데
어느 동료 훈병이 저를 지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총에서 발사가 되었다는 건데,
아무튼 엉겹결에 앞으로 불려 나가서 ㅈ나게 맞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런 정신이 없었고,그레서 무어라 항변을 할 수도 없었는데
저는 지금도 제 총에서 발사가 되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제 총은 분명히 사총이 되어있던 걸 풀었거든요.

그 진실은 하느님만 아시겠지만......(2부 끝)

 

출처 : 해병대 인터넷전우회, 박동규선배님 http://www.rokmc.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