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58기 이장원

청룡 1진의 기억 -(18) - 외국군으로 본 월남.

머린코341(mc341) 2015. 1. 15. 06:50

청룡 1진의 기억 -(18) - 외국군으로 본 월남.

 

** 요즘 갑자기 2가지 일이 화제입니다.

*** 우리의 국군이 목숨걸고 파병된 곳에 위험지역이라 말리는 정부를 다그쳐 갔다가 23명이 피랍된 것이고
*** 남,북 정성회담이 다시 열린다는 겁니다.

--- 조국의 명령으로 전쟁터를 다녀온 세대로써

*** 어느 누가 오지의 봉사활동을 탓하겠읍니까 ?
*** 어느 누가 남북 통일을 반대하겠읍니까 ?

--- 그러나 우리는 항상 잊지말아야 할것이 있읍니다
--- 우리의 국토,우리의 역사,우리의 자유는 구호만으로 지킬수 있는것이 아님을 ----


<외국군으로 본 월남>

월남 전쟁에 관한 소설로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1977)과 안정효의 “하얀 전쟁”이 생각납니다.
작가들이 모두 월남전 경험이 있는 줄 압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니까 월남 있는 동안 내내 우리 같은 일반 사병들과는
사물에 대한 관심이나 기록 등이 물론 남달랐겠고
소설은 또 소설이니까 상상력까지 보태기도 했겠지요.

안정효씨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영어 번역가로,
또 영어를 제일 잘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도 영자 신문에 칼럼니스트로 자주 기고하고 있는 줄 압니다.

월남전에도 영자 신문 종군 기자로 참여했고,
그 소설도 “White Badge”라고 영어로 먼저 미국에서 출판되고,
그 뒤 한국판으로 번역(?) 출판 된 줄 압니다.

전쟁 소설들은 거의 첫째 “전쟁의 처참함과 비인간성 ”으로 “반전 사상”을 부각 시키고,
그리고 “전쟁 중의 사랑”으로 긴장과 쾌락을 혼합하여 흥미를 부추기지요.

13개월 반 동안, 야전에서만 박박 긴 사병의 처지에,
주변 머리없는 성격인 나의 경험으로는, 사실 가까이서라도 본 월남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고,

기억에 남는 월남 사람으로도 월남 군 하사관으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월남의 집”이란 뜻이라는

“냐 비엩남 남바꿍상 쩡아동, 붕양 남따오..칸칸떼 타이 남타이…”
하는 노래를 잠시 배운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월남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할 수는 전혀 없고
그저 혼자서 이렇게 느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투이호아에서 츄라이 이동 명령을 받고 - 해병 전첩비 앞의 휴숑시내 기념 사진)

프랑스 식민지 하에서 독립 운동 전쟁에서부터, 우리가 도착한 1965년까지만 해도
2차 대전 때부터 치더라도 20여년을 넘게 전쟁을 해 오고 있던 나라였으니,
그 곳 백성들이나 국가 사회가 오죽 지치고 진저리가 나는 상황이겠습니까?

오로지 여하히 죽지않고 살아 남을 것인가만 있을 뿐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전쟁이 나면,
남자들은 전쟁 터에서 죽거나 살아 남거나 하는 긴장 속이라 원초적 욕망이 더욱 강하고,
뒤에 남은 여자들과 아이들은 먹여 주는 가장이 없으니
어떻게 굶어 죽지않고 살아 남는가 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구걸이나 도둑질이겠고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파는 일 뿐이지요.

영국과 같은 문명국(?)에서도 “Waterloo Bridge”(애수)라는 映畵에 보면
1차 대전 중 발레 학교 여학생도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20 여년 넘게 전쟁을 하고 있는 월남이야 어떠하겠습니까?

모든 전쟁은 다 꼭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 힘으로 막든지, 외교로 막든지.

오늘날 유럽 연합을 탄생시킨 것도 결국 1,2차 대전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남에 가서 보니 미국이 아무리 많은 물자와 화력을 퍼부어도
이기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남쪽에는 구심점이 되는 지도자나 지도 세력이 전혀 없다고 느껴진 반면,
북쪽은 절대적 지지와 신뢰를 받는 국민적 지도자 “호치민”이 있기 때문이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의 6.25 때와는 정반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게릴라(유격대) 전투에 관한 전술 교본의 고전은 “모택동 어록”이라고 하지요.

직접 읽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모택동 어록에 “유격대와 인민은 물과 고기”라고 했답니다.

게릴라는 인민의 협조가 없으면 물 없는 고기가 되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베트콩이 그토록 끈질기게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은
월남 주민들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월남 주민들이 걸핏하면 “양민 학살”이란 소리를 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베트콩의 전략적 주장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베트콩을 두둔한 주민들이 계속 해를 입으면
자기들이 협조를 받을 수가 없고 살아 남을 수가 없으니까요.


(쉼터 자료사진 )

조정래의“태백 산맥”이나 이태의“남부군”에 6.25 때의 빨치산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빨치산들이 주민들에게 잘 하는 이유는 그들이 도덕 군자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들이 한 시도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월남에서 주민들과 베트콩을 철저히 분리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대민 봉사를 철저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베트콩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우리 빨치산에게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 가족입니다.

그 가족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천륜이라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 가족이 그냥 양민이겠습니까?

우리 상황에서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 없이 빨갱이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월남에서는 베트콩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쟁이란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북한 주민이 전부가 공산주의가 되고 싶어 된 것이겠습니까?
남한 주민이 너나 없이 모두 좋아서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었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알지도 못하는 일부,

-- 그 생각이 지극히 의심스럽고,
-- 전쟁이 무엇인지, 죽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 지금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여유와 자유가 다 어떻게 얻을 수 있었는지,

새까맣게 모르는 것들이 함부로 혓바닥을 놀리며 - 어디서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 사주를 받았는지

"양민 학살" 이 어쩌니 저쩌니 까불어대고 있으니
뭔가 교육이 잘 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일수록 생사의 치열한 현장에 놓였으면
틀림없이 더 한심하고 가증스러운 작태를 드러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자들이 - 꿈속에서라도
시련의 전선 투이호아에 투입되어 전우가 부비츄랩에 사지가 찢어지는것을 보면 무슨 주장을 할까 ??

언젠가 천자봉이 콰이강의 다리 박물관에서 보았다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Forgive, But Not Forget" ~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

가치의 혼돈이 정말 심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 이제는 힘없는
노병의 가슴이 다시 뛰는것을 숨길수 없음을 잊지말아주기 바랍니다.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